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2일
오카다 데쓰의 『돈가스의 탄생』(뿌리와 이파리, 2006)을 읽다. - 일본 사람은 고기를 먹을 줄 몰랐다? 실제 그렇다. 불교를 융성시키고자 했던 덴무 천황은 살생 금지라는 불교 교의를 기반으로 살생 금지·육고기 식용 금지령을 내렸다. 그게 675년이었으니, 그때부터 육식 해금이 선포된 1872년까지 일본인들은 근 1,200년 동안이나 육식을 먹지 못했다. 그 기간 동안 수·당에서 전해진 우유나 유제품마저 사라졌다. 물론 그 조치는 사육동물인 가축을 대상으로 했으므로 야생동물은 제외되었다.
소와 말은 살생을 금지하는 불법에도 저촉되었지만, 농경·군사·수송에 필요했기 때문에 식용으로는 절대 도살할 수 없었다. 내겐 잘 납득이 되지 않지만, 불법은 살생을 금지했지만 어패류는 별개였으므로, 일본인들은 앞서 말한 야생동물과 함께 어패류를 중심으로 단백질을 섭취했다. 이런 일본의 육식 문화에 큰 변화가 나타난 것은 메이지 유신부터다. 1867년, 약관 열여섯 나이로 즉위한 메이지 천황은 쇄국에서 개국으로 정책을 180도 전환하면서, 하루아침에 육식금지령을 해금해버렸다(스물한 살 때의 일이다). “체격을 키움으로써 일본인의 체력에 대한 열등감을 불식함과 동시에 서양요리의 보급을 통해 서구의 뛰어난 음식문화, 나아가서는 문명을 섭취·흡수·동화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모토야마 오기부네라는 일본의 학자는 “메이지 유신은 요리혁명이다”라고까지 말한다.
메이지 천황이 육식금지령을 해제하고 앞장서서 육식을 행했던 초기에,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육식이 해금된 지 한 달쯤인 1872년 2월, 자객 열 명이 천황의 거처에 난입했다. 이들은 “현재 이방인이 들어온 이후 일본인이 오로지 육식을 하는 고로 땅이 모두 더러워지고 신이 있을 곳이 없음에 즈음하여 이방인을 몰아내고 신불神佛과 제후의 영토를 예전과 같이 지켜내야 한다”고 주장하며, 천황을 암살하려 했다.
육식론자와 반육식론자의 대결은 위장을 놓고 벌인 근대화론자와 양이론자의 싸움이기도 하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육식론자의 대표적인 논객으로 「육식을 말한다」라는 글을 쓰면서 “수천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전통과 풍속 때문에 육식을 불결하고 흉측한 것으로 여겨 거리는 사람이 많다. 이는 필경 사람의 천성을 모르고 사람 몸의 궁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무학문맹의 공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썼다. 하지만 스물일곱 살의 나이로 처음 미국에 갔던 그 또한 미국인 가정에 초대되어 통돼지요리를 보았을 때는 간이 오그라들었다고 할 정도니, 일본인에게 육식이란 낯선 게 분명했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육식론자이면서 근대화론자였다면, 메이지 문학의 거장이자 육군 군의관이었던 모리 오가이는 일본인의 주식인 밥이 서양인의 주식인 고기보다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메이지 시대의 일본인들은 후쿠자와 유키치의 “쌀농사 폐지론”과 같은 극단적인 육식론이나 모리 오가이의 “쌀밥 우위론”을 모두 피하는 절충적인 방식으로 ‘서양요리’와는 다른 ‘양식洋式’을 만들어냈다: “… 실제로는 이것들을 절충한 화혼양재 사상이 일본의 근대화를 추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서민들은 본격적인 서양요리에 사로잡히지 않고 밥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일양절충의 ‘양식’을 만들어냈다. ‘돈가스’가 양식의 스타로 등장하고, 빵은 밥을 대체하는 대신 밥과 역할이 겹치지 않는 ‘단팥빵’의 형태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 두 가지 먹을거리의 탄생은 일본 음식문화의 특이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생각할수록 흥미로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서양의 흑선黑船에 의해 무력으로 개항이 강요된 일본인들에게 서양인의 거대한 체구는 문명개화와 동일시됐다. 