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야 할 것이 흐르지 못하는 강변에서 한 수행승이 제 몸을 불사른 그날, 서울시 강남구 도곡동 타워 팰리스 꼭대기엔 별이 몇 개 걸려 있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우리 시대의 신전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원시의 어느 마을 신전 위 밤하늘도 저러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취기 탓이었으리라. 그리하여 우리 시대의 바벨탑에 관한 우화 하나를 써보잔 생각을 갖기에 이르렀다.
‘높이에의 의지’는 ‘기원에의 의지’와 한 쌍을 이룬다. 이는 문명의 두 축이다. 아래 이야기는 중국 운남성에 있는 암각화 하나를 통해 문명의 이 의지를 성찰해보려는 한 시도다. 그러니까 일종의 알레고리적 시도인 셈이다. 요지인즉슨 모든 기원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라는 것이다. 기원이 유일하다고 우기는 것, 여기서 모든 문명은 출발한다. 저 무시무시한 바벨탑 역시 이 토대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산하를 향한 우리의 ‘삽질에의 의지’ 역시 그러하다. 이를 특정 개인의 고집이라는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문명에의 의지’라는 차원에서 곰곰이 곱씹어보려는 것이 이 이야기의 출발점인 셈이다.
그러므로 이야기 속의 ‘배잣나무 언덕’을 우리 시대의 신전으로 읽어도 큰 출입이 없다. 다만 그림 맨 우측 하단 인물에 통한의 넋 하나를 얼마간 불어넣었다. 얼마 전 우리 시대가 세상 밖으로 밀어낸 그 운수납자의 넋 말이다. 4대강에 뿌려진 그의 유해가 이 땅의 막힌 것들을 훠이훠이 흘러가게 만들기를…
1
배잣나무 언덕 솟대에 물고기 별자리가 걸려 유난히도 아침이 더디게 왔던 그날, 이 마을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
사내가 쉰다섯의 장정을 이끌고 물길의 원천을 찾아 마을을 떠난 것은 두 번의 한파와 네 번의 가뭄과 여덟 번의 물난리를 겪기 전 일이었다. 마을 장로회의에서 정례 현안을 제치고 이 문제가 긴급 의제로 떠올랐을 때, 문득 사내는 저 호호탕탕한 황수(黃水) 물길이 심하게 꺾이는 접시꽃 언덕(葵丘) 계곡으로부터 한 줄기 바람 소리를 들었다.
장로회의가 사내에게 맡긴 것은 모순된 듯 보이나 모순되지 않는 두 가지 임무였다.
하나는 황수 물길을 주재하는 여신을 찾아 그의 노여움을 달래는 일이었다. 크고 작은 홍수 앞에서 백척간두의 삶을 꾸려가고 있던 마을의 입장에서 이 일은 생존과 직결된 사안이었다. 그러므로 이 일에 관해선 별다른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다른 하나는 여신이 공양 희생(犧牲)에 한 눈 파는 사이를 틈타 황수가 발원하는 지점에 사람의 무늬(人文)를 몰래 새겨두는 일이었다. 얼핏 보기에 소득도 없이 위험하기만 한 것처럼 보이는 이 사안을 두고 장로회의는 사흘 밤 사흘 낮 동안 설전을 벌였다. 혹자는 인심의 타락을 개탄했고 혹자는 장차 그것이 몰고 올 재앙을 경고하고 나섰지만, 이상하게도 이런 목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힘을 잃어갔다. 이때 한 장로가 사내에게 황수 발원 지점이 여신의 아랫배 심처 어디쯤일 거라고 낮지만 확신에 찬 어조로 귀띔 해 주었다.
그리하여 놀이 충동이 온 마을을 뒤덮던 만월의 어느 날, 배잣나무 언덕 제단에선 길흉을 묻는 몇 번의 복서(卜筮)가 있었고, 윽박지르다시피 받아 낸 응답에 따라 사내는 길을 떠나게 되었다. 매캐한 우골(牛骨) 훈향이 비린 것들의 넋을 파고들던 밤의 일이었다.
