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일
윤이나의 『베이비』(민음사, 1996)를 읽다. - 200여 쪽 남짓한, 길지 않은 장편에 해설을 쓴 평론가는 “『베이비』. 해설을 쉽게 쓸 수 없었다. 다 읽고도, 작가의 다른 단편을 더 읽고도 무엇을 말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글을 미루고 미루는 시간들이 흘러갔고, 초조해진 나머지 다른 작업들을 전혀 할 수 없게 된 순간, 송탄에 가보기로 했다.”
경우는 모두 다르겠지만,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거기에 대해 뭔가를 쓰려고 할 때, 꽉 막히는 그런 일이 간혹 벌어지는데, 이번의 경우는 ‘송탄’이 문제다. 송탄은 한국전쟁 이후 미국 제7공군사령부가 자리 잡으면서 커진 기지촌이다. 현재는 평택시에 합병되어 있지만, 이 작품이 나오던 때만 해도 송탄은 별개의 시로,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할 때 이용한다는 미공군 오산비행장이 이곳에 있다. 『베이비』는 ‘한국 내의 미국’이나 같은 송탄의 풍경을 소설의 초입에 이렇게 묘사해 놓았다: “AFKN으로 채널을 돌립니다. 여섯 시 뉴스에 귀 기울이는 이유는 클럽 문이 열릴 것인가 아닌가를 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커퓨curfew, 여섯 시, K-55 메인게이트main gate. 다른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들리는 것은 오직 세 마디뿐입니다. 설마 설마 하던 것이 현실로 나타나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커퓨. 걸프전이 일어나면서 가장 염려했던 것이 바로 커퓨입니다. 계엄령 시행 중 미군들의 야간 통행금지 시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커퓨가 되면 저녁 여섯 시까지 모든 미군은 부대 안으로 들어가야 하고 그 이후에는 K-55 정문을 닫습니다. 그것은 곧 클럽 문을 열지 않는다는 것과 같습니다. 받을 손님이 없어지니까요. 그동안 조금씩 받았던 한국 손님은 걸프전이 시작되면서 일체 받을 수 없게 되었지요. 이 규정을 어기면 15일 영업 정지 처분을 받습니다. 미소를 띠며 농담을 하던 SP(헌병)들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졌습니다. 하루에 수십 번씩, 삼십 분 간격으로 클럽과 클럽 골목을 돕니다. 완전 무장을 하고 총을 앞으로 한 채로요. 건드리면 쏠 듯한 태도로 한국 사람들을 쳐다봅니다. 테러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슬람교를 믿는 한국인과 반미 감정을 가지고 있는 대학생들, 그리고 아랍인들과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 일으킬지 모르는 테러를 막기 위해서라고요.” 해설의 임무를 맡은 평론가의 말문을 막은 것은, 송탄이라는 압도적인 비실재성(이국성)과 작중 주인공의 원시적인 삶 체험이다.
방금 인용된 서두를 말하는 사람은 작중의 주인공인 김금순이다. 일제시기, 강화도 온수리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린나이에 해방을 맞이하였으나, 곧 학업을 중단하고 식모살이를 떠난다: “입 하나 덜기 위해 간 집은 병원 옆 빨간 벽돌집이었다. 거기에 언니, 형부라고 부르라는 주인 여자와 주인 남자가 있었고 주인 여자의 엄마(할머니)와 아이들이 네 명 있었다. 큰애 종희는 열네 살로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둘째 종수는 열한 살, 종철은 일곱 살로 초등학교에 다니고 막내 종식은 돌도 지나지 않은 갓난아이였다.
열세 살 먹은 갈래머리 소녀가 하는 일은 갓난아이를 봐주는 것이었다. 그러다 점점 일거리는 늘어갔고 소녀는 온 살림을 도맡아 하게 되었다. 소녀는 그 집 분위기에 익숙해지기 위하여 항상 눈치를 보았다. 밖을 보면서도 누가 무엇을 원하며 뭐가 불만인지 알아야 했다.”