그래서 “사농공상, 남녀노소, 빈부와 현우賢愚를 막론하고, 쇠고기전골을 먹지 않는 자는 개화를 거부하는 자”라는 육식 예찬과 장려가 점차 위세를 얻었다. 그래서 메이지 시대의 육식은 육식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 서민층보다는 정부와 지식인이 선도했고, 서민들은 육식(주로 쇠고기와 돼지고기)을 받아들이기는 하되 거부감을 희석시키는 방법으로 일본식 ‘양식’을 만들어 냈으니, 쇠고기전골·스키야키·돈가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한편 빵은 “코앞에 닥친 국방상의 필요 때문에 긴급 식량” 개발됐다. 빵은 정백미 과잉섭취로 생긴 육·해군 병사들의 각기병을 예방하기 위해, 또 장기적인 보관과 간편한 휴대라는 장점 때문에 ‘군사식량“으로 채택됐다. 우리나라의 남자들이 군대에 가서 먹게 되는 ‘건빵’도 이때 개발된 것이다.
『돈가스의 탄생』은 메이지 유신을 ‘요리유신’이라는 시각에서 포착한 책이다. 이 책은 육식이 일본의 근대화에 끼친 영향을 평가하는 것과 함께, 서양의 육식 문화를 일본에 접합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개발했던 ‘3대 양식’인 돈가스·카레라이스·고로케의 탄생 비화를 추적한다. 2000년에 초판이 발행된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본에서 베스트셀러·스테디셀러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 책은, 한국 독자에게 술술 재미있게 읽힌다. 일본인들이 만든 음식의 역사이면서, 워낙 우리에게도 흔한 음식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걸 보면, 우리나라는 일본의 ‘붕어빵’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4월 27일
재일교포 작가 정의신의 『정의신 희곡집』(연극과 인간, 2007)을 재미있게 읽었다. 이 희곡집에는 도합 다섯 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하나같이 일본에서 살고 있는 재일교포의 부유하는 정체성을 작품의 줄기로 삼고 있다.
희곡집의 첫머리에 놓인 「아시안 스위트」는 지방도시의 쇠락해가는 한인마을에 위치한 양장점이 무대다. 양장점의 주인 치요코는 40세가 넘은 노처녀다. 술주정꾼이었던 아버지가 부부 싸움을 한 뒤 어린 치요코를 자전거에 태우고 가다가 사고가 난 뒤로 절름발이가 됐다. 치요코의 어머니 미쓰코는 남편의 주사와 폭력에 넌더리를 내고 어린 딸과 아들을 버린 채 집을 나가서, 두 번 이혼하고 세 번째 결혼을 했지만 딸을 찾아온 걸 보면 현재의 결혼 생활도 평탄하지는 못한 눈치다. 또 막내아들 시로는 나이가 30세인데도 제 앞가림을 하지 못하고 번질나게 누나에게 신세를 지러 온다. 그런 치요코의 양장점에는 어린 시절 서로 짝사랑했던 아사다가 동거하고 있다. 그는 같은 도시에 자신의 집과 아내가 있는 유부남인데, 아내와의 불화를 핑계로 치요코의 양장점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어지는 「20세기 소년소녀 창가집」역시 지방도시에 불법으로 지어진 한인마을이 무대다. 치요코의 결혼과 함께 한인마을이 헐려나가게 되는 「아시안 스위트」의 결말처럼, 이 작품의 한인마을도 시에서 공원을 만들기 위해 강제 퇴거될 위기에 놓여 있다. 강제로 징용을 당하고 팔까지 잃은 구니오는 “내 팔도 모자라서 땅까지 빼앗을 거야!”라고 시청의 측량기사에게 항변해 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강제집행”과 “퇴거명령”뿐이다. 일본 내에서 갖는 재일교포의 이런 불확실한 위치를 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정의신 작품의 전매특허라고도 할 수 있는 파괴적이고 도피적인 주인공들의 의식이 온전히 파악되지 않는다.