접시꽃 언덕에 걸린 달이 또 한 번 차고 이울 무렵 자운영 만발한 분지를 지나면서 일행은 두 패로 갈라졌다. 물길이 쪼개진 탓이었다. 상류로 올라갈수록 몇 번의 물길이 더 잘게 쪼개졌고, 목측(目測)으로 설핏 설산(雪山)이 들어 올 무렵 사내의 일행은 어느새 다섯으로 줄어 있었다. 더러 물길이 쪼개짐에 따라 패를 잘게 가른 탓도 있었지만, 대개는 추위와 굶주림, 부상으로 이미 독수리와 물고기와 전갈 밥이 되고 만 터였다. 그러니 이들이 겪었을 고초를 어이 말로 표현할 수 있으리.
3
몇 년의 시간이 지났을까. 사람들 기억 속에 저 숭고하고 비장했던 출정식이 가물가물해질 무렵, 오늘따라 더디게 온 마을의 아침을 깨운 것은 도저히 사람의 몰골이라 하기 어려운 네 명의 장정, 바로 사내 패거리였다.
육중이 변한 마을 목책 대문을 들어서다가 문득 중천의 태양 아래 배잣나무 언덕 솟대에 너덜대는 물고기 별자리를 바라보면서 사내는 마을에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한 줄기 얼음장 같은 기운이 등줄을 훑고 지나갔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저간의 사정은 이런 것이었다.
황수 상류에서 뿔뿔이 갈라진 원정대 중 한패가 마을로 급거 귀환한 것은 누런 황수가 닷새 밤 닷새 낮 동안 핏빛 강물을 토해내고 난 직후였다. 그래서였을까. 이들의 귀환은 더 뜨거운 환영과 치하를 받았다. 그들 입에서 나온 무용담과 기담괴설은 금세 마을 구석구석에 유전되었고, 그것들이 회자되면 될수록 그들의 어깨는 그만큼 더 높아져 갔다. 그 가운데 단연 압권은 제물에 정신이 팔린 여신 몰래 황수 원천에 사람의 무늬를 새기고 줄달음쳐 나온 대목이었다.
이들의 귀환은 예기치 못한 일련의 사건들을 불러왔다. 원정대가 떠난 후 한 차례 분쟁에 휩싸인 장로회의는 이들의 귀환에 힘입어 위계구조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이 구조의 정점에 자리하게 된 것은 은밀히 원정을 기획했던 그 자, 그러니까 원정대장인 사내에게 황수 원천의 위치를 은밀히 귀띔 해 준 바로 그 장로였다.
황수 여신의 아랫배에 저 불경하기 짝이 없는 돌 말뚝을 박고 거기에 〈황수의 근원(黃水之源)〉이란 무늬를 새긴 사실과 그 사업을 주도한 장로에게 큼지막한 청동 도끼가 주어진 사실 사이엔 어떤 연관 관계가 있었을까? 이 관계를 탐문하고 수소문하느라 마을의 여론은 한동안 뒤숭숭했다. 혹자는 이를 우연으로 풀었고, 혹자는 이를 인과 관계로 해석했다.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한 가지 분명해진 것은 이때부터 어떤 사람의 덩치 크기가 힘의 크기에 따라 달라졌다는 것이고, 거기에 따라 머리를 덮은 깃털 모자의 크기도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작은 깃털 모자를 쓴 자는 왕(王)이고, 왕 위에 더 정신 사나운 것이 얹히면 황(皇)이 되는 식이었다.
이후 원정 사업을 주도한 그 장로의 머리가 가장 크고 가장 화려하고 가장 볼 성 사납게 변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사내와 그 일행이 불려 간 곳은 큰 머리의 집무실이었다. 예전 장로회의가 열리던 그 움막이었다. 움막을 들어서면서 사내는 광야에서 보낸 세월이 적지 않은 것이었음을 절감했다. 마을 현안을 걸어 두고 나직한 논의가 오가던 둥그런 마당엔 호피 장식의 단상이 가파르게 서 있었고, 마을의 성물(聖物)인 죽관(竹管)을 걸어 두던 단아한 벽에는 낯선 청동 도끼 한 쌍이 파리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죽관의 운명으로부터 사내는 자신의 운명에 닥칠 그림자를 서늘히 예감하고 있었다.
