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7일
언제부터인가 ‘고령화 사회’를 우려하더니, 금세 ‘초고령 사회’라는 낯선 단어가 들리기 시작한다. 사회 현상을 가리키는 특정 용어가 이처럼 빠른 기간에, 또 강도 높게 바뀌는 것을 보면 확실히 ‘고령화’가 문제이긴 한 모양이다. 그러면 생물·생태학자 최재천이 쓴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삼성경제연구소, 2005)를 다잡고 읽기 전에, 비슷해 보이지만 큰 차이를 지닌 ‘고령화 사회’와 ‘초고령 사회’의 차이점부터 짚어 보자.
아주 일찍부터 세계 인구의 고령화에 대해 관심과 대책을 논의해 온 UN은 1956년에 이미 ‘고령화(ageing)’라는 말을 채택했는데, 일반적으로 한 국가의 고령화를 판단하는 기준 역시 UN의 선도적 작업에 따른다. 먼저 UN은 한 국가의 전체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에 따라, 한 나라의 인구유형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유년 인구국(young population) | 65세 이상의 비율이 4% 미만인 국가 |
성년 인구국(mature population) | 65세 이상의 비율이 4~7%인 국가 |
노년 인구국(aged population) | 65세 이상의 비율이 7% 이상인 국가 |
UN은 위에 분류된 노년 인구국을 다시 세분해서, 전체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에 따라, 한 사회의 ‘고령화’ 기준을 만들었다:
고령화 사회(aging society) | 65세 이상의 비율이 7%가 넘는 사회 |
고령 사회(aged society) | 65세 이상의 비율이 14%를 넘는 사회 |
초고령 사회(super-aged society) | 65세 이상의 비율이 20%를 넘는 사회 |
전세계의 여러 선진국 가운데 일본·독일·이탈리아·스페인은 급속하게 ‘고령화 사회’로 진입 중이며, 그 가운데서도 일본은 가장 먼저 ‘초고령 사회’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책 30~31쪽에 나와 있듯이, 전세계의 고령화를 얘기할 때,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 사회’로의 진입은 나라마다 약간씩의 유예를 갖지만, ‘고령화 사회’가 ‘초고령 사회’로 바뀌는 속도는 더 빠르다. 그래서 인류는 머지않은 장래에 600여 년간 유지되었던 마름모꼴 인구유형(노년과 유년의 인구가 성년 인구에 비해 똑같이 적다)을 마감하고, 노년→성년→유년의 순으로 인구가 적어지는 역삼각형 인구유형을 맞이하게 되었다.
인구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인구대체 출산율은 2.1명이라고 하는데, 현재 선진국의 평균 출산율은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1.6명 수준이고, 우리나라는 OECD 국가의 평균 출산율인 1.7명은 고사하고, 세계 최저 수준인 1.19(2003년)과 1.16(2004년)을 기록하고 있다. 예측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8년 즈음에 ‘고령 사회’에 들어서게 되고, 2026년이면 ‘초고령 사회’가 된다.
혹자들은 노령 인구가 느는 이런 현상을 일컬어, ‘소리 없는 시한폭탄’이라고도 하고 지진(earthquake)에 빗대어 연진(agequake)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동서양의 모든 경전이나 고전들은 ‘백발은 인생의 면류관’이라며 노인을 추앙했으며, 오래 사는 것을 ‘하늘이 내린 복’이라며 부러워했다. 그런데 어쩌자고 이렇듯 험악한 말들이 나오는 것일까?(노인들이 전통 사회에서 맡았던 역할이나 인류의 문화 발달에 기여한 공헌은 이 책 68~69쪽에)
식량은 물론이고 의학을 비롯한 온갖 분야에서 벌어진 문명의 발달은 인간의 생명을 점진적으로 연장해 왔다. 그래서 학자들은 아예 인류 진화의 역사를 ‘고령화의 역사’라고 말하기도 한다. 몇백만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평균 수명을 옳게 집계하기는 힘들지만(이 책 13쪽에서는 50세, 22쪽은 30~45세를 너끈히 살았으리라고 추정한다), 비스마르크가 연금제도를 창안했던 1910년대에 독일 남성들의 기대 수명은 고작 47세 불과했으며, 1926~1930년 당시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수명은 35.1이고 남자는 32.4세였다. 하지만 OECD 국가들 중 최고로 빠른 평균 수명 증가율을 보여주고 있다는 우리나라의 경우 2002년의 여성 평균 수명은 80.4세이고 남성은 73.4세다.
