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2일
사회학 방법론 내에 계량화된 수치를 이용할 수 있게 해 준 여론 조사와 통계는, 의심이 많은 사람들도 ‘제까닥 믿는다’는 점에서 신기한 권능을 발휘한다. 토론 중에 여론 조사 결과나 통계 수치가 튀어나오면 우리는 일순 당황하게 되고, 재수 없으면 토론이 끝날 때까지 상대방의 논리에 질질 끌려다니다가 5대 0!
우리가 여론 조사나 통계에 주눅 드는 까닭은, 그것들이 과학적이고 객관적이라고 믿어서이다. 하지만 『여론 조사에서 사회 조사로』(책세상, 2003)를 쓴 이성용은 모든 여론 조사가 과학적이고 객관적일 것이라는 무조건적인 신뢰에서 깨어나라고 말한다. 우리가 맹신하는 여론 조사가 혹세무민하는 ‘현대적 마술’일 수 있으므로, 여론 조사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갖추고, 조사 결과를 비판적·주체적으로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개의 여론 조사는 면담이든 서신이든 또는 전화든 인터넷이든, 의견을 구하기 위해 설문을 이용한다. 이 때문에 설문 절차와 내용의 과학성이나 객관성 결여는 실제 여론과 조사된 여론 사이에 오차를 만드는 주범이다. 전체 3장 가운데 이 책의 제2장은 오차를 만드는 대표적인 유형이자, 역으로는 피여론 조사자들이 설문 조사의 질을 총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항목들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여론 조사라는 지식 권력으로부터 휘둘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아야 한다.
상업적인 목적에서 이루어지는 시장 조사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적 여론 조사나 공공기관이 의뢰하는 여론 조사에는 의뢰자의 관점이 개입된다. 이때 의뢰를 받은 조사업계는 그것이 “비지니스인지라 의뢰자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게 된다. “그 결과 설문 조사에는 연구자의 관점뿐만 아니라 의뢰자의 관점도 내포되게 마련이며, 또 의뢰자가 요구하거나 원하는 설문 조사 결과를 산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설문 조사가 실행되기 쉽다.”
『통계라는 이름의 거짓말』(무우수, 2003)을 쓴 조엘 베스트는 “과학지식은 매우 정확할 수 있으며, 너무 정확해서 우리는 그것을 만들어낸 사람들이나 사회적 과정을 잊어버릴 수 있”지만,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거나 해결하려는 사회학은 항상 그것을 만들고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가려는 사람들의 입장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론 조사는 물론이고 “아무리 공식적인 통계라고 해도 그것은 만드는 사람들과 조직에 의해 형성되는 산물”인 것이다.
항간의 화제는 이명박 대통령의 치솟는 지지율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새로 공부하는 중에 읽은 오연호의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오마이뉴스, 2009) 152~154쪽에는, 여론과 민심에 대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의가 있다. 여론이 “그때그때 움직이는 것”이라면 민심은 좀 더 장기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의 시대정신을 의미한다. “그래서 여론에 귀는 기울여야 하지만, 국민의 눈높이를 생각해야 하지만, 그것 대신 역사의 눈높이라는 차원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새롭게 제안하고 싶습니다.” 대단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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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장정일
시인, 극작가, 소설가. 1984년 <언어의 세계>에 「강정 간다」외 4편의 시를 발표한 이래로,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