「아시안 스위트」에서 사생활이 난잡하던 어머니, 20대엔 영화배우를 꿈꾸다가 30대가 되어서는 미국으로나 가야겠다는 남동생, 오쟁이진 유부남이 절름발이 치요코의 양장점에 모였듯이 「20세기 소년소녀 창가집」에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외팔이 남편 대신 술집 접대부를 하는 후유에(장녀)의 집에 온 가족이 모여 산다. 거기에 걸핏하면 부부싸움을 하고서 트렁크를 들고 찾아오는 나쓰에(사녀)와 그녀의 동거남 히로시가 합세한다. 전작에 나온 치요코의 남편이 폭력을 휘두르는 술주정꾼이었듯이, 이 작품에 등장하는 절름발이 하루에(삼녀)의 동거남 쇼지 또한 아내가 재봉질로 번 돈을 뜯어 빠징고로 달려가곤 하는 백수건달인데다가 폭력마저 서슴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하루에와 히로시는 불륜을 맺고, 차별이 없는 “그 곳”, 북한으로 가자고 맹세한다.
정의신의 작품은 재일교포가 겪는 차별의 벽을, 그들이 인내하는 일본 사회의 모순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대신 재일교포 사회와 가족이 서로의 불신과 증오에 의해 내부로부터 무너져 내리는 것만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작품의 중심에는 항상 ‘콩가루 집안’이 있다. 흥미롭게도 정의신과 똑같은 재일교포 작가 유미리의 몇몇 희곡에도 그런 모티브가 등장한다. 그들의 작중 인물들은 차별적인 일본 사회를 공격하기보다 그저 “환경이 인간을 키우는 거예요. 열악한 환경은 열악한 인간을 낳는 거예요. 실제로 여기에 있는 사람들 중 제대로 된 사람이 누구 하나라도 있나요?”(히로시), “여기에 있으면 다 썩을 뿐이야!”(다쓰오), “최악이야, 최악, 이 동네 사람들은 정말 모두 구제불능이야!”(미도리)라고 말하며, 서로를 파괴(자해)하거나 어디론가 도피한다.
「가을 반딧불이」는 손님 없는 강변의 보트 대여소가 무대다. 29세의 다모쓰는 50세가 훨씬 넘은 슈헤이 삼촌의 보트 대여소에서 20년 넘게 더부살이하고 있다. 아버지가 아들을 버리고 도망가 버렸기 때문이다. 여름이 저물어가는 보트 대여소로 실직과 이혼을 한꺼번에 당한 40세의 중년남 사토시가 막무가내로 엉겨붙고, 사기결혼을 하고 임신을 한 39세의 마스미도 합세한다. 슈헤이는 무작정 엉겨붙는 사토시를 보면서 “왠지 몰려온답니다. 이 연못으로… 버림받은 것들이…”라고 말하는데, 이 대사는 정의신의 작품 전체를 요약하는 약어다. 앞서 정의신의 작품은 일본 사회를 향한 칼날이 일본 사회를 겨누지 않고, 재일교포 사회 혹은 가족 내부로 향해진 자해면서 도피라고 썼다. 서로에 대한 불신과 증오가 자해의 대표적인 양상이라면, 술·도박·애욕· 영화(미국문화)·스포츠(뒤에 나올 「인어전설」의 권투)와 함께 「겨울 선인장」에서 두드러지는 ‘호모 문화’에 대한 경사는 도피의 여러 양상이다. 게이는 앞선 「20세기 소년소녀 창가집」에도 이미 나오지만, 「겨울 선인장」에서는 네 명의 호모가 등장한다. 작중에도 나오듯이 이들이 호모일 뿐 아니라 재일교포라는 중첩된 설정이야말로, 재일교포의 소외되고 부유하는 정체성을 잘 드러내 주는 상징이다.
