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9일
서양음악을 듣거나 서양음악사를 읽다 보면, 1급의 작곡가와 연주자들 모두가 남성인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음악계에는 왜 여성이 부재한가?’에 대한 의문조차 낯설게 한다. 하지만 에바 리거의 『서양음악사와 여성』(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91)은 여성 음악가의 부재는 여성의 음악적 재질이나 창조력이 열등해서가 아니라, 남성 가부장 사회의 억압이 여성 음악가의 탄생을 가로막았다고 단언한다.
본서의 1장은, 중세기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성과 남성에게 달리 적용된 음악교육을 분석한다. 중세의 교회와 근대 국가의 여성에 대한 음악교육정책은 주로 찬송이나 노동요와 같은 노래 부르기에 국한되었다. 반면 남성에겐 기악과 이론은 물론이고 작곡과 같은 높은 수준의 음악 교육이 차별적으로 행해졌다. “기본적으로 음악교육이 여자에게도 남자와 마찬가지로 행해졌지만, 여자에게는 남자에게 요구했던 것 같은 높은 수준의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대개의 경우 여성의 음악교육은 간단한 연습 등 기초 단계에 머물렀”던 것이다.
중세나 현대의 교회나 국가는 어진 아내나 모성애로 넘치는 어머니를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여겼고, 가사와 예술활동을 양립시키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프랑스 혁명과 계몽주의 운동에 의해 확대된 인도주의적 이상에도 불구하고 여성교육이 초래할지 모르는 여성과의 경쟁이나 가정의 붕괴, 여성다움의 상실 등은 남성들이 원하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음악뿐 아니라 여러 분야의 여성교육은 일반적이고 실용적인 분야와 수준에 방치됐다.
이 책의 2장은 성역할 구분에서 비롯된 성차별 사상이 어떤 식으로 음악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소상하게 기록한다. 18세기 중엽부터 절대적인 영향력이 약해지기 시작한 기독교 문화는, 약화된 신성神性의 절대화를 남성 예술가(천재)에게 이월하는 것으로 세속화된다. 이에 따라 ‘예술가=남성=창조의 신’이라는 등식이 완성된다. 이 등식에 따르면 여성은 ‘창조의 신’도 ‘예술가’도 될 수 없는 열등한 존재다. 신의 세속화한 이름인 천재와 영웅적인 남성이 결합될수록 여성은 예술로부터 점점 소외당했다. 대신 천재의 대열에 끼일 수 없는 여성들을 위해 남성들은 하나의 자리를 마련해 놓았다. 즉 여성은 천재에게 예술적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뮤즈’로 턱없이 이상화되었는데, “여성을 단 위에 우러러 모셔놓고, 그 주체적 및 개인적 가능성을 부정하고, 창조의 과정에서 소외시키는 것은 여성 ‘찬미’의 형태를 빙자한 폭력행위에 다름 아니다.”
원래 색깔에는 성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옷이나 장난감을 고를 때 남아에게는 파란색을, 여아에게는 빨간색이나 노란색 색상을 권해준다. ‘이게 여자색깔이야, 이게 남자색깔이야’하면서! 이런 남녀 역할의 고정화와 차별화는 음계나 음악기법 그리고 음악장르와 악기마저도 남성의 것과 여성의 것으로 구획했다. 예를 들어 미사곡과 교향곡은 남성의 장르고 여성의 작곡 영역은 가곡에 국한되었으며, 실내악은 부분적으로만 허용됐다. 또 관악기와 첼로, 바이올린 등은 전적으로 남성의 전유물이었고 여성에겐 플루트나 하프만이 주어졌다. 그리고 폭넓은 음정의 도약과 푸가나 스타카토는 남성적인 것으로 간주됐고, 서정적인 선율과 평이한 리듬은 여성적인 것으로 분류됐다. 이 장을 읽다 보면, 서양음악의 진행과정 전체가 바로 이런 성차별 의식을 세련화하고 양식화해 온 역사라는 생각마저 든다.
