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일
어떤 연구에 의하면 사람은 하루에 평균 200번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거기엔 일상적으로 행하는 ‘사랑스러운 거짓말(white lie)’도 포함된다. “얼굴이 좋아 보이네요!”, “안부 전해주세요!”와 같은 의례적 인사는 물론이고 “나는 다리가 아프지 않으니 네가 앉아”라거나 “이 맥주 진짜 맛있네!”같이 배려에서 나온 진술도 내 속심과 다르다면 거짓말일 수 있다.
볼프강 라인하르트의 『거짓말하는 사회』(플래닛미디어, 2006)는 이처럼 일상생활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고 상호 관계를 원활하게 해주는 무해한 거짓말을 문제 삼지 않는다. 지은이가 문제 삼는 것은 ‘한 개인의 거짓 진술’을 뛰어넘어 ‘거짓말이 구조화된 사회’다. 이 책의 관점에서 보면, 거짓말의 주체는 한 개인이 아니라 거짓말쟁이를 기른 사회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문화다.
지은이가 거짓말을 부추기고 거짓말에 무감각하게 되는 현대 사회의 구조를 심문하기 위해 발본한 영역은 정치·경제·미디어·학문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이다. 그렇지만 이 책의 거개가 정치에 할애되어 있는 것을 보면 정치야말로 오늘과 같은 ‘거짓말이 구조화된 사회’를 만든 심각한 원인제공자인 듯하다. “거짓말은 민주주의의 조건이다”라고까지 말하는 지은이가 대표적인 거짓말로 꼽는 것은 선거 공약.
당선을 목표로 하는 정치가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미디어 민주주의에서는 처음부터 지켜질 수 없는, 그래서 선거 후에는 가능한 한 빨리 잊혀질 수 있는 공약이 필요”한데, 그런 ‘거짓 공약’ 가운데 “실업 극복이라는 약속은 이제 모든 정치가들이 의무적으로 하는 거짓말이 되었다. 어느 정도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 즉 세계 자본주의하에서 실업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며 그렇기 때문에 실업률을 제한적으로만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정치가들이 모를 리가 있겠는가?”
이 책은 주로 지은이의 나라인 독일 정치가들이 태연자약하게 저지른 숱한 거짓말의 사례를 제시하고 있지만, 거짓으로 들통난 ‘선거 공약’에 관해서라면 아마도 이명박 대통령이 챔피언 감일 것이다. 매년 7% 경제성장, 4만 달러 국민소득, 세계 7대 강국 진입이란 7·4·7 공약은 대통령 취임 넉 달을 배기지 못하고 공식 취소됐다. 따라서 7% 경제성장에 맞춰 매년 6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5년간 도합 30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실업 극복 공약 역시 자동적으로 거짓말이 됐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거짓말이 전적으로 “진술”에 의존한다고 했지만, 시민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정보보호법이나 조작된 통계 기술 또한 정치가 이용하는 거짓말의 기교며 나아가 “침묵” 역시 어떤 경우에는 거짓말이다. 미국 전역에서 위험물질이 의심되는 소가 리콜되고 있음에도 아무런 우려나 대응책을 내놓지 않고 묵묵부답인 정부나, “해명이 오히려 더 많은 오해를 부른다”면서 자신의 표절 의혹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손숙미 의원은 그 기교에 달통한 경우겠고!
7월 15일
독서의 계절이 따로 있는 게 아닌 건 맞지만, 무더운 여름이 책읽기에 좋지 않은 계절인 건 분명하다. 그래서 집어 든 책이 최석조의 『단원의 그림책』(아트북스, 2008). 제목에 씌어진 그대로, 이 책은 우리나라 보물 제 527호로 등록된 『단원풍속화첩』에 대한 전작 해설집이다. 지은이에 따르면 『단원풍속화첩』은 단원 김홍도가 그린 25점의 풍속화를 모아서 엮어놓은 1인 화집이다. 그런데 보물로까지 지정된 이 귀중한 화첩에 대한 해설은 「무동」이나 「씨름」과 같은 대표작에만 집중되어 있고, 나머지 23점에 대한 해설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그것이 아쉬웠던 지은이가 『단원풍속화첩』을 전작 해설한 작업이 바로 이 책이다.
단원이 궁중화가로 날렸던 시대에 혜원 신윤복도 단원과 똑같이 풍속화를 모은 『혜원전신화첩』을 남겼다. 당대의 라이벌이었던 두 사람에 대한 평가는 혜원의 풍속화첩이 단원의 그림책보다 여러 끗발이 높은 보물 135호로 지정된 것으로 가늠된다. 그러나 대중들은 노골적인 풍속화로 화단에서 쫒겨난 채 일생을 불행하게 살았던 신윤복보다 궁중화가로 승승장구했던 김홍도를 더 치는 모양이다. 노래방의 인기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인 <한국을 빛낸 1백 명의 위인들>의 4절이 증거다. “번쩍번쩍 홍길동, 의적 임꺽정, 대쪽같은 삼학사, 어사 박문수, 삼 년 공부 한석봉, 단원 풍속도”.
