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
루이스 세풀베다의 『핫 라인』(열린책들, 2005)을 읽다. - 『연애 소설 읽는 노인』과 『지구 끝의 사람들』에 이어 세 번째로 읽은 세풀베다의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그의 여느 작품과 같이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원고지 400매 안팎의 중편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번 작품을 읽고 나니, 분량보다 더 중요한 세풀베다의 특징이 한눈에 들어온다.
세풀베다의 주인공들은 언제나 ‘패배자’들이다.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의 노인과 살쾡이가 그랬고, 『지구 끝의 사람들』에 나오는 환경운동가들과 범고래가 그렇다. 이번 작품에서는 앞서의 두 작품과 달리 동물이 나오진 않지만, 백인들이 들어오기 전에 칠레의 주인이었던 마푸체 인디오와 피노체트 독재에 항거한 민주 인사들이 짝을 이룬다. 세풀베다가 왜 패배자들을 거듭 주인공으로 삼는지에 대해서는 그의 육성을 들어보지 못했다. 대신 이 책의 역자는 대답한다: “행동하는 작가인 루이스 세풀베다는 그러한 자연을 통해 자신의 조국 칠레가 안고 있는 아픈 상처를 끄집어내 치유하고자 했다. 그에게 작가란 존재는 목소리를 갖지 못한 자들의 대변인이다. 그래서 세풀베다의 작품에는 대체적으로 사회·정치적 메시지가 강하게 깔려 있고, 소외된 자들과 고통받고 억압받는 자들이 주로 등장한다. 그에게 문학이란 실제로 쓸 수 있고 쓸 줄 아는 것들을 모두 보여 줄 수 있는 민주적인 공간이며, 얘기할 수 있는 능력만이 중요시된다. 공식적인 역사는 승리를 거둔 자들이 써왔고, 다른 역사는, 즉 진짜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진정한 역사는 늘 작가들이 써왔으며, 세풀베다는 그러한 작가의 사회적 기능을 그냥 간과하지 않았다.”
세풀베다의 또 다른 특징은 ‘장르 소설’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발표하는 작품마다 뚜렷한 장르적 특징을 가진다. 앞의 두 작품이 자연을 무대로 한 ‘모험 소설’과 흡사하다면, 이번 소설은 전형적인 ‘범죄 소설’이다. 정당한 직무를 행사한 대가로 한직으로 밀려난 형사가, 낯선 임지에서 과거와 무관하지 않은 새로운 사건에 휘말리는 플롯은 누아르 영화(Film noir)를 연상시키고, ‘폰 섹스’라는 신종 매춘을 통해 칠레의 과거사를 파헤치는 방법은 사회파 추리소설이나 하드 보일드 소설hard-boiled fiction을 닮았다.
솔직히 『핫 라인』은 앞서 읽은 두 작품보다 빈약하고 메마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드러진 장르적 관습의 활용이 자신의 메시지를 대중들에게 폭넓게 알리기 위한 방법적 차용이라는 점은 곱씹어 볼만하다. 작가는 이 책의 서두에 이 문제에 대해 스스로 해명하는 서문을 써놓았다: “이 글을 써내려 가면서 내가 결국에는 대중 연재소설에 깊숙이 관여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차츰 깨달았다 ― 문학은 항상 놀라움 자체이다. 대중 연재소설은 서술의 대중화와 동시에, 문학의 대중화를 시도한 알렉상드르 뒤마(1세)와 같은 19세기 선배들이 가꾼 장르이다 (…)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대중 연재소설이다. 대중 연재소설이 과거의 장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뒤마가 『몽테크리스토 백작』에서 ‘잊지도 말고 용서하지도 말자’라는, 우리에게 남겨준 도덕적 유물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성실한 자들을 결속시킬 수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3월 2일
1995년 3월 20일. 옴 진리교의 교주 아사하라 쇼코의 지령을 받은 행동대원들이 화학무기나 다름없는 사린 가스로 도쿄 지하철을 공격했다. 일본 열도를 뒤흔든 이 사건은 숱한 보고서를 쏟아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무덤덤했다. 아무래도 현해탄 건너의 얘기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후지와라 신야의 『황천의 개』(청어람미디어, 2009)는 14년 전, 바다 건너 나라에서 생긴 희대의 사건을 ‘줌 인(zoom in)’하듯 쭉 끌어당겨, 우리 면전에 제시한다.
신흥종교의 번성은 흔히 기성 종교의 무기력과, 경쟁적이고 개인적인 문화가 지배하는 곳에서 자라나는 암종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이 책을 쓴 후지와라 신야는, 아사하라 쇼코라는 엽기적 교주의 탄생을 전혀 다르게 파악한다. 저자는 이 사건을 다루는 매스컴들이 “들춰내봤자 서로 꺼림칙해지는 문제의 본질”을 암묵적으로 덮어 버렸다고 주장한다.
