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6일
마키아벨리의 『마키아벨리와 에로스』(지식의 풍경, 2002)를 읽다. - 마키아벨리는 15년이나 봉직하던 피렌체공화국의 서기관직에서 쫓겨난 마흔네 살부터, 저술 활동에 몰두했다. 메디치가에 책을 헌정하는 방법으로 복직을 노리고, 궁색한 수입도 보태기 위해서였다. 그의 저작은 『군주론』·『전술론』·『리비우스 논고』·『피렌체사』와 같은 정치·역사 분야와 『마키아벨리와 에로스』라는 다소 엉뚱한 제목 아래 엮인 애정 희극과 소설로 크게 나뉜다.
냉철한 정치의 세계를 파고들었던 마키아벨리의 주요 저서들과 사랑을 테마로 하는 그의 문학 작품들이 우리들에겐 겉도는 물과 기름처럼 느껴지지만, 당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두 번째로 완성한 희극 「클리찌아」의 주인공 클레안드로는 “연인과 병사는 서로 닮은 데가 있다”면서 이렇게 독백한다: “병사가 장군의 멸시를 무서워하듯이, 남자도 사랑하는 여인의 경멸을 두려워하지. 병사가 맨땅에서 잠을 청하듯이, 연인 역시 사랑하는 이의 집 울타리 옆에 몸을 기댄다네. 병사는 적을 죽이기 위해 싸우지만, 연인은 사랑의 경쟁자를 물리치기 위해 싸우지. 병사는 승리를 위한 일이라면 차디찬 겨울 깜깜한 밤길에다 비바람 몰아치는 흙탕길도 마다치 않고 달려가지만, 사랑에 빠진 남자는 자신의 여인을 얻기 위해 오히려 그보다 더한 수고도 무릅쓰며 같은 길을 헤쳐 간다네. 군대든 사랑이든, 비밀을 지키고 믿음과 용기를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한 건 마찬가지지. 둘 다 위험한 것도 같고 이루려는 목적도 대개 같은 법이지. 병사는 도랑에서 죽어 가고 연인은 절망으로 목숨을 끊게 되거든.”
전쟁 혹은 정치가 경쟁자와 대치한 체 상대를 기만하는 기술이라면, 연애 혹은 결혼 역시 전쟁이나 정치와 같다. 마키아벨리가 처음 쓴 희극 「만드라골라」에도 나오는 ‘출생 신분은 선택할 수 없지만 짝은 선택할 수 있다’는 속세간의 속담은, 연애나 결혼의 기술이 전쟁이나 정치의 상황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해 주지 않는가? 그래서 편역자는 마키아벨리의 희극 작품은 주로 “속고 속이는 사건을 중심으로 일어난다”고 지적한다.
「만드라골라」는 대본 판매와 공연 양쪽에서 ‘대박’이 터진 작품이면서, 문학적으로도 숱한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5막으로 구성된 이 작품의 줄거리는 이렇다. 열 살 때 피렌체를 떠나 20여 년 동안 파리에서 살고 있는 칼리마코는 고향에서 온 여행객으로부터 피렌체 법률가 니차의 부인에 대한 소문을 듣는다. 정숙하고 아름답다는 루크레찌아를 흠모하게 된 칼리마코는 피렌체를 방문해, 모사꾼인 리구리오를 만난다. 리구리오는 칼리마코를 의사로 위장시켜 아직 아이가 없는 니차에게 접근한다. 칼리마코는 자신이 만드라골라 풀로 만든 비약을 부인에게 먹이면 반드시 임신하게 된다고 니차를 꾄다. 하지만 만드라골라의 독 때문에 비약을 먹은 부인과 처음 방사를 벌이는 남자는 죽게 된다고 거짓말한다. 니차가 망설이자, 어두운 길거리에서 아무 젊은이나 납치하여, 첫 번째 정사를 하게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유혹한다. 아이 욕심이 있는 니차는 아내가 승낙하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한다. 리구리오는 금전으로 성당의 신부를 매수한 다음, 니차의 부인을 설득시킨다. 그 후 리구리오 일당은 니차가 보는 앞에서 광대로 분장하여 밤거리를 배회하기로 한 칼리마코를 푸대에 넣어 루크레찌아가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밀어 넣는다. 거기서 칼리마코는 루크레찌아에게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사랑을 고백한다. 루크레찌아는 칼리마코와 연인이 되기로 하고, 다음날이 되자 니차는 칼리마코에게 감사하며 무시로 드나들 수 있게 자기 집의 열쇠를 준다.
편역자는 “지금도 비평가들은 「만드라골라」를 이탈리아 최상의 작품 중 하나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으며, 심지어 근대 유럽을 통틀어서도 마찬가지라고까지 말하고 있다”고 썼다. 글쎄… 「만드라골라」가 재미있는 것은 마키아벨리가 현실 정치로부터 신학을 떼어냈듯이, 현실과 일상으로부터도 교회의 영향력을 덜어내고자 한 점이다. 루크레찌아를 설득시키기 위해 매수된 티모테오 신부의 탐욕과 위선은, 마키아벨리가 서기관으로 있던 15년 동안 생생히 경험했던 교황청과 추기경들에 대한 풍자다. 마키아벨리의 현세적 태도는 루크레찌아를 차지한 칼리마코의 환희에 찬 독백에 잘 나타난다: “하여튼 나 자신이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고 더 바랄 것이 없는 사람이란 걸 알았어. 만약 죽음도 시간도 이런 행복을 어찌하지 못한다면, 난 천국에 가 있는 어떤 복자들보다도 더 축복받고 어떤 성인들보다도 더 성스러운 인물일 거야.”