저자는 남성들이 독점한 천재관天才觀은 물론이고 남성들이 예술분야에서 여성을 배척시키려는 심리적 근저를 해명하면서 “남성들의 창조성의 원동력은 자신들이 생명 탄생에 부수적으로밖에 관여할 수 없다는 열등감”과 “여성의 임신 및 출산 능력에 대한 그들의 막연한 불안”을 원인으로 든다. 즉 “여성의 출산 능력”에 대한 남성의 “선망 또는 질투심”이 여성의 출산 능력과 동등한 “문화적 창조를 통해 보충”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이 문화적 활동에 참여하게 되면 남성은 심리적으로 위협”을 받게 되고, 따라서 여성들의 예술 활동을 “위험한 행동”으로 보고 억압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3장은, 재능은 있었지만 사회적 관습과 차별에 의해 자신의 예술 세계를 펼쳐보이지 못한 여성 작곡가들의 생애를 추적한다. 슈만의 아내였던 클라라, 리스트의 딸이자 바그너의 아내였던 코지마, 멘델스존의 누나였던 파니 헨젤, 말러의 아내였던 알마, 그리고 쳄발로 연주가이면서 음악학자였던 에타 하리히 슈나이더. 이들은 뛰어난 작곡가였으면서도 동료이자 남편으로부터 견제와 멸시를 당했고, 자기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지 못하고 남편이나 동생의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했다(몇몇 작품은 아직도 원작자의 이름이 정정되지 않고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남편이었던 남성 예술가(천재!)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천사!)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20세기의 상황은 어떨까? 오늘날의 상황을 조명한 4장에서 저자는, 중세만큼은 아니지만 음악계의 여성 차별은 여전하다고 판단한다. 예를 들어 1975년, 베이징에 온 베를린 필의 상임 지휘자 카라얀에게 한 기자가 베를린 필에는 왜 “여성이 없느냐”고 물었을 때, 카라얀은 “여성은 부엌에 있어야지 오케스트라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대답했다. 실제로 에바 리거가 이 책을 집필한 독일에서는, 여성 단원이 없는 유서 깊은(?) 오케스트라들이 아직껏 존재하며, 그 숱한 독일 오케스트라 가운데 여성은 전 단원의 8%에 불과하다(본서가 독일에서 초간된 것은 1981년으로, 현재는 상황이 많이 호전되었을 것이다).
무척 흥미롭게도, 음악계에 만연한 이런 성차별은 여성 작곡가들에게 강박으로 작용한다. 러시아 출신의 구바이줄리나를 비롯한 몇 명의 현대 여성 작곡가들은 특히 12음기법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처럼 여성들이 “수학적 이론에 의한 작곡”을 즐기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젊은 여성 작곡가들이 수학 등 전통적으로 남성만의 것으로 여겨졌던 분야를 여성들도 남성들 못지않게 통달할 수 있다는 증명”을 하기 위해서고, 둘째 “여자는 감정 표현이 지나치다든가 감정의 폭발을 억제하지 못한다든가 또는 이성적이지 못하다는 등의 편견에 대항”하기 위해서다.
음악사회학이 있기 이전까지의 음악학은 악보와 문헌만을 연구의 기초자료로 삼아 왔다. 그런데 음악이 기록되고 연구의 대상이 된 이래 그것을 지배해 온 것은 언제나 남성이었다. 『서양음악사와 여성』은 지금까지 남성이 차지해 온 음악의 해석 독점권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악보와 문헌 이외의 “인간적인 고뇌와 사건들을 발굴하여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면서 저자는 여성예술의 창조를 위한 시안으로 씌어진 5장을 통해, 여성이 평등하게 문화에 참여할 기회를 얻고 예술가가 되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남성에게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감정적인 여성 편견과 남성에 대한 여성의 경제적 의존을 없애는 것이 필요”하며, 다음 단계로는 “고정된 남녀의 역할분담을 유동화”하려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고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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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장정일
시인, 극작가, 소설가. 1984년 <언어의 세계>에 「강정 간다」외 4편의 시를 발표한 이래로,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