모성원리를 바탕으로 한 인도의 종교는 부성원리로 축조된 중동의 종교와는 달리 아마겟돈이나 종말론이 없다. 그런데 아사하라 쇼코는 인도의 종교를 섭렵한 끝에 정반대의 기독교 교의에 접근했다. 아마겟돈을 위해 핵무기를 비축하고자 했던 그에게, 고작 12명의 사상자를 낸 지하철 공격은 예행연습에 지나지 않는 거였다.
어떤 종교의 힘으로도 제어되지 못했던 아사하라 쇼코의 원념(怨念)이 비롯한 데를 찾기 위해, 저자는 아사하라 쇼코의 고향과 생가를 방문한다. 그리고 현지에 가서야 아사하라 쇼코가 살았던 바닷가 고향이 질소공장에서 흘러나온 수은 중독으로 악명 높은 항구 도시 미나마타와 지척이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육지에서 30여 킬로미터라면 꽤 먼 거리지만, 어류들에게 그 거리는 먼 게 아니다.
수은에 중독된 생선을 주식으로 했던 아사하라 쇼코 형제는 어린 시절에 멀쩡한 시력을 잃었다. 그것은 미나마타병의 증상 가운데 하나였으나, 미나마타와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보상이 거절됐다. 뿐 아니라, 미나마타병에 걸렸다고 신고를 하면 “빨갱이로 몰아” 세우고 가족을 괴롭힌 탓에, 더 이상 싸울 수 없었다.
대개의 종교는 국가와 현실을 초월한 자리에 자신의 정토를 건설한다. 하지만 자신의 교단을 정부기구와 같은 조직으로 만든 아사하라 쇼코의 행로는 달랐다. 옴 진리교 시설들은 천황의 왕궁을 포위한 형국으로 배치되었는데, 그것은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자의 선전 포고였다. 무엇보다 복수의 수단으로 눈을 멀게 하는 사린 가스를 쓴 것은, 그의 복수가 인과응보라는 신념에 의해 진행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물은 그냥 흘러가지만, 피는 반드시 돌아 온다’ 운운하는 시를 이십 대 때 쓴 적이 있다. 아사하라 쇼코의 예를 통해 보았듯이, 한 나라의 공의가 작동하지 않을 때, 애꿎게 공격받는 것은 사회다. 이를테면 삶의 터전을 앗기고 생명을 잃은 용산참사의 희생자들을 겁박하며 ‘도시 게릴라’니 ‘떼잡이들’이라고 몰아가는 일은 사회를 무덤으로 내차는 것과 같다. 이 독후감은 『황천의 개』의 극히 지엽적인 주제만 언급했다. 좋은 책이다.
3월 6일
잭 런던의 『암살주식회사』(문학동네, 2005)를 읽다. - 1910년 3월 11일, 잭 런던은 싱클레어 루이스에게 칠십 달러를 주고 열네 편의 짧은 소설 개요를 샀다. 『암살주식회사』는 그 가운데 하나다. 많은 개요 가운데 워낙 구미가 당겼던지 잭 런던은 즉시 이 작품을 집필하기 시작해서, 같은 해 6월 말쯤에 3의 2분량을 썼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결말을 맺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집필을 포기했다. 미완성인 채 남겨진 유고를 바탕으로 추리소설 작가 로버트 L. 피시가 결말을 완성한 게 바로 이 작품이다.
잭 런던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다재다능하고 패배를 모르는 의지인들이라서, 피가 도는 인간이라기보다는 ‘스위스 군용칼’ 같다. 이번 소설의 주인공 이반 드라고밀로프는 정도가 심해서, 거기다가 정밀한 ‘스위스 시계’를 부착해 놓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작품은 ‘도덕적 광인’들의 논리를 쫓아가는 재미를 준다. 그런 뜻에서, 작가가 메모해 놓았지만 완성하지 못했던 결말이 훨씬 재미나다. 그렇긴 하더라도 『강철군화』에서 좌절된 노동자들의 혁명이, ‘비밀의 화원’식의 도덕적 테러리즘으로 변한 모습을 목격하는 일은 씁쓸하고 착잡하다!
사족이다. 함께 읽고 있는 토마스 아이크의 『잭 런던』을 보면, 싱클레어 루이스와 거래하기 이전인 1901년, 잭 런던은 『암살주식회사』와 흡사한 『마이다스의 노예들』을 쓴 바 있다.
--------------------
필자 소개
장정일
시인, 극작가, 소설가. 1984년 <언어의 세계>에 「강정 간다」외 4편의 시를 발표한 이래로,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