가사에도 나온 것처럼 김홍도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풍속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그는 인물화와 산수화 등 온갖 다양한 장르에서 명작을 남겼다. 풍속화는 단원이 그린 다양한 그림의 아주 적은 일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그가 풍속화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그의 풍속화가 걸출하기 때문이다. 궁중화가로 바빴을 단원이 서민들을 주인공으로 풍속화를 그리게 된 사정은 이 책의 말미에 나와있다.
지은이의 문장이 풍속화를 설명하는 일에 걸맞게 구술투를 닮은 것은 이 책의 흥미를 돋우는 요소다. 지은이 스스로 “경박”한 문장이라고 말했지만, 조선시대의 풍속을 잡아내는 지은이의 날카롭고 따뜻한 시선이 의도적으로 동원된 은어와 불필요한 외국어의 남용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지은이가 이런 글쓰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미술과는 아무 연관 없는 미술 세계의 이방인이라서, 학술적인 관행이나 권위를 의식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 미술의 난해함에 질리고 또 조선 문인화의 귀족적이고 사념적인 자폐 취미가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7월 29일
7월 14일 자 <요미우리신문>은 같은 달 9일에 있었던 한일정상회담 때 후쿠다 야스오 일본총리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일본 사회과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를 일본땅으로 표기하겠다고 통고하자,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는 특종을 실었다. 일본 외무성이 부인하고, 한국 외무부가 요청했음에도 요미우리는 정정기사를 내지 않았다. 그 때문에 나는 당분간 내 확신을 바꾸지 않을 작정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자국의 영토를 암묵적으로 포기하는 듯한 ‘괴담’을 했다면, 중대한 탄핵 사유다. 그런데 기밀 해제된 미국 국무부의 기록을 보면, 1962년 한일 국교 정상화 각서를 교환하고 미국을 방문했던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나는 일본 쪽에 독도를 폭파시켜 버리자고 제안했다”는 기록이 나와 있고, 1965년 미국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도 “수교 협상에서 비록 작은 것이지만 화나게 하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독도문제”라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섬을 폭파해 없애고 싶다”(<동아일보> 2004. 6. 20)고 말한 게 적혀 있다.
뉴라이트 운동의 이념 제공자 가운데 한 사람인 복거일은 ‘독도 괴담’을 담론으로의 격상시켰다. 그는 일찍이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문학과 지성사, 1998)라는 책에서, 국익이란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개인들의 이익을 합산한 것이라고 말한다. 독도 문제 역시, 독도가 한국 땅이기 때문에 생기는 “국익이 궁극적으로는 어떤 개인들의 이익으로 환원되는가?”를 차분히 따져봐야 한단다. 그의 고언대로라면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어서 소설가인 내게 줄 수 있는 이익은 고작 해야 심리적인 것이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많은 독자들에게 돌아가는 직접적인 이익 또한 전무하다.
복거일의 말처럼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어서 이익이 생기는 개인은 고작 해야 동해안에서 어업을 하는 소수에 불과하다. 반면 일본과 무역을 하거나 기술 수입을 해야 하는 등등 “독도를 둘러싼 일본과의 분쟁에서 직접적으로 큰 손해를 볼 시민이 우리 사회엔 너무 많다.” 이처럼 추상적인 국익을 개인들의 구체적 이익들로 환원하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독도에서 우리 시민들이 얻는 실질적 이익은, 국방과 어업과 해운에서의 이익을 모두 합쳐도, 그리 크지 않다.” 다시 말해 독도는 한국인의 계륵이지, 국익이 되기 어렵다.
이 논리대로라면, 동해안의 어민은 대한민국 국민이 되지 못하고, 독도가 배타적으로 소유하게 될 해양 영토나 미래의 해저 자원은 결코 국익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개인들의 이익을 합산한 게 진정한 국익이라고 그는 말하지만, 그것은 ‘국익으로 포장된 사익’, 즉 일부 경제인의 이익을 옹호하는 논리로 수렴된다.
이달 25일, 미국 국립지리원 지명위원회는 한국령이던 독도(리앙쿠르 암)를 ‘주권 미지정’으로 변경했다가 한국이 반발하자 원상회복시켰다. 이 대통령은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격노했다지만, 제대로 된 우익도 되지 못하는, 시장 만능주의 정권의 독도 수호 의지가 어느 만큼일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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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장정일
시인, 극작가, 소설가. 1984년 <언어의 세계>에 「강정 간다」외 4편의 시를 발표한 이래로,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