열세 살에 병원집 식모가 된 금순은 “빨리 어머니가 와주기를 고대”하며, 밤마다 “어머니 꿈”을 꾸었지만, 삼 년이 지나도록 어머니는 그녀를 찾으러 오지 않았다. 대신 그녀를 찾아온 것은 한국전쟁이었고, 진해로 도망간 의사 남편을 따라 피난을 떠나는 병원집 가족의 남행길에 합류한다. 금순이 병원집 막내인 종식을 엎고 열하루를 걸었던 어느 날, 피난민들의 대열을 미군이 가로막았다: “피난민들이 모여 있는 곳에는 깜둥이와 흰둥이가 총을 사람들에게 들이대고 있었다. 여자들은 흙칠한 얼굴을 숙였다. 미군들은 남편이나 오빠에게 총을 겨누면서 젊은 여자의 손목을 잡았다. 여자들은 겁에 질린 눈으로 남편을 쳐다보았다. 손을 저으며 안 된다고 하던 남편들은 개머리판으로 맞고 쓰러졌다. 나머지 남자들은 못 본 척 고개를 딴 속으로 돌렸다.
한발 한발 이윽고 미군들은 할머니와 주인 여자에게 다가왔다. 할머니와 주인 여자는 종희를 가운데 놓고 껴안았다. 깜둥이가 종희의 얼굴을 들려고 하자 할머니가 대뜸 소녀를 들이밀며 아이를 끌렀다.”
주인집 딸을 대신해 몸을 버리기까지 했으나, 그녀더러 ‘언니’, ‘형부’라고 부르라던 병원집 식구는 금순을 전혀 ‘동생’이나 ‘처제’로 여기지 않았다. “집안일을 하는 것과 나무 해 오는 일”, “할머니에게 맞는 일은 견딜 수 있”었으나 “배가 고”픈 일은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집을 뛰쳐나온 그녀는 식당을 소개해 주겠다는 악덕 소개꾼에게 속아, 거제도에서 미군을 상대하는 양색시가 된다. 포주가 그녀의 이름을 묻자 “순간적으로 자신의 이름은 숨겨야 된다는 생각”을 한 금순은 얼떨결에 병원집 장녀의 이름(남종희)을 댄다: “‘금순’이라는 이름을 밝혔다가 나중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볼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웠다. 그리고 동시에 종희처럼 되고 싶었다. 해주는 밥 먹고 학교에 다니던 종희가 너무나 부러웠다. 꼭 종희처럼 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소녀는 종희가 되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주변에서 양색시 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그녀의 나이는 열일곱 살이었다. 그때부터 삼십 년 동안 그녀는 ‘베이비’ ‘밍크’, ‘리틀 수지’, ‘수지’, ‘마미’등으로 이름을 바꾸어가며 부산·마산·대구·김제(황산리)·안정리·송탄의 미군 기지촌을 떠돈다.
이 작품은 미군 기지촌과 그곳을 생활의 터전으로 삼은 양색시를 주인공으로 하지만, 미군 기지촌과 양색시 문제를 구조적으로 파고들거나 고발하지 않는다. 물론 미군들이 더 이상 금순을 ‘허니’라고 부르지 않고 ‘마미’라고 부르는 쉰일곱 나이가 될 즈음에서야, 자신이 전쟁과 기지촌의 구조적인 희생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천천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금순은 그때까지 자신이 무식하고 못나서 양색시 노릇을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금순은 비로소 자신의 과거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금순은 그동안 받은 멸시와 천대가 너무나 분했다. 그리고 멸시와 천대가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너무나 불쌍했다. 가슴 깊은 곳에 쌓인 울화와 분노는 술이 취하면 나왔다. 니네가 전쟁을 알아? 누군 그 짓 좋아서 한 줄 알아! 우리들 아니었으면 지금쯤 니네 가족 중 하나는, 삼촌이나 고모 하나쯤은 혼혈아일 거야.”
