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7일
자비에르 드 메스트르의 『내 방 여행』(지호, 2001)을 읽다. - 이 책을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자비에르 드 메스트르는 1763년, 프랑스 남동부 지역의 사보이 왕국에서 태어났다(1860년 사보이 왕국은 프랑스에 편입됨). 하지만 그는 많은 기간을 러시아에 거주했으며, 1852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일기를 마쳤다. 1790년, 토리노에서 장교로 복무하던 스물일곱 살 난 젊은 백작 자비에르는 한 장교와 법으로 금지된 결투를 하고, 42일간의 가택 연금형을 받는다(본문이나 역자 해설은 결투하게 된 이유를 밝히고 있지 않지만, 본문으로 추측건대 여자 문제가 아니었을까).
역자는 자비에르 백작이 받은 벌에 대해 “젊은 사관에게 내려진 벌치고는 가혹한 것이었다”고 쓰고 있다. 나라의 법을 어긴 죄수가 감옥도 아닌 가택 연금이란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것이니, 당대의 잡범들이 받았을 진짜 ‘가혹’한 처벌에 비하면 상당히 관대했던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비에르가 받은 가택 연금형도 감옥의 일종이 분명하다면, 『내 방 여행』 또한 감옥이 탄생시킨 기다란 도서 목록 가운데 잠시 언급해야 할 책이다.
자비에르는 집 안에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자신의 방을 여행하기로 했다. 이 여행기(?)를 파리에서 초간했던 사람은 자비에르의 형 조제프였는데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출간된 본서의 「1811년판 서문」에 마젤란(1480년경~1521. 포르투갈의 항해가·탐험가)·드레이크(1540년경~1596. 영국의 해적·탐험가·군인)·쿡(1728~1779. 영국의 탐험가·항해사·지도 제작자)의 여행은 “틀에 짜인” 것이라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런 여행은 다른 사람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러한 여행의 자취는 세상의 모든 지도 위에 우아한 점선으로 표시된다. 그리고 누구나 이 담대한 사내들이 찍어 놓은 자취를 따라나설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여행은 그런 경우와 다르다”고 호기롭게 쓴다.
42편의 에세이 가운데 첫머리에 놓인 「발견의 서」에서 저자는 “세상 사람들을 피해 은둔할 수 있는 구석방이 없다면 얼마나 슬프고 절망적이 될까? 하지만 다행히 구석방이라도 있다면, 여행 채비로 더 챙겨야 할 것은 없다 (…)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소개하는 이 새로운 여행법을 거부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평소 같으면 눈길을 주지 않았을 방 안의 온갖 자질구레한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침대·초상화·애견·판화·거울·가구·편지·말린 장미·서가·흉상·코트 등등.
저자의 생존 연대와 나열된 항해가들의 이름은, 자비에르가 프랑스 대혁명과 대항해 시대大航海 時代(15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유럽인들의 신항로 개척이나 신대륙 발견이 활발하던 시대)를 한꺼번에 겹쳐 살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책이 내면의 사색록이 아니라 여행기인 것은, 볼테르의 『깡디드』(1759)나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1726)가 ‘상상의 여행’을 빌어 당대에 대한 풍자와 ‘여행기 독자’의 소구를 만족시켜 주려 했기 때문이다(본문 가운데 『깡디드』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걸리버 여행기』에 대한 언급은 있다).
앞서 ‘내 방 여행’의 자질구레한 세목을 나열해 보았지만, 자비에르가 “돈이 한 푼도 들지 않는 이 여행”을 통해 곱씹어 본 것은 구체적인 사물뿐 아니라 추상적인 사항들도 많다. 음악과 회화 가운데 어느 것이 우월한가(「모래 한 알」, 「반론」), 의학의 발전이 인간의 행복이나 역사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는가(「자유」)와 같은 주제가 그런 예다. 그 가운데서 자비에르가 가장 공들여 사색했던 주제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것이다:
ⅰ) 인간은 이중적인 존재다. 즉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우리는 부당하게도 육체에 생각과 감정의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문제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진짜 범인은 인간의 육체가 아닌 인간의 동물성이다. 그것은 영혼과는 별개의 감수성을 지니고 있으며, 독립된 존재성을 지닌 진정한 개별자로서 자신만의 취향과 기질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 (…) 독자 여러분은 자신들의 지성에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하지만 여럿이 모여 있는 경우에는 그 타자를 조심해야 한다 (…) 천재의 위대한 능력은 바로 자신의 동물성을 잘 갈무리하는 데 있다. 그렇게 되면 영혼이 동물성과 불편한 관계에서 벗어나 천상으로 고양할 수 있고 동물성은 그만의 길을 조용히 가게 되는 것이다. (「형이상학」)
ⅱ) 파르스름한 지평선은 하늘과 만나고 고요히 흐르는 강물에 비친 주변의 경치는 어떤 말로도 표현할 길 없는 장관을 이루고 있다. 나의 영혼이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타자(자비에르가 말하는 ‘타자’는 인간의 ‘선한 영혼’ 속에 있는 ‘동물성’이다. 앞선 인용에 나오는 타자 역시 ‘타인’이라는 뜻이 아니라, 타인의 영혼 속에 깃든 동물성을 의미 - 인용자)는 그만의 길을 가고 있다. 그가 어디를 향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동물성은 명령을 받은 대로 궁전으로 가지 않고 왼쪽으로 크게 비켜나 버렸고, 영혼이 그를 다시 붙잡았을 무렵에는 이미 궁전에서 반 마일 이상 떨어진 오카스텔 부인(이 부인 때문에 결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 인용자) 저택 입구에 와 있었다. (「영혼」)