재미난 것은, 문명의 발달이 일구어낸 평균 수명 연장이 인구 감소라는 또 다른 변수와 만나, 고령화 문제를 더욱 풀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흔히 번식(출산)은 자연이 모든 생명체에게 심어준 본능이라고 하는데,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인류는 자발적으로 번식을 자제하거나 거부하는 특이한 종이 되었다.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의 『작은 인간 - 인류에 관한 102가지 수수께끼』 (민음사, 1995)는 전통적인 농경 사회에서는 다산이나 종족을 늘이는 것이 생산력의 증대와 연결되었으나, 산업화 시대에는 오히려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 따라 아이를 적게 가지는 경향으로 흘렀다고 말하면서, 산업화 시대의 출산 여부는 ‘자연 선택’이 아니라 ‘문화적 선택’이 되었다고 말한다: “자녀를 적게 갖든가 또는 아예 갖지 않는 것이 결국에는 종족을 번식시키는 실질적인 전략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지금 세계에는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두 번째 아이보다는 두 번째 수입, 두 번째 자동차, 그리고 두 번째 집을 열망하고 있다. 자연 선택이 아니라 문화적 선택이 우리를 이 지점까지 몰고 왔다.”(220쪽)
최재천의 책 32~33쪽에도 나와 있듯이, 인구의 고령화는 평균 수명의 증가와 출산율 저하라는 상반된 가속 운동이 낳은 현상이며, 선진국의 예가 보여 주듯이 평균 수명 증가보다는 출산율 저하가 고령화를 부추기는 더 심각한 요인으로 지적된다. 하지만 출산율을 높인다고 해서 고령화 문제가 자동적으로 해결되거나 무화되지는 않는다. 출산율 증가는 통계상의 고령화 비율을 낮추거나 젊은이들의 경제적 부하를 약간 경감해 줄 뿐, 고령화가 직면한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
평균 수명 증가와 출산율 저하가 맞물린 고령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일하는 젊은 사람들이 놀고 있는 노인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경제·사회적인 문제를 불러온다. 전통사회(농경사회)에서 근대사회(산업사회)로 전환을 이룬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젊어서 일하고, 늙어서는 젊은 시절에 비축한 공공 연금으로 노후를 보내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런데 늘어난 평균 수명은 안 그래도 적게 붓고 많이 찾아가는 연금 제도의 취약성을 뿌리째 뒤흔든다. 이 책 45쪽에 나왔듯이 고령 사회는 공공연금제도의 위기를 불러오고, 그것은 곧 복지정책의 와해로 귀결된다.
