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8일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꾸리에, 2009)를 쓴 다니엘 에버렛은 시카고 신학교에서 해외선교 자격증을 받았다. 스물여섯 살이 되던 1977년, 그는 이제껏 어떤 외부인도 터득하지 못했던 피다한 부족의 말을 배워 성경을 번역할 것과, 그들에게 선교를 하라는 두 가지 임무를 받고 아마존 복판의 마이시강 유역으로 파견된다.
지은이는 피다한 언어는 습득했으나 선교 사역엔 실패했다. 인류학자들은 그 어떤 문화에서든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설명하는 창조신화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해 왔는데, 피다한족에겐 그게 없었다. 만약 그들에게 창조주나 절대자에 대한 터럭만한 관념이라도 있었다면, 아마 지은이는 기독교가 토착 신앙을 파고드는 격의(格義)를 이용해 ‘예수의 상’을 손쉽게 실어 날랐을지도 모른다.
이번 여름, 최고의 이열치열로 기억될 이 책의 진정한 모험은 아마존이라는 낯선 풍물과 부딪쳐서가 아니라, 오히려 친숙한 문명세계를 향한 지은이의 도전 의식에서 분출한다. 앞서 본 것처럼, 인류학자들의 이론이 현장에서는 딴판일 수 있다는 것은 지적 문명이 절대시하는 대학과 이론에 결점이 있다는 것을 암시해 주지 않는가?
본디 지은이는 자신의 언어학적 기본지식을, 노엄 촘스키로부터 배웠다. 그런데 어느 언어든 ‘보편문법’에 기초해 있다는 촘스키의 이론이 피다한 언어에는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지은이가 이끌어낸 결론은, 언어학이 연역적인 이론이 되어서는 안 되고, 먼저 그 언어를 배태한 문화(삶·현장)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 지은이는 촘스키의 ‘보편문법’ 이론 안에서는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순환'이 왜 피다한 언어에는 없는지를, 그들의 문화로부터 귀납적으로 증명한다.
우리는 종종 한국어를 잘하는 외국인을 앞에 놓아두고, 마치 그들이 없는 듯이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 까닭은 외국인은 고작 앵무새처럼 한국어를 흉내 낼 뿐, 우리 문화는 모른다고 여겨서이다. 이것이 가리키는 바는, 언어와 문화가 깊이 연관되어 있으며, 문화를 알아야만 그 언어가 완전히 이해된다는 뜻이다. 이 예는 모든 언어를 관통하는 ‘보편문법’이 있는 게 아니라, 특정 문화가 거기에 맞는 특정 문법을 만든다는 지은이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뜻밖의 결말로 관객을 놀라게 하는 것을 ‘서프라이즈 엔딩’이라고 하는데, 상아탑의 인류학자와 언어학자에게 현장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이 책이, 바로 그것을 준비했다. 아마존에서의 30년 생활을 마친 뒤, 지은이는 신앙을 버리고 무신론자가 됐다. 거기엔 ‘지금-여기’라는 삶의 직접성에 충실했던 피다한 문화도 한몫했지만, ‘보편’이나 ‘이론’은 복잡한 세계에 대한 ‘단순화’일 뿐이라는 그의 학문적 치열성이 단순화의 극치인 ‘유일신’내지 ‘기독교적 진리’와 결별하게 이끌었다. 진짜 장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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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장정일
시인, 극작가, 소설가. 1984년 <언어의 세계>에 「강정 간다」외 4편의 시를 발표한 이래로,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