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1일
조너선 D. 스펜스의 『중국인 후의 기이한 유럽 편력』(서해문집, 2007)을 읽다. - 역자에 따르면, 저자는 미국 내 중국사 학계를 대표하는 역사학자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의 본격적인 중국사를 접하지 못했다. 1995년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에서 출간되고 2002년 이산에서 새로 번역되기도 한 『왕여인의 죽음』을, 10여 년이 훨씬 넘는 옛날에 읽었을 뿐이다. 그런데 헌책방에서 구입한 이 책 역시 중국사의 본류는 아니다. 주류 역사에 포함되지 않는 장삼이사의 행적을 통해 당대의 일상을 그리려고 한다는 점에서 이번 책 역시 전작과 같은 범주에 든다.
스펜스가 이 책을 구상하게 된 것은 이태리 여행 중인 야간열차 안에서, 어느 예수회 출신 대학교수가 20여 년 넘게 청나라에서 포교 활동을 했던 장프랑수아 푸케 신부에 대해 쓴 흥미진진한 연구서를 읽고서였다. 푸케는 중국에서 보낸 22년 동안의 중국 포교 활동을 통해 세 가지 견해를 갖게 됐다. “첫째는 『주역』 같은 고대 중국 종교 서적의 기원이 신神에게 있다는 사실, 즉 하느님이 이것을 중국인에게 부여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중국 경전에 나오는 ‘도道’라는 말이 가톨릭 교인이 숭배하는 진정한 하느님과 동일한 것을 표상한다는 사실이다. 셋째는 아주 많은 중국 원전에서 근원의 진리를 언급하는 데 사용된 ‘太極태극’이라는 철학 용어도 똑같이 신에게서 비롯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30쪽)
중국의 전통 속에 숨어 있는 가톨릭적 요소를 찾아내 중국 선교에 활용하고 또 가톨릭과 유교의 일치점을 찾아내려는 예수교 선교사들의 견해를 형상주의(Figurism)라고 하는 데, 푸케는 유별나게 거기 심취했다. 부족하지만, 68쪽과 146쪽을 보아 추측건대, 아마 푸케는 가톨릭 교의를 중국인에게 쉽게 전하기 위해 기존의 중국 경전에서 가톨릭 교의와 비슷한 용어를 빌려 쓰는 격의格義에 만족하지 않고, 그 이상의 것을 주장한 것 같다. 특히 그는 중국의 표의문자와 경전을 연구하면서 중국 문자와 경전 속에 아직 유럽에 알려지지 않은 창세의 비밀이 있으며, 중국 문자의 기원 속에 유럽의 교부들도 알지 못하는 진리가 있으리라고 믿은 것 같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이 책은 자세히 말하고 있지 않지만, 어떤 한자들은 그 속에 창세의 비밀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자 가운데 사물의 모양(形)을 본떠(象) 그림을 그리듯이 만든 상형문자象形文字는 이해하기 쉽다. 산의 모습을 그린 산山이나, 아기에게 젓을 먹이는 어미 모母가 그렇다. 그런데 기존의 글자들(意)을 결합하여(會) 새로운 뜻으로 만든 회의문자會意文字는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예를 들어 거기에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어떤 뜻이 없다면, 왜 하필 ‘배 선船’은 ‘배 주舟 + 여덟 八 + 식구 口’로 결합되었어야 했을까? 성서의 창세 신화에 따르면, 노아의 홍수 때 방주에 탄 사람이 바로 여덟 명의 식구다. 그렇다면 왜 ‘금할 금禁’은 하고많은 결합 가운데 하필이면 ‘나무 목木 + 나무 목木 + 볼 시 示’로 결합되었을까? 두 개의 나무를 동시에 바라보는 것은 금지라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중국인들은 저런 사고를 하게 되었을까? 이 또한 성서의 창세 신화가 답을 가르쳐 준다. 먹을 수 있는 나무와 먹을 수 없는 나무(선악과)를 한꺼번에 바라보는 것은 금지인 것이다. 성서의 창세 신화를 따르면, 왜 ‘나무 목木 + 나무 목木 + 계집 여女’의 조합이 ‘탐할 람?’인지도 유추가 가능하다.
형상주의자들에게 위의 한자들이 성서의 창세 신화를 품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원래 인류는 바벨탑 이전까지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였으나, 분노한 신이 여러 가지 언어로 소통을 불가능하게 하자, 서로 말이 통하는 사람끼리 집단을 이루어 흩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똑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재료로 만들어진 세계 각지의 창세 신화는 비슷할 수밖에 없으며, 중국인들 역시 그들의 문자를 만들면서 공유했던 기억을 조합해서 추상적인 회의문자를 만들었다.
다시 『중국인 후의 기이한 유럽 편력』으로 돌아가자. 중국 포교에 나섰던 예수회 신부들이 모두 형상주의에 동의했던 것은 아니고, 이 책 역시 형상주의를 탐구한 책이 아니다. 단지 푸케 신부는 포교 방법론으로서의 격의에 불과했던 형상주의 이상을 믿었고, 그것을 좀 더 연구하여 유럽에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광저우에서의 포교 활동을 마지막으로 프랑스로 귀국하면서 약 4천 권의 중국 원전을 열한 개의 책 상자에 담았다. 그리고 유럽까지 따라와 원전을 해석하는 데 도움을 줄 중국인 조수를 찾았다. 청나라 황제는 안보상의 이유로 중국인의 해외여행을 막고 있었던 데다가, 번듯한 중국인 학자들은 아무도 푸케의 청에 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구하게 된 것이 광저우 예수회 포교당의 문지기인 요한 후였다.
