9월 23일
김수행·박승호 공저 『박정희 체제의 성립과 전개 및 몰락』(서울대학교출판부, 2007)을 읽다. - 이 책은 “박정희 체제를 일국一國 자본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세계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경제성장과 정치적 독재의 ‘결합’ 또는 ‘공생’이 박정희의 개인의 ‘성격’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필연적”이었다는 점을 주장한다. 이런 시도는 박정희 체제의 성공을 ‘한강의 기적’이라는 식으로 특수화해서 보는 일국사一國史의 관점을 국제적 차원으로 넓히고, 박정희를 지도력을 카리스마화하는 대중의 평가를 거부한다. 또한 이 책은 박정희 시대를 활발한 계급투쟁이 벌어진 시대로 파악한다. 몇 개의 열쇳말로 독후감을 대신한다.
개발독재: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미화하는 사람들은 당시의 “노동대중이 박정희의 개발 독재에 ‘동의’하고 ‘헌신’하며 나아가 ‘자발적으로 호응”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런 찬양은 그 시대에 얼마만큼 강도 높은 노동 착취가 있었는지를 외면하고, 계급 투쟁 분쇄를 위한 사찰이 얼마만큼 엄중했는지를 보지 못한 것이다. 개발독재를 찬양하는 사람들은 개발의 성공(산업화)이 내외의 자원을 이용하고 동원할 수 있는 효율적인 산업정책의 뒷받침에 있다는 것을 고려하지 못하기 때문에, ‘개발’과 ‘독재’는 무관한 것이며, “오히려 독재는 성장잠재력을 잠식”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정치와 경제: 개발독재의 유용성을 거론하는 사람들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구분하면서, 성공적인 산업화를 ‘빛’으로, 정치적 독재를 ‘그늘’ 또는 ‘그림자’로 평가한다. 이와 같은 정치와 경제 사이의 분리는 “산업화는 성공했지만 독재정권은 이를 냉전 반공주의, 정치적 독재와 대결적 분단체제를 공고화하는 수단으로 삼았다”는 평가까지 나아가게 되는데, 이런 평가는 “정치적 독재와 대결적 분단체제가 성공적인 산업화의 전제였다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경제(사회)와 정치를 서로 외재적으로 설정하고 양자의 내적 관계에 대해서는 어떠한 설명을 하지 않는 저런 평가는 박정희의 18년간을 ‘잘못된 정치’만 없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간주하게 만든다. 그러나 “빈부격차의 심화(경제)와 ‘인권탄압, 공개적 독재(정치)'는 실은 서로가 따로따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며, 양자는 전체로서의 사회적 관계들과 구조들을 구성하고 있”었다. 경제와 정치는 어느 일방이 다른 일방을 규정하거나 다른 일방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경제와 정치 모두 실체인 계급관계와 계급투쟁을 각각의 영역에서 표현하는 사회적 형태로, 둘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구성하는 두 계기로서 상호전제하고 상호규정하는 관계에 있다.”
재벌: 박정희가 쿠데타를 감행했을 당시, 한국은 미국의 ‘경제원조’와 ‘군사원조’라는 두 기둥에 의지하고 있었다. 미국의 호의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군사쿠데타 세력은 소시민적 민족주의를 내포하고 있었음에도, 광범위한 민중을 지지기반으로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 쿠데타정권의 자율성은 크게 제한되어 있었고, 재벌과 자본가들을 동맹 세력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재벌체제는 1960년대의 개발독재에 의해 양성되기 시작했는데, 수출 지향의 산업화를 추구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독점자본을 육성한 결과가 재벌체제다.
세계자본주의체제 속의 한국: 해방 후 미군의 점령지가 된 남한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 냉전체제에서 자본주의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본보기show-window가 되어야 했다. 미국은 이승만 정권 말기부터 남한의 공산주의 혁명을 막고 안정을 이룩하기 위해 장기적인 경제발전계획의 수립을 종용했고, 그것은 4·19혁명 뒤 장면 정권이나 박정희의 군사정권에도 똑같이 적용됐다. 5·16 군사쿠데타 이후 쿠데타 주도세력에 대한 미국의 지지 여부는 “경제개발계획의 안정적 추진”이 주요한 기준이었다. 따라서 케네디 정부는 “박정희의 좌익 전력에도 불구하고 군사쿠데타 세력이 참신한 세력으로 부패를 일소하고 경제개발계획을 효율적으로 추진할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사후적으로 승인”했다. 이처럼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제국주의는 신생독립국 안의 경제정책과 계급투쟁에 직접적으로 개입한다. 한편 박정희 군사정권은 “군사쿠데타에 의한 집권이라는 정당성正當性의 취약 때문에 경제성장의 성과에 더욱 의존”하게 됐다. “달리 표현하면, 박정희 정권은 군사정권이라는 이유 때문에 더욱 급속한 자본주의적 발전으로 내몰렸던 것이다.”