죽관은 이 마을 모든 소리의 척도였다. 그것은 새것이 태어날 때 울었고 낡은 것이 무로 돌아갈 때도 울었다. 살아난 것들의 혼령이 이것으로부터 자리매김 되었고 죽어가는 것들의 혼백 역시 이것으로부터 제자리로 돌아갔다.
모든 새 생명의 탄생은 긴급 장로회의로 이어졌다. 거기서 만장일치로 추천된 장로는 그 생명에 혼불을 부여하는 의식의 집전자인 동시에 그 영혼의 아버지가 되었다. 으레 그랬듯 이 의식의 절정은 〈거룩한 고요〉라 불리는 순서였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비린 호흡을 잠시 놓은 채 죽관이 내는 울음을 경청하는 대목이었다.
사흘간 재계를 치른 집전자의 맑은 숨결이 마디마디 죽관의 피막을 울려 소리가 되면, 그 소리의 결과 질감과 무게가 곧 그 생명의 존재와 이름이 되었다. 죽관의 모든 소리는 숨결의 강약과 청탁, 때와 날씨, 온도와 습도, 풍향과 풍속에 따라 고유하고 개별적인 것이 되었다. 하다못해 구절초 계곡을 잉잉대며 오가는 꿀벌의 날갯짓에도 영향을 받았다. 이 마을 모든 생명의 이름 중에 같은 것이 없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사내가 태어났을 때 의식을 집전한 한 장로는 접시꽃 언덕에 부는 바람을 아흔아홉 가지 결로 겹겹이 벗겨 낼 수 있었다. (이 장로에게 〈聖〉이란 무늬가 추서된 것은 그가 죽은 뒤의 일이다. 〈귀 밝은 인간〉이란 의미였다.)
문득 사내는 자신의 이름이 〈옴 삿 푼〉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접시꽃 언덕 붉은 바람이 강물 위를 스칠 때〉라는 의미였다. 참고로 사내보다 수숫대 반 뼘 늦게 태어난 마을 송아지 이름은 〈느미 다 쥬가르〉, 즉 〈대지의 혼 불 속으로〉였다.
시리도록 근사한 영혼이었다. 사내는 이 자랑스러운 영혼의 아버지가 큰 머리 주변 시립(侍立)한 무리 속에 있지 말기를 간절히 바랐다. 적어도 그분만은 그래야 했다.
그때 큰 머리 왼편―이 마을의 통념에 의하면 모든 존재의 왼쪽은 오른쪽보다 더 무거웠다―에 착 달라붙어 있는 눈길 하나가 사내의 시선을 잡았다. 자운영 분지에서 길을 달리한 그 청년이었다. 삵처럼 명민하고 노루처럼 날래던 그 청년의 머리에 우스꽝스레 매달린 닭 털 몇 개를 바라보면서 사내는 비로소 사건의 전모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랬구나…!
슬펐다. 허나 용서하긴 어려웠다. 사내는 청년의 손에 들린 야단스런 톱날도끼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죽관이었다. 그러나 청년이 움켜쥔 죽관에선 혼백의 소리 대신 쇠 비린내가 났다. 어지간히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해진 근위대장의 도낏자루 속에서 저 접시꽃 언덕의 웅혼한 바람 소리를 기대할 순 없는 일이었다.
의장용 톱날도끼의 위력은 의외로 실팍했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마을 사람들이 〈나〉를 표시할 때 은근슬쩍 이 도끼 모양을 가져오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즈음이었다.