그러나 이 작품은 한국전쟁 이후, 많은 한국 여성을 양색시로 만든 구조를 파헤치거나 물신화된 성매매 실태를 고발하지 않는다. 대신 금순이라는 여주인공을 통해 좁게는 기지촌 여성과 넓게는 매춘 여성이 전형적으로 반복하는 특정한 행동들의 심리적 근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금순은 차례대로 ‘대리(daddy)’라고 불리는 미군, 한국인 기둥서방 명근, 또 다른 미군 토머스에게 사랑을 느끼고 ‘죽기 살기로’ 매달린다. 그것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어서, 거제도 시절 난생처음 사랑을 느꼈던 ‘대리’가 떠났을 때 그녀는 “북을 치듯이 리듬에 맞춰” 머리를 벽에 “박고 또 박았”고, 토머스가 떠났을 때 역시 스스로 “수면제를 먹고 동맥을 끊었다.” 하지만 그건 ‘대리’와 토머스를 그만큼 사랑했다기보다, 그녀가 어머니로부터 받은 정신적 내상(trauma)의 결과다. 다시 말해 세 남자에게 ‘죽자 사자’ 매달렸던 그녀의 심리적 근저에는, 열세 살 때 감내했던 분리불안(separation anxiety)의 공포가 자리 잡고 있다.
그녀의 내상인 된 분리불안은 “명근하고 살면서도” 자신의 본명을 숨긴 채 ‘진희’라는 가명을 사용하게 한다. 까닭은 “어머니가 와서 ‘가자’라고 할 때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따라나설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명근과 살림을 차렸을 때, 그녀는 스물여섯에서 스물여덟 살 사이였는데도, 그녀는 그때껏 어머니가 자신을 찾아오길 기다렸던 것이다. 또 그녀가 양색시이면서도 서른 살이 넘기까지 일절 영어를 배우지 않겠다는 규칙을 세운 것도, 어머니가 부르면 쉽게 따라나서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 『베이비』는 매우 복잡하다. 우선 ‘베이비’는 ‘대리’가 금순을 부르는 단순한 애칭이면서, 그걸 넘어 금순을 분리불안 이전의 행복한 상태로 인도하는 신부神符며, 그녀가 겪고 있는 내상의 상태다: “베이비, 베이비 하고 쳐다보는 대리의 눈은 바로 어머니의 눈빛과 같았다. 그를 쳐다보기만 해도 종희의 허기는 가라앉았다. 베이비, 내가 뭐 애기인가. 베이비, 니는 나한테 영원한 애기여.”
금순[종희]은 또 다시 분리의 공포를 겪지 않고자, 점점 ‘대리’에게 집착하게 된다. 그녀가 ‘대리’에게 늘상 하고 싶은 말은 “나를 버리지 말아요. 나를 버리지 말아요”였다: “언제부터인가 종희는 그와 섹스를 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그가 떠나지 않을까, 다른 여자가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일었다. 둘은 모든 시간을 섹스를 하면서 보냈고 섹스는 아무리 오래 해도 싫증 나지 않는 놀이가 되었다. (…) 그러다 섹스가 끝나면 종희는 왠지 쓸쓸하고 서글픈 감정이 들어 자신을 주체하지 못했다. 뜨거운 열기가 가신 창문에 어스름이 다가들면 더욱더 그랬다. 종희는 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종희의 등을 한없이 쓸어주며 그는 콧노래를 불렀다. 그녀는 따스함으로 눈을 감고 있다 잠이 들곤 했다. 자다가도 그를 찾아 더듬거렸다. 항상 그의 몸 한 군데에 닿아 있거나 잡고 자는 버릇이 생겼다. 그가 가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종희는 먹다 남은 튀김처럼 작아진 그의 자지를 잡고 잠이 들었다.”