『정의신 희곡집』의 맨 마지막에 실린 「인어전설」은 2000년대에 씌어진 앞의 네 작품과 달리 유일하게 1990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이 작품집에 실린 여타의 작품과는 무려 15년 정도의 시간 차가 나는 작품이다. 하지만 내가 읽기로는 이 작품집에서 가장 싱그럽고 패기가 느껴지는 청춘의 작품이 바로 「인어전설」이며, 향후 정의신이 쓰게 될 작품의 원형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작품이다.
무기력한 아버지, 게이바에 일하면서 집안의 살림을 돌보는 세쓰오(장남), 배우가 꿈인 하루오(차남), 알 수 없는 복수심을 달래기 위해 권투에 몰입하는 나쓰오(삼남), 경마장에 출입하는 아키오(사남) 등이 모여 사는 이 ‘콩가루 집안’에서는 누나 미즈메와 육남 시키오의 근친상간이 암시되고 누나는 그 괴로움 때문에 물에 빠져 자살한다. 그리고 삼남 나쓰오는 동생 아키오의 애인을 겁탈하고, 아키오는 형에게 복수하기 위해 권투를 배운다. 두 사람이 링에서 대결하게 되자 어머니는 “그만! 제발 그만해! 형제끼리 상처주고. 난 너희가 서로를 미워하라고 키우지 않았어”라고 울부짖는다.
위에 인용된 대사는 「가을 반딧불」에서 슈헤이가 했던 “가족이란 건 모두 거짓으로 이어져 있는 거였어”라는 말과 온전한 짝을 이룬다. 일본 사회의 구조적인 차별에 대항하지 못하는 정의신의 작품이 작가 의식의 한계로 지적될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재일교포가 일본에서 생존한다는 것은 곧 형제간에 상처주고 미워하는 것이라는 작가의 역설은 섬뜩하다. 다시 말해 재일교포와 같은 일본 사회의 주변인에게는 가족이란 견고한 인륜적 구조물마저 용납되지 않는다는 인식은 굉장히 수위가 높은 고발이다.
정의신의 작품에는 체홉의 작품이 늘 그랬듯이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갑자기 솟구쳐나는 낙관이 오히려 비애를 더하곤 한다. 예를 들자면 “난 가끔씩 생각해. 백 년, 이백 년 미래에 태어난 사람들한텐, 우리가 겪은 지금의 괴로움이나 외로움이 시시한 것이고… 하잖은 일이겠지만… 그렇지만 그것이 있었기 때문에, 그 덕분에, 백 년, 이백 년 미래의 우리가 행복해 지는 거라고…”(「20세기 소년소녀 창가집」, 하루에), “도심에서도 아직 이렇게 별이 빛나는 곳이 있어서… 그 별을 바라보면… 아름답고… 슬프고… 그러니까 너도 그것을 보러 나와, 하고…그래도 아직은 살 만하니까… 엄마는 속았지만, 그걸 지금은 원망도 하지 않고… 운이 나빴던 일, 안 좋았던 일, 힘들었던 일, 죽고 싶었던 일, 별 만큼이나 많을지 몰라도… 그래도 살만 하니까… 산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가을 반딧불이」, 마스미), “몇 번이고 쓴물을 마시게 되는 거야.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거야. 물은 투명하니까 마셔 봐야지 그 맛을 알 수 있지. 하지만 목이 마르면 마시지 않을 수 없어. 마시기를 싫어하는 인간은 살아나갈 수 없지. 우리들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쓴물을 마셔왔어. 그래도 살아나가야, 살아나가야 하는 거야.”「인어전설」,아버지) 같은 근거 없는 희망이 그렇다.
체홉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파티가 몰락의 전조를 확실히 해주었듯이, 정의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종류의 조촐한 축하연 역시 어떤 문제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미봉책이거나 이별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거듭 체홉을 연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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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장정일
시인, 극작가, 소설가. 1984년 <언어의 세계>에 「강정 간다」외 4편의 시를 발표한 이래로,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