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0일
고바야시 다키지의 『게공선』(문파랑, 2008)을 읽다. - 공선은 배 안에 통조림을 만들 수 있는 시설이 만들어져 있는 배로, 게공선이란 게를 잡아 통조림으로 가공하는 배다. 이 낯선 이름의 작품이 발표된 때는, 일본이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를 향해 직진하던 1929년.
게공선을 타고 캄차카 바다로 떠난 빈농·실직자·고학생 무리는 가혹한 노동 여건과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생명을 위협당한 끝에, 소극적인 태업을 거쳐 단체 파업에 이르게 된다. 눈여겨볼 대목은 노동자들이 군국주의 국가와 자본가를 한통속으로 파악해 가는 과정이다. 게공선을 탄 여러 종류의 막일꾼들이 처음에는 국가를 절대 ‘선’으로 여기지만(100쪽), 첫 번째 파업이 실패한 뒤에야, 자본가의 이익과 군국주의 권력이 서로 야합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174쪽).
『게공선』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반짝 타올랐던 일본 프롤레타리아문학의 수작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 아무도 읽지 않는, 죽은 ‘신화’라는 말이다. 그런데 작년 일본에서는, 소모품처럼 버려지는 파견노동자(비일용직 노동자)와 일을 하는데도 늘 가난한 워킹 푸어(Working Poor)층의 급증으로 이 소설이 80여 년 만에 되살아났다. 2008년 한 해 동안 50만 권이 팔렸다니 가히 폭발적이다. 더욱 흥미롭게도 2007년 9월 ~ 2008년 8월 사이에, 일본 공산당의 신규 입당자가 1만 4천여 명을 넘어섰다고 하는데, 월평균 1천 명씩 늘어난 신규 입당 사태에 한몫 거든 게 바로 이 작품이라고 한다(<한겨레> 2009. 1. 2)
공산당원이자 프롤레타리아문학가였던 작가는 이 작품이 발표된 뒤, 『정글』을 썼던 미국 작가 업튼 싱클레어에 비견되기도 했다. 우선 두 작품은 작품 발표부터 순탄치 않았다. 토마스 아이크의 『잭 런던』(한울, 1992)에 따르면 “싱클레어는 이 책을 출판해 줄 출판사를 찾지 못해 하는 수 없이 스스로 출판사를 하나 만들어서야 겨우 책을 출판할 수 있었다”는 사정을 적고 있다. 마찬가지로 고바야시 다키지의 『게공선』 역시 그가 2회분으로 작품을 연재하기로 되어 있던 잡지 <적기赤旗>가 당국의 탄압을 받고 폐간됨으로써 독자를 찾는 다른 방도를 찾아야 했다.
이렇듯 작품 발표가 순조롭지 않았던 공통점이 있었으나, 작품이 발표된 이후, 두 작품과 작가는 다른 운명을 밟게 된다. 업튼 싱클레어의 『정글』은 이 미국의 도축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처우와 비위생적인 가공 과정을 개선했던 반면, 『게공선』을 쓴 고바야시 다키지는 치안유지법을 뒤집어쓰고 형무소에 갇혔다. 보석으로 출옥한 후 지하활동에 들어갔던 그는 스파이의 밀고로 체포되어, 세 시간 동안의 잔혹한 고문을 받고 죽었다. 30세였다.
2월 11일
요아힘 바우어의 『학교를 칭찬하라』(궁리, 2009)는 의과대학 교수이자 정신과 의사면서 오랫동안 신경생물학을 연구했던 저자의 학교와 교육에 관한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우등생과 열등생은 ‘유전자’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또 널리 퍼져 있는 오해와 반대로, 공격성이 인간의 본성에 내재한 ‘충동’이라는 점도 인정하지 않는다.
우등생과 열등생이 ‘유전자’의 문제가 아니며, 문제아들의 파괴적인 공격성이 그들의 본성에 내재한 본래의 ‘충동’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근거는 ‘거울뉴런 시스템(mirror neuron system)'이다. 인간의 뇌 속에 내장되어 있는 거울신경세포는 상대방이 나에게 보여주는 행동과 감정을 고스란히 복제하고, 거기에 반응한다. 예를 들어 교사로부터 ‘난 네가 더 잘할 수 있다고 믿어!’라는 격려를 받은 학생과, ‘내가 너한테 뭘 기대하겠냐!’라는 조롱의 말을 들은 학생이 걷게 될 미래는 다르다.
학생의 거울신경세포는 교사의 신뢰와 기대에 부응한다. 거울뉴런 이론에 따르면, “상대가 나를 봐주고, 주의를 기울여주고, 인정해주기를 원하는 욕구”는 생물학적인 기본적 욕구다. 교육은 그것을 벗어나 이루어질 수 없다. 하지만 2007년 출간되자마자 금세 베스트셀러가 되어 지금까지 꾸준히 읽히고 있다는 독일에서나, 막 번역본이 나온 한국에서, 교육의 기본이 교사와 학생 사이의 긍정적인 ‘관계 맺기’와 피드백에서 시작한다는 전제는 점차 사라져 간다.