열일곱 살에 ‘대리’를 처음 만난 이후, 금순을 양색시로 살게 만든 것은 “대리가 갔는데도 나는 대리를 기다렸어요.”, “거제도를 떠나오고도 그 기다림은 계속되었어요. 미군이 선택해 주기를 기다리면서 의자에 앉아 있었지요”라는 쉰일곱 살 난 금순의 고백에 처연히 드러난다. 기지촌의 모든 양색시가 금순처럼 어려서 부모·가족과 분리된 것은 아니겠지만, 그들이 옛 가족에게 돌아가거나 한국 남성에게서 안정된 삶을 기대하지 않는 것은, 재차 겪을 분리불안이 두렵기 때문이다. 옛 가족은 그녀를 ‘더럽게’ 여길 게 뻔하고, 한국 남성 또한 그녀의 과거를 용인하지 않는다. 한국인 기둥서방 명근의 패악은 ‘동족 남성이 이국 남성과 몸 섞은 동족 여성을 어떻게 취급하는가?’에 대한 인류학적인 진실을 보여준다. 이런 문화적·사회적 압박이 양색시의 여러 행동을 규정짓는다. 이를테면 과시적 소비와 사치(향락주의), 자국인에 대한 멸시와 거리두기, 자학과 자해自害 혹은 알콜과 약물 중독, 그리고 미국 문화와 미국 남성에 대한 숭배는 모두 동족으로부터(또는 정상 사회로부터) 쫓겨난 성매매 여성의 분리불안 증세다. 그들은 영원히 동족에게 등을 돌린 채, 기지촌을 바라본다.
『베이비』가 금순이라는 여주인공을 통해 좁게는 기지촌 여성과 넓게는 매춘 여성이 전형적으로 반복하는 특정한 행동들의 심리적 근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함은, 그들이 똑같은 두려움에 따라 똑같은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수지[금순]는 토머스가 그 여자들에게 눈길을 주나 안 주나 훔쳐보면서 조바심을 냈다. 여자들의 내놓은 몸은 상처투성이였다. 손목마다 올라가며 담배에 지진 자국과 칼자국, 넘어져 깨진 무릎에서부터 시작해 멍든 자국과 긁거나 긁힌 자국들로 가득했다. 그 상처들은 자신의 벗은 모습과 다를 것이 없었다. 수지는 마치 자신의 몸을 보는 것 같아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그 여자들을 더욱 혐오했다.”
사족1. 명근과 헤어진 먼 훗날 금순은 명근을 이렇게 회상한다: “‘나’와 ‘대리’ 역할에서 ‘명근’은 또 다른 나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지 않으려고 그녀가 자해했다면 명근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괴롭혔던 것이다. 그 두 개는 같은 뿌리를 두고 있는 두 가지였다. 사랑하는 사람이 더 이상 자기를 사랑하지 않으면? 떠나면? 에서 나오는 불안감. 평생 미군이 바뀌면서 그녀가 시달려온 불안. 바로 그 불안으로 이십칠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명근을 이해할 수 있게 될 줄이야. 이십칠 년 후 기억 속에서 만나는 명근이 또 다른 베이비, 밍크, 진희, 리틀 수지, 수지라고 생각하게 되리라곤 그때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사족2. 금순에게 ‘리틀 수지’라는 이름을 준 안정리의 여왕 ‘빅 수지’는 금순의 대모代母와 같다. ‘빅 수지’ 집은 미군과 한국 남성 모두가 배제된 여성들만의 ‘망명정부’였다. 하지만 이 망명정부는 남성세계/기지촌에서 상처받은 여성들의 쉼터 역할이나 재충전 기지에만 머물러, 구조적 모순에 저항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발견하며 자립에 필요한 비전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러므로 ‘빅 수지’의 자살은 예정된 것이랄 수 있는데, 이때 금순(리틀 수지)은 “죽어라, 죽어라”라고 외치며 자신의 팔과 다리를 면도칼로 긋는다. 자해를 하기 전에 “리틀 수지는 점점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하면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엄마는 왜 나타나지 않을까? 집을 찾아 울다가 어느 보호실에 들어온 어린아이처럼 생각되었다.”, “리틀 수지는 어린아이처럼 누군가가 자신을 돌봐주고 사랑해 주기를 원했다”는 호소가 웅변하듯 ‘빅 수지’는 금순에게 또 한 번 분리의 내상을 안겨 주었던 것이다.
사족3. 민음사는 가끔, 너무 성의없는, 허접한 ‘표지’를 그야말로 ‘작품’삼아 선보인다. 헌책방에서 구입한 이번 책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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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장정일
시인, 극작가, 소설가. 1984년 <언어의 세계>에 「강정 간다」외 4편의 시를 발표한 이래로,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