바닥난 연금을 메우기 위해 현역 노동자와 젊은이들이 더 많은 세금을 물어야 한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런 현상을 우리나라에 대입해 보면, 노동 인구(20~64세) 대비 노인 인구의 비율이 11.4%인 2000년에는 9명의 젊은이들이 노인 1명을 부양했지만, 노인 인구가 노동 인구에 비해 23.1%로 늘어나는 2020년에는 젊은이 4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사태에 이른다.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 71~74쪽에서는 ‘고령 사회’가 되면 피치 못하게 세대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견한다. 다시 말해 연금을 깎고 세금을 덜 내려는 젊은 세대와 연금을 고수하려는 고령자들 간의 세대 전쟁이 벌어진다는 것인데, 이 책 서문에 따르면 이미 그때는 고령자들이 유권자의 절반을 차지해버린 때여서, 고령 시대의 세대 전쟁에서는 늙어 ‘고려장’을 당했던 옛날과 달리 오히려 젊은이들이 ‘고려장’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젊은 세대의 반발이 뒤따를 것이다. 그러나 정치의 주역이 고령 세대로 넘어간 상황에서 젊은 세대는 그야말로 손발이 꽁꽁 묶이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74쪽)
이런 예측은 우치다 미츠루·이와부치 카츠요시가 함께 쓴 『실버데모크라시-고령화 시대의 새로 쓰는 정치학』(논형, 2006)에 자세하다. 그 책은 1990년대를 기점으로 미국과 일본에서 행해진 여러 선거에서, 고령 유권자의 비율·각 세대별 투표율 가운데 고령 유권자의 투표율·전체 투표율 가운데 고령 유권자의 비율이 눈에 띄게 높아진 것을 보여 준다. 이런 통계는 유권자가 고령화와 고령 유권자의 높은 정치 참여율을 동시에 보여준다.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는 기대한 것과는 달리, 그리고 저자가 서문에서 강조한 것에는 미치지 못하게, 고령화 문제에 접근하는 생물·생태학자의 관점이 썩 강하게 드러나진 않았다. 까닭은 생물·생태학자의 통상적인 관점에 포획되지 않을 만큼 인간이 ‘비생물학적이고, 반생태적’이기 때문이다. 마빈 해리스의 논의를 잠시 언급했듯이, 산업화 시대 이후 선진국에서 급격한 저하를 보인 출산율은, 모든 생물체가 본능으로 가지고 있다는 ‘번식(출산)’이 인간에겐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저출산이라는 생물학적인 예외 상황을 설명하기 힘든 탓에, 이 책은 고령 사회가 불러올 경제적 환난을 중심에 놓고, 고령 사회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찾고자 한다. 정년 연장·제2의 인생(인생 2모작)· 조혼·여성인력 활용·양육 환경(보육원)·이민 제도 개선과 같은 해결책이 그것이다.
고령 사회는 개인의 문제이면서 가족의 문제이고, 나아가 사회(국가)의 문제이다. 그것은 서로 분리가 되지 않을 만큼 복합적이고 연쇄적이다. 예를 들어 은퇴 이후의 노후 대책을 준비해 놓지 못한 노인은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으며(가족의 해체), 가족의 해체는 또 다른 사회 구조 변동을 낳는 식이다. 하지만 예로 든 경제적 문제로의 자동기술적인 환원성에도 불구하고, 고령 사회를 몸소 겪을 고령자의 실존적인 문제는 반드시 거론되어야 한다.
고령 사회에서 대다수 노인들이 겪을 경제적 불안과 고통은 예방되고 해소되어야겠지만, 고령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산업화가 노인들로부터 빼앗은 ‘위엄’을 노인들에게 되찾아 주는 것이다. 경제적 복지와 함께, 현대 사회가 노인들에게 걸맞은 ‘위엄’을 그들에게 부여해 주지 않을 때, ‘배부른 고령화 사회’는 존재할 수 있더라도, ‘위엄 있는 고령화 사회’는 있을 수 없다. 실제로 노인을 생산력이 쇠퇴한 잉여의 존재로 보는 관점은 몇천 년이나 지속된 인류사에 비춰보면, 극히 최근에 생겨난 것에 불과하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우정에 관하여』(숲, 2005) 가운데 전편은, 얼마나 노년을 찬양하는가! 다시 강조컨대, 고령화 문제란 고령화로 인해 사회 전체가 짊어져야 할 경제적 부담이란 면도 중요하지만, 고령화를 맞은 개개인에게는 실존적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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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장정일
시인, 극작가, 소설가. 1984년 <언어의 세계>에 「강정 간다」외 4편의 시를 발표한 이래로,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