신경생물학이 가르쳐주는 삶의 기본적인 동기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는 인정과 호감이다. 인간은 지속적인 인정과 신뢰 속에서 안정된 정체감을 유지하게 되고 창의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 더욱이 성장 과정의 아이들에게 그것은 필수적인 ‘비타민’이다. 그것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한 아이들은 공격적이 되어 학교와 사회에 복수하거나, 현실에서 받지 못한 인정을 인터넷 게임과 같은 가상 세계에서 보상받고자 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나라와 독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교 붕괴’의 양상과 원인은 거의 흡사해 보인다. 그 가운데 하나가 말 많은 학업성취도 평가다. 이에 대해 저자는 “개인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이 아이들에게 해주지 못하는 모든 것을 학교가 보상해 줄 수 없”다는 것은 뻔한 사실인데도, 좋은 평가를 내지 못한 교사들을 비판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한다. 교육이 학생들로 하여금 행복감을 낳게 하는 ‘예술’이 아니라, 우열을 나누고 점수를 ‘펌프질’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안·공(安·孔) 양씨가 달달 외운 다음, 국민 앞에서 시험을 쳐야 할 책이다.
사족: 안·공 양씨란, 안병만과 공정택.
2월 18일
켄 가이어는 신학교를 나와서 십여 권이 넘는 신앙 관련서적을 낸 크리스천 저술가면서, 영화 시나리오 작가다. 그는 그 독특한 이력으로 『영화묵상 - 가장 뜻밖의 장소에서 듣는 하나님의 음성』(두란노, 2001)을 썼다. 이 책에서 그는 신앙과 영화 간의 균형 잡힌 관계를 말할 뿐 아니라, 영화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고 나아가 하나님과 만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의 상식은 아니라고 말한다. 폭력과 관능을 가위질하고 나면 더 볼 게 없는 영화가 많은 게 사실이며, 누가 어떤 종교를 믿든, 신앙과 영화는 물과 기름 같은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달리 말한다. 시편 139편에 나오는 다윗의 말을 빌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피하여 달아날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다”면서, “마음이 아무리 멀고 극장이 아무리 어두워도, 거기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찾으시고 만지시며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초대했던 바리새인은 창녀의 외면만 보고 면박했으나 예수님은 창녀의 내면을 보았듯이, “우리는 영화에도 그렇게 접근해야 한다. 외면의 거부감을 주는 장면들 때문에 내면의 아름다움을 놓쳐서는 안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교회에서든 극장에서든 “한순간이 우리를 만질 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은혜의 통로”가 될 수 있다.
1부에 실린 아주 짧고 흥미로운 다섯 편의 총론을 읽고 나면, 영화 묵상의 실례를 보여주는 2부의 각론과 만난다. 여기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죽은 시인의 사회>·<쉰들러 리스트>·<아마데우스>를 비롯한 14편의 헐리우드 영화는 하나님을 묵상하는 훌륭한 교재가 된다. 딱히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영화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우리가 즐긴 영화에 대한 또 다른 시야를 얻을 수 있으며, 덤으로 예술 체험과 비평에 대해서도 성찰할 기회를 갖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안티’만이 능사인 우리나라의 기독교 문화 운동에 대해 생각해 본다. 특정한 소설이나 만화·음악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안티는, 일시적인 효과는 있지만, 알고 보면 소탐대실이다. 전력을 다해 마광수·이현세·마이클 잭슨을 단속하고 나서 고작 기독교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개독’이란 욕뿐이다. 이런 운동은 기독교 교단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문화 일반에도 해롭다.
원래 안티는 폐쇄와 적빈과 불임을 낳을 뿐, 생산하지는 못한다. 그것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작품과 아티스트를 열렬히 옹호하거나 지원하며, 그런 작품을 우리 앞에 내어 놓는 게 윗길이다. 그게 말의 엄격한 의미에서의 문화고, 문화 운동이다. 기독교 문화 운동가들은 안티를 전능의 물매처럼 휘두르기보다, 당신들이 진정 좋아서 즐기고 가치롭게 여기는 것을 내놓아야 한다. 이것이 켄 가이어를 읽으며 느낀 소감이다.
사족: 이 책을 발견한 것은 단골 헌책방의 기독교 관계 서가에서였다. 큰 제목 밑에 현저히 작은 크기로 적혀 있는 저자의 이름을 보고, 처음에는 중국의 영화 감독 첸 카이거로 착각하고 깜짝 놀랐다. 그의 영화에 언뜻언뜻 보이던 영성 추구가, 막 기독교인의 것으로 수렴되려는 찰나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첸 카이거가 아니라 켄 가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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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장정일
시인, 극작가, 소설가. 1984년 <언어의 세계>에 「강정 간다」외 4편의 시를 발표한 이래로,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