계급 역관계: 박정희 체제 아래서 일어난 ‘고도성장’, ‘압축성장’, ‘근대적 산업화’는 생산력 차원만 아니라, 자본주의적 계급관계인 “자본-노동관계의 사회적 확장”을 불러온다. 급속하게 확장된 생산관계가 빚어내는 갖은 갈등 속에서 ‘고도성장’, ‘압축성장’, ‘근대적 산업화’가 가능했던 것은, 한국전쟁 이후 더욱 강고해진 반공이데올로기가 계급지배의 강력한 수단으로 민중운동을 가로막고, 군사정권이 압도적으로 자본의 편을 들었기 때문이다. ‘계급 역관계’란 자본가계급(지배계급)과 노동자계급(피지배계급) 간의 계급투쟁에서 자본가계급이 우위에 선 것을 뜻하는 용어로, 박정희 체제는 냉전체제(‘외부화된 계급관계’의 지배자인 미국)와 군사독재라는 국내외의 이중적 계급 역관계 속에 유지됐다.
계급투쟁과 유신의 종말: 1960년 4·19는 노동쟁의가 급증하고, 노조운동이 활성화된 사실이 보여주듯이, 계급 역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상당했다. 하지만 국내외의 계급 역관계를 변화시키고자 했던 노동운동과 통일운동은 1961년 5·16 군사쿠데타에 의해 저지됐다. 1960년, 학생운동과 지식인운동 등 주로 중간계층에 의한 반독재투쟁 형태를 띤 ‘아래로부터’의 정치적 계급투쟁은 5·16 군사쿠데타 이후 철저히 억압됐다. 1970년 전태일의 분신은 자생적 노동자투쟁의 도화선이 되어 1979년,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을 불러일으켰다. 유신독재의 종말은, 노동자들의 경제적·정치적 계급투쟁과 학생·지식인·종교인들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이라는 폭발적 전개에 따른 필연적 결말이다(이쯤에서 이 책의 부제가 ‘국제적·국내적 계급관계의 관점’이었다는 사실을 부연해 놓자).
‘참고문헌’과 ‘찾아보기’ 색인을 모두 합쳐 100쪽이 채 되지 않는 이 책은, 박정희 체제의 ‘경제적 공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진보진영의 움직임에 쐐기를 박기 위해 집필됐다. 두 공저자가 보기에 박정희의 경제적 공로를 수긍하고자 하는 진보진영의 재평가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ⅰ) 평가틀 자체가 ‘자본주의 자체’를 문제 삼지 않는다. 강조하자면, 박정희는 ‘군사독재 체제’였기도 하지만 엄연히 ‘자본주의 체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자본-노동 간의 계급관계적 맥락을 보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박정희 체제 속에서 희생당한 노동자와 그들의 역동적인 투쟁은 간과된다. ⅱ) 극좌極左와 극우極右에 대한 양비론을 펼치면서 박정희 체제의 경제적 공로를 평가하고자 하는 진보진영의 논자들이 에둘러 포용하는 것은 부르주아 민족주의 관점이다. “외국계 초국적 자본과 치열하게 국제적으로 경쟁하는 한국계 초국적 자본인 재벌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부르주아 민족주의를 선동”하고자 하는데, 이 논자들은 자연스럽게 “재벌체제의 정당성을 긍정하고 초국적 자본 간 경쟁에서 한국계 초국적 자본의 편”에 서게 된다. 이들의 부르주아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는 “한국의 재벌 또는 자본가 계급이 살아야 한국경제가 살 수 있다”는 자본가(재벌) 계급의 선동에 알게 모르게 동조하면서, 그들의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대변”한다. ⅲ) “독재 없이도 개발이 가능했는데 아쉽다”는 식으로 박정희 체제를 옹호하는 진보학계의 논자들은, “노무현 정부에게 박정희 체제에서 독재를 빼고 개발정책만 답습하라고 조언하는 것과 비슷하다.” 대량실업과 양극화에 허덕이는 민중들에게 노무현 정권은 “부르주아 민족주의를 사회통합의 이데올로기로 제시”하면서, “세계의 무한경쟁 속에서 한국계 초국적 자본인 재벌이 ‘당당하게’ 선두에 설 수 있도록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희생해야 하고, 외국인들이 한국에 더 많이 투자해 고용을 증가시키고 선진기법을 전수할 수 있도록 민중들이 민주·민생운동을 중단하고 자본의 수익성 향상에 ‘자발적으로’ 헌신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사실상 일부 ‘진보학계’의 박정희 체제 재평가는 부르주아 민족주의를 정당화함으로써 자본과 정권의 불황극복전략에 기여하고 있다.” 박정희의 ‘경제적 공로’를 인정하는 이런 평가 “재벌들의 권력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이 땅의 노동자 민중을 더욱 희생 시킬 것이며, 따라서 사회적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고 사회적 불안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더욱이 외국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은 경제적 불안정을 강화하면서 정부의 ‘사회정책적’ 조치들(예: 사회보장정책)을 무력화할 것이다.”
유신체제의 종말을 가져온 박정희의 죽음은 미국 배후설에서부터 측근 심복들의 권력 암투설에 이르기까지 온갖 설이 난무하지만, “유신체제가 종말에 이르는 과정은 전형적인 계급투쟁의 역동성에 의한 것이었다”는 이 책의 결론은, 한 획의 흔들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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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장정일
시인, 극작가, 소설가. 1984년 <언어의 세계>에 「강정 간다」외 4편의 시를 발표한 이래로,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