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홀리데이(1915∼1959). 재즈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빌리 홀리데이인 줄 모른 채 한 번쯤은 그녀의 노래를 들어 보았을 것이고, 그것도 아니면 CF 음악을 통해서라도 무심결에 접했을 재즈 가수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목소리’라는 부제를 가진 도널드 클라크의 『빌리 홀리데이』(을유문화사, 2007)는 제목 그대로 그녀에 대한 전기다. 이 책이 나오기 전에 우리나라에서 오래 통용된, 그러나 지금은 절판되고 없는 빌리 홀리데이의 자서전이 바로 윌리엄 더프티의 『레이디 싱스 더 블루스』다. 1956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은 신빙할 수 없는 ‘구라’로 악명 높지만, 빌리 홀리데이가 감수한 자서전이라는 명성 탓으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도널드 클라크는 본서의 머리말에서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대필 작가가 집필한 그녀의 자서전은 오류투성이였고, 1972년에 제작된 영화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더욱 공고히 했다”고 그 책을 비난하고 있다.
저자는 1장의 앞머리에 “빌리 홀리데이의 인생이나 작품 어느 것도 유럽식 청교도 교리의 잣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쓰고, 2장의 어느 대목에서는 미국 문화에서는 “그 누구도 인종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서 “이것은 이 책이 다루는 첫 번째 주제이기도 하다”고 밝혀 놓았다. 하므로 독자는 저자가 밝혀 놓은 두 개의 명제가 어떤 식으로 상호 연결되는지를 살펴야 한다.
예컨대 빌리 홀리데이의 가계야말로, 첫 번째 명제와 두 번째 명제를 포개 보아야 비로소 이해가 가능해진다. 빌리 홀리데이의 증조할머니가 레베카 페이건이라는 사실은 그 집안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증조할아버지인 페이건 씨에 대해서는 그 집안사람들조차 전혀 알지 못한다. 또 빌리 홀리데이의 할아버지인 찰리 페이건은 할머니 매티와 법률혼 관계였지만, 빌리 홀리데이의 어머니인 세라 해리스를 낳은 여자는 매티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빌리 홀리데이를 낳은 어머니는 세라 헤리스가 맞지만, 아버지는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다. 출생증명서에 기재된 프랭크 디비즈라는 설과 홀리데이가 성을 물려받은 재즈 기타리스트 클레런스 홀리데이라는 설이 아직도 대립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가 누가 되었건 간에 빌리 홀리데이가 출생했을 때 두 사람은 빌리 홀리데이의 어머니인 세라 해리스가 아닌 다른 여자들과 결혼한 유부남들이었다는 사실이다.
3대에 걸쳐서, 이와 같은 출생의 수수께끼가 반복되는 것은 왜일까? 저자가 말한 ‘유럽식 청교도 교리’까지 갈 필요 없이, 그냥 우리나라 상식대로 해도 저건 ‘콩가루’ 집안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저자는 그 ‘잣대’를 버리라고 말했던 바고, 빌리 홀리데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 문화 속의 ‘인종주의’에 주목해야 한다고 쓴 것이다:
“[노예 시절에서 처럼]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겪는 비통한 심정은 후대에 와서도 치유되지 않았다. 인종 차별은 제도화되었다. 흑인들이 사회적으로 행세하는 데는 늘 압박이 따랐다. 그렇게 하고 싶어도 이류 시민의 사회?경제적 취약성으로 인해 그들에게는 그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특히 흑인 음악가들의] 다수가 떠돌이였다. 그 이유는 백인들에게는 흑인 여성보다 흑인 남성이 더 위협적이었기 때문이며, 다라서 그들은 더욱 철저히 소외당해서 실제로 전통적인 남성의 본분인 가장 역할마저 해낼 수 없을 정도로 무능력자가 되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었다.
미국 내에서의 흑인 차별은 그들을 제대로 된 시민이나 가장으로 살 수 없게 했고, 흑인 사회에 만연한 난봉과 이산은 그것의 결과다. 술과 마약으로 만신창이가 된 끝에 34세와 44세로 단명했던 찰리 파커와 빌리 홀리데이는 그처럼 살 수밖에 없었던 무수한 흑인들 가운데, 한 줌의 재즈계를 대표했을 뿐이다.
빌리 홀리데이는 흑인이지만, 할아버지였던 찰리 페이건은 백인과 흑인 사이에 출생한 물라토였다(1910년 이전까지는 물라토가 백인으로 분류됐다). 밝은 피부색과 곱슬하지 않은 머릿결을 가졌던 빌리 홀리데이는 그래서 백인과 흑인 사회 양쪽으로부터 경원당했는데, 카운트 베이시 밴드에서 일할 때 그녀는 얼굴을 검게 분장해야 했다. 그 당시에는 백인 여성 싱어가 흑인 밴드와 함께 출연하는 게 금지됐었기 때문이고, 그녀의 피부는 여느 흑인과는 달리 너무 엷었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불렀던 <이상한 과일 Strange Fruit>은 가장 단호하고도 정열적으로 인종차별을 고발한 노래로 평가된다.
재즈 관련서를 읽어보면 알게 되지만, 재즈사는 재즈 보컬을 취급하지 않는다. 재즈의 본령인 기악이 ‘사람의 목소리’를 지향하기 때문에, 재즈 보컬은 그만큼 재즈 음악의 사족으로 떨어지고 만다. 다시 말해 재즈에서 재즈 보컬이란 ‘사람의 목소리를 지향하는 사람의 목소리’나 같은 게 되어버리니, ‘역전앞’처럼 우스꽝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때문에 재즈사는 재즈 보컬을 아주 인색하게 언급한다. 크라운판으로 700여 쪽이 넘는 요아힘 E. 베렌트의 『재즈북』(이룸, 2004)은 스타일, 개별 음악가, 재즈의 구성 요소, 특정 악기들을 세분해서 기술하면서도, 재즈 보컬은 아예 20여 쪽이 조금 넘는 지면 속에 ‘남성 보컬리스트’, ‘여성 보컬리스트’를 묶어 도매로 처리해 버린다. 거기서 빌리 홀리데이는 압도적인 분량을 차지하면서 “최초의 재즈 싱어일 뿐만 아니라, 재즈의 모든 분야에서 최초의 아티스트였다”는 찬사를 받는다. 그리고 이런 찬사는 “노래까지 부르는 뮤지션에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빌리는 최초로 위대한 뮤지션인 가수였다”는 본서의 평가와 상통한다. 재즈 초창기에는 재즈 보컬이란 독립된 뮤지션으로 존재했던 게 아니라, 기악 연주자나 댄서? 코미디언이 여가로 해야 하는 부수적인 기예에 불과했다.
두터운 분량이 부담스러운데다가 너무 많은 인터뷰 자료가 성가시긴 하지만,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를 좋아하는 애호가는 물론이고, 재즈 역사의 뒤안길을 샅샅이 탐험해 보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놓칠 수 없는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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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장정일
시인, 극작가, 소설가. 1984년 <언어의 세계>에 「강정 간다」외 4편의 시를 발표한 이래로,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