앞서 말한 것처럼, 스펜스가 이 책을 구상하게 된 것은 어느 예수회 출신 대학교수가 푸케 신부에 대해 쓴 연구서를 보고서였다. 그 연구서는 푸케를 따라나선 후의 얘기를 연구서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 간략하게 언급해 놓았는데, ‘역사 이야기꾼’인 스펜서가 그 대목을 놓칠 리 없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온갖 자료와 문서보관소를 뒤졌다.
가톨릭 신자이기도 했던 후는 마흔 살의 홀아비였다. 그는 푸케가 제시하는 급료와 유럽을 다녀와 여행기를 쓰겠다는 일념으로 푸케를 따라나섰다. 하지만 그는 7개월이 넘는 항해 기간 동안 선원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환각 증세를 보이는 등 푸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1722년 프랑스에 상륙한 후는 푸케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고, 번역일을 맡지 않았으며, 가출을 하거나 혼자 있기를 원했다. 로마로 초대된 푸케는 애초의 목적에 쓸모가 없어진 후를, 피터 바이스의 희곡 『마라/사드』의 무대로 등장하는 샤랑통 정신병원에 맡겼다. 4년 동안이나 감금 생활을 했던 후는, 새로 부임한 파리경찰청장의 판단으로 광저우로 되돌려 보내졌다.
이 책의 155쪽에서 저자는 “후가 정말 정신이 나간 것인지 아니면 제정신인지 진짜로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일부는 그렇다고 얘기하고 다른 일부는 아니라고 얘기”한다고 쓰면서, 자신의 판단을 유보한다. 116~118쪽에 실린 일화를 보면, 급격한 환경의 변화와 언어상의 소통 부재가 가엾은 중국인을 일시적인 공황에 빠트린 게 분명하다. 1726년 광저우에 도착한 후는 자신의 ‘유럽 체험’을 얘기하면서 여생을 보냈는데, 그가 바랐던 ‘유럽 여행기’를 남겨 놓지 않은 건, 손실이다.
2월 22일
미야모토 테루의 『우리가 좋아했던 것』(작가정신, 2007)을 읽다. - 작중 한 대목을 먼저 인용한다:
“앞으로 조금 있으면 이십 세기도 끝이야. 지금 우린 한 시대의 황혼에 있는 거야.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날아오를 때야.”
당나귀는 몇 번이나 그 말을 입에 담으며 촬영 기자재를 점검했다.
“어떤 학문과 철학이 날아오를까?”
내가 말했다.
“인간을 위한 학문이나 철학이지. 권력가나 위정자나 특권계급을 위한 사기 같은 이데올로기에 철퇴를 가하는 학문이나 철학.”
위의 대화를 나눈 두 사람은 곤충을 전문적으로 찍는 사진가와 인테리어 회사의 조명 전문 디자이너. 둘 다 31살 먹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이 보통 사람들이 ‘인문학의 부활’을 얘기하고 있는 셈인데, 그들이 고대하는 학문과 철학은 별다른 게 아니다. 이처럼 되풀이 언명되고 있으니: “우리 네 사람은 곤란에 빠진 남을 못 본 척할 수 없는 그냥 마음씨 좋은 사람일 뿐이다”, “우린 병에 걸렸어. 상대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주려는 병에 걸렸어 (…) 우리는 뭔가에 씌었어. 우리, 남의 행복을 위해 힘을 보태는 걸 좋아해. 우리라는 존재가 이미 그렇게 만들어졌으니 어쩔 도리가 없어. 이건 전생의 업 같은 거지. 그렇지만 남의 행복을 시기하고 남의 성공에 침을 뱉는 업을 지고 태어나지 않은 것을 정말 행복하게 생각해”, “세상을 위해 인간을 위해 살아” 등등.
언뜻 생각해 보면, “인간을 위한 학문이나 철학이지. 권력가나 위정자나 특권계급을 위한 사기 같은 이데올로기에 철퇴를 가하는 학문이나 철학” 어쩌고 하는 대목이, 굉장히 이질적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대화는 원래 주인공들이 고민했던 사항도 아니며 또 작품의 주제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칫, ‘겉멋’이나 ‘잡 신호’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그게 전혀 어색하지 않고, ‘참 잘 앉혔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건, 우리 모두가 그런 질문들과 갈증을 가슴에 심어 놓고 살기 때문이다.
단지 작중의 두 남자 주인공들이나 현실 속의 우리들이, 철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문득 솟아오른 질문만 있고, 거기에 대한 답은, 글이나 논리가 아니라, 바로 그들의 삶으로 대신하게 된다. 다시 말해 작중의 주인공들은 “인간을 위한 학문이나 철학” 혹은 “권력가나 위정자나 특권계급을 위한 사기 같은 이데올로기에 철퇴를 가하는 학문이나 철학”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나를 덜어 주고, 이웃과 연대한다’는 삶의 실체로 대답한다. 이것은 글이나 논리를 뛰어넘어, 곧바로 그들이 할 수 있는 ‘인문학적인 실천’으로 넘어가 버린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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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장정일
시인, 극작가, 소설가. 1984년 <언어의 세계>에 「강정 간다」외 4편의 시를 발표한 이래로,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