그 옛날 이 마을엔 〈나〉를 가리키는 말이 없었다. 아니 필요가 없었다. 사내의 증조부 적에 이르러 이 말에 대한 수요가 생겨났다고 했다. 그러나 그 시절의 〈나〉는 수동태로서의 〈나(吾)〉일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길손으로 순연히 거할 수 있을 뿐 주인장의 자리를 넘볼 순 없는 말이었다. 이를테면, 〈나를 버린 당신이여!〉라고 할 수는 있었으되 〈나는 노을 속으로 사라지는 흑조 두 마리를 보았노라!〉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런 번잡함과 불편함을 단번에 해결해 준 것이 바로 톱날도끼 〈나(我)〉였다. 훗날 이 말의 남용이 이 마을에 어떤 재앙을 몰고 왔는지에 대해선 거론치 않겠다. 다만 이후 이 마을의 뭇 선남이 뭇 선녀에게 던지는 사랑의 맹서 속에서 이 말이 버젓이 행세하게 되었다는 점만은 덧붙여 두고 싶다. 〈그댈 위해서라면 나(我)는 초개같이 목숨을 던질 수 있소〉라고. 그런데 어떻게 도끼를 들고 으르렁거리는 내가 그댈 위해 목숨을 던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사내와 청년 사이에 가로놓인 거리는 어떤 의미에선 〈나(吾)〉와 〈나(我)〉 사이의 거리면서 동시에 세계 자체와 사람의 말 사이의 거리였다.
4
이 가깝고도 아득한 거리를 불쑥 째고 나온 것은 큰 머리였다. 소임의 달성 여부를 추문하는 그의 언어에선 오르도스 사막의 모래바람 소리가 났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나…
차마 허방만 짚고 왔노라 고변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사실이 그랬다. 황수 물줄기 어디 하나 사내의 발길이 닿지 않은 데가 없었다. 그야말로 황토 대지를 꾹꾹 눌러 밟고 다녔던 것이다. 그러나 어디서도 여신은커녕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이제 남은 곳이라곤 단 한 군데, 무수한 용천(涌泉)으로 질펀한 마츄, 칼츄 고원뿐이었다. 거기서도 샘이란 샘은 다 뒤지고 살폈지만 끝내 황수의 근원은 보이지가 않았다.
그리하여 마츄, 칼츄의 신들마저 끝내 황수 여신의 친견을 허락지 않았을 때, 하늘이 가까워 별들도 아늑히 머무는 바다(星宿海) 그 밤의 호숫가에서 사내는 하염없이 울었고 사정없이 오열했다. 좌절에 겨워 울었고 절망에 겨워 오열했다.
얼마를 울었을까, 눈물의 어느 끄트머리에서 무수한 빛들이 빚어내는 환영 같은 것을 보았다. 일순 황(恍)하면서 홀(惚)한 무언가가 머리를 때렸다. 감당키 어려운 전율이었다. 그리고는 발길을 돌렸던 것이다.
그 밤의 절망과 황홀, 혹은 절망에 잇닿아 있는 황홀을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으리. 그러나 그 밤 피범벅이 된 두 발로 깨닫고 맹세했던 그 무엇을 어떻게 말하지 않을 수 있으리. (모든 깨달음과 맹세는 영혼과 가슴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두 발로 하는 것임을 그 밤에 알았다.)
별이 잠드는 바다(星宿海)는 아흔아홉 개 물줄기가 출입하고 회통하는 부요(浮搖)의 바다였다. 거기서 아흔아홉 개 별은 모두 물속의 별이었고 아흔아홉 줄기 물은 모두 하늘 속의 물이었다. 거기서 모든 오름은 아래로의 오름이었고 모든 내림 역시 위로의 내림이었다. 거기서 모든 원천은 여럿으로서의 원천이었고 그러므로 모든 기원 또한 더불어로서의 기원이었다.
마침내 사내가 입을 열었다.
5
다음 날 새벽, 긁개 모양의 엷은 달이 배잣나무 언덕 솟대를 피해 바삐 길을 재촉할 무렵, 마을 목책 대문이 소리 없이 열렸고, 그 문으로 한 사내가 추방되었다.
접시꽃 언덕엔 바람이 잦아들었고 황수에서 들소만한 벽어(碧魚)를 사로잡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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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공상철
중국 현대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의 문화적 자산을 문명사적 지평에서 재해석하는 작업에 관심을 갖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몇 분과 함께 『루쉰(魯迅)전집』 한국어판 완역 작업에 임하고 있다. 숭실대학교에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