ⅲ) 나는 여느 때처럼 나의 동물성에게 오늘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까 하는 고민을 맡겼다. 빵을 굽고 그것을 먹기 좋게 써는 것은 나의 동물성이다. 그는 커피도 맛있게 끓여 마시지만 내 영혼에게 같이 하자는 말은커녕 마시는 것을 쳐다보는 것도 못마땅해 한다. 하지만 영혼이 끼어드는 일은 드물며 그렇게 되기도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기계적으로 뭔가를 할 때는 딴생각을 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즉 나라는 존재가 구성된 체계를 설명하기 위해 내 영혼이 동물성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하면서 그가 하는 일에 끼어들지 않고 바라보기만 하도록 시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다시 말해, ‘선한 영혼’은 동물성에 저항하지 못하며, 동물성과 함께 된다는 것 - 인용자) 이는 인간이라는 체계가 보여주는 아주 놀라운 형이상학적 역학 관계다. (「동물성」)
ⅳ) 그가 사람들 속을 배회하고 있지만, 그 안의 군중들은 그가 영혼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관심이 없다 (…) 영혼의 도움 없이 커다란 명예와 부를 누릴 수도 있다. 결국 영혼이 천상에서 자신의 존재 안으로 돌아왔는데, 돌아온 곳은 성자의 얼굴을 하고 있는 동물성이라 해도 전혀 놀랄 것이 없다. (「철학」)
‘내 방 여행’이 곧 ‘내 영혼 여행’이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밝힌 게 「장밋빛, 흰빛」에 나오는 “영혼과 동물성으로 이루어진 나의 체계”라는 말이다.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을 닮지 않았으며, 고로 선하지 않다’는 것은 저자가 살았던 계몽시대에 횡행한 풍조였다. 하지만 자비에르의 여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한 발자국 더 나간다. “사탄에게 어떤 호감”을 느낀다고 쓴 「재평가」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오히려 이 비딱한 영혼들의 아귀 같은 모습을 저주하면서 한 가지 사실을 고백하자면 극도의 불운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사탄이 보여 주는 흐트러짐 없는 태도와 커다란 용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를 존경하게 된다 (…) 내 뒷덜미를 잡고 있는 수치심만 아니었다면 기꺼이 그를 도와주었을 것이다. 나는 그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다닌다. 그와 함께 여행을 떠나노라면 마치 다정한 길벗이라도 만난 듯 기쁨에 겨워진다.”
역자 서문에 따르면 자비에르의 이 책은 마르셀 프루스트가 고전으로 꼽기도 했으며, “콩스탕에서 카뮈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문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특히 『내 방 여행』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데, 1821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상트페테스부르크에서 공병학교를 마쳤던 도스토예프스키가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이나 마찬가지였던 자비에르를 몰랐을 수는 없다.
이어지는 역자의 말은 프랑스식 글쓰기(ecrivain)를 동경했다던 수전 손탁도, 근대성이 막 시작된 ‘빛의 세기’에 “스턴·디드로·루소와 같은 천재적인 작가들 중에서 자비에르 드 메스테르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미지의 작가로 남아 있거나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걸작이라 할 수 『내 방 여행』은 문학사상 가장 독창적이면서도 거침없는 문체로 빛나는 자전 작품의 하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비록 출전은 찾을 수 없지만, 수전 손탁은 긍정적인 의미로, 예술 전반에 대해 참 별난 감식안을 가지고 있었던 평론가였으니, 자비에르에 대해서도 충분히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위의 출전을 찾기 위해 내가 가지고 있는 수전 손탁의 모든 책을 뒤지는 수고 끝에 읽게 된 ‘자전 소설의 서문’에 관한 사항이다.
본서에 실린 「1811년판 서문」은 글을 쓴 자비에르가 아니라, 형 조제프의 명의로 되어 있다. 그런데 수전 손탁이 쓴 「사후의 삶 : 마샤두 지 아시스의 경우」(『강조해야 할 것』, 시울, 2006)를 보면, 그 서문은 저자의 위장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왜 그런지 궁금한 사람은 수전 손탁의 글을 보면 된다. 하지만 그녀의 글을 읽지 않더라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출간된 러시아 번역본에 붙여진 「1811년판 서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보면, 저 서문의 필자가 형이 아니란 건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서문 뒤에 역자가 충실히 부기 해놓은 “이 서문은 자비에르[의] 형 조제프가 쓴 서문이다”는 설명을 읽고 속아버렸으니, ‘문학적 관습’ 특히 ‘자전적 저작’을 독해하는 문학적 훈련이 덜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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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장정일
시인, 극작가, 소설가. 1984년 <언어의 세계>에 「강정 간다」외 4편의 시를 발표한 이래로,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