5막으로 된 「클리찌아」도 연이어 호평을 받았다. 1494년, 프랑스의 왕 샤를 8세가 나폴리에 침입했다가 교황의 동맹군에게 쫓길 때, 원정 온 프랑스의 장군이 피렌체의 농장주 니코마코네 집에 잠시 머문 적이 있다. 이때 프랑스 장군은 전장으로 가면서 나폴리에서 전리품으로 얻은 다섯 살 난 소녀 클리찌아를 니코마코의 집에 맡겨 두고 간다. 프랑스 장군이 전장에서 전사하자, 클리찌아는 니코마코의 집에서 식구처럼 자란다. 니코마코의 아들 클레안드로는 성숙해진 클리찌아를 마음속으로 사랑하게 되는데, 그보다는 아버지 니코마코 노인이 클리찌아를 더욱 탐낸다. 니코마코 노인은 클리찌아를 집안의 하인인 피로와 위장 결혼시킨 뒤 자신의 정부로 삼고자 하는데(이런 간계는 중국 사대기서의 하나로 손꼽히는 『금병매』에서 허다하게 볼 수 있다), 아내 소프로니아가 남편의 속셈을 눈치채고 방해한다. 어머니와 아들은 공동으로 기지를 모아 클리찌아를 빼돌리고, 대신 남자 하인에게 클리찌아의 옷을 입힌 후 피로가 기다리고 있는 신방新房으로 보낸다. 바꿔치기 된 클리찌아가 들어오자 니코마코와 짠 피로는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주고, 엿보던 니코마코가 클리찌아를 차지하기 위해 신방으로 들어오는데… 이튿날 아침, 톡톡히 창피를 당한 니코마코 노인은 시내에 소문을 퍼뜨리겠다는 아내의 협박에 고분해진다. 어머니와 힘을 합쳐 클레찌아가 피로와 위장 결혼하는 것은 막았지만, 부모들은 아들이 어느 집안 출신인지도 모르는 끌레찌아와 결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클레안드로가 크게 상심하고 있는 중에, 때맞추어 클리찌아를 찾는 손님이 온다. 나폴리의 귀족이면서 엄청난 부자가 이제야 딸을 찾아온 것이다.
「클리찌아」는 로마 작가 플라우투스의 「카시나」를 개작한 것이다. 갑자기 새 작품을 써야만 하는 마키아벨리가, 시간에 쫓긴 당시의 작가들이 흔히 하듯이 선대의 작품을 빌려 쓴 것이다. 이 작품에는 시종 클리찌아가 등장하지 않는다. 까닭은 젊은 여성을 무대에 올릴 수 없는 당대의 관례 때문이라지만, 이게 훨씬 관객의 상상력을 부추긴다.
대개의 연극 이론서들은 서사극의 간판처럼 된 ‘낯설게 하기’ 기법을 브레히트가 중국 경극으로부터 착안했다고 말한다.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들은 그 얘기는 상식처럼 되었다. 하지만 간혹 보게 되는 또 다른 연극 이론서들은, 서사극이 이용하는 노래·설명·관객에게 말 걸기 등의 ‘낯설게 하기’ 기법의 일부가 중세 서양 연극의 전통이라고 주장 한다. 『마키아벨리와 에로스』에 실린 두 작품은, 아직 우리에게 낯선 이론異論에 근거가 없지 않음을 보여 준다.
ⅰ) 두 작품 모두 노래로 서두를 시작하며, 전 막이 끝날 때마다 노래가 나온다.
ⅱ) 두 작품 모두 해설자가 막을 연다.
ⅲ) 두 작품 모두 배우가 관객에게 바로 말을 건다.
『마키아벨리와 에로스』에는 충실한 ‘편역자 주註’가 붙어 있다(나는 본문을 읽다가 지시된 주를 찾아보는 게 귀찮아서, 본문을 읽기 전에 주부터 한번 훑어 읽는다). 그 가운데 재미있는 것 하나:
마키아벨리가 임종 직전에 친구들에게 했다는 유명한 꿈 이야기이다. 즉, 천국과 지옥 중 어디로 가고 싶으냐는 물음에, 착하고 어수룩한 사람들과 천국에 있기보다는 차라리 지옥에 가더라도 고귀한 사람들과 정치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그의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 전傳』 끝 부분에도 이와 유사한 대목이 나온다. 즉,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수사가 될 생각이 없느냐는 물음에, “라체로 수사는 천국에 가고 우구초네 델라 파치우올라는 지옥에 간다는 게 이상하게 보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대답한다. 이 모두가 마키아벨리의 세속성과 정치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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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장정일
시인, 극작가, 소설가. 1984년 <언어의 세계>에 「강정 간다」외 4편의 시를 발표한 이래로,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