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서귀포시 표선면 표선리 춘자싸롱. 허름한 30년 국수집. 제주올레 가이드북을 들고 어렵게 찾았다. 일전에도 표선에 한 달 정도 산 적이 있지만 나는 이 집의 정체를 알지 못했었다. 식당은 테이블 하나가 전부다. 좁히면 여섯 명까지 앉을 수 있는 공간. 낯선 사람들과 옆자리에 앉아 국수를 먹는다. 메뉴는 단품이다. 멸치국수. 여름이면 콩국수가 하나 추가된다. 국수는 보통이 2천 원, 곱빼기는 3천 원이다.
강춘자, 표선이 고향인 여자는 한림으로 시집갔다가 남편과 싸우고 고향으로 돌아와 그대로 눌러 앉았다. 국수집을 차려 30년을 이어왔다. 처음부터 갈라질 생각은 아니었다. 배짱 좀 부리려다 보니 그렇게 됐다.
“싸워도 젊은 부부들은 1년 안에 합쳐야지 오래가면 안 돼.”
떨어져 살면서 3개월 동안은 허전했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나자 옆에 누가 오는 것조차 귀찮아졌다.
“아주 같이 살지 않을 거 아니면 오랫동안 별거하면 안 돼. 오래되면 잊혀져. 사람한테는 정이 하나뿐이라는데 그게 맞아.”
서른 살에 결혼해 서른두 살에 딸 하나를 낳았다. 그리고 3개월 만에 아이를 안고 친정으로 와버렸다.
“후회 안 해. 남편이 밀감밭에 약을 친다고 해서 내가 나무에 걸린 농약 호스 줄을 잡아줬거든? 근데 잘 못한다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거야 남편이. 그래서 홧김에 ‘이거 안 해도 살아’ 꽥 소리 지르고 나와버렸어.”
제주 여자의 배짱이지 싶다. 그 후로 쭉 혼자 살았다.
“재혼은 하고 싶지 않더라고. 혼자 살 팔자인 모양이야. 남자한테 별 관심이 없었어. 지금도 혼자 사는 거 후회 안 해.”
일요일은 점심 손님만 받고 놀러 가버린다. 아주 문을 닫고 싶지만 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점심시간은 연다. 아무도 춘자싸롱의 이름을 누가 지었는지 모른다. 주인마저도. 어느 날부턴가 다들 그렇게 부르더란다.
2010년 4월, 2년여 만에 다시 올레 3코스를 걷다가 표선면 시가지를 지난다. 늦은 아침을 먹고 출발한 터라 그다지 배가 고프지는 않지만 문득 춘자싸롱이 그립다. 국수 맛은 여전할까. 우리의 춘자 씨는 잘 있을까. 표선 시내를 가로질러 춘자싸롱을 찾아간다. 그런데 국수집이 사라졌다. 마당에 텃밭까지 있는 허름한 집이었는데, 흔적도 없다. 춘자싸롱이 있던 자리가 분명한데,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찾을 길이 없다. 낡은 집은 헐리고 새 건물이 들어선 것이다. 세 들어 살던 춘자 씨는 어디로 옮겨갔을까.
근처 슈퍼 주인에게 물어 멀지 않은 곳에서 춘자싸롱을 찾았다. 여전히 간판은 없고 유리창에 ‘춘자국수’라는 글자만 새겨져 있다. 새 식당은 조금 번듯해졌다. 테이블이 두 개로 늘었고 식당 안의 조명은 더 환해졌다. 2년 만에 두 배로 확장됐으니 번창한 것인가. 하지만 국수를 삶아 내오는 춘자씨의 안색이 파리하다. 어디 아팠던 것은 아닐까. 여전히 양은 푸짐하고 멸치육수의 맛은 진하다. 2년 사이 가격이 5백 원씩 올랐다. 멸치국수가 보통은 2천5백 원, 곱빼기는 3천5백 원. 그래도 서귀포 시내에 있는 국수집들에 비하면 말할 수 없이 저렴한 값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춘자 씨에게는 또 어떤 인생의 우여곡절이 있었을까. 나그네는 감히 묻지도 못하고 묵묵히 국수를 먹는다. 국수 그릇에서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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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강제윤
시인, 1988년 『문학과 비평』으로 등단. 1989년 첫 시집을 낸 이후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혁명가로, 인권운동가로 사느라 오랫동안 글쓰기를 떠나 있었다. 3년 2개월간의 투옥생활 이후 군사정권시대 고문을 통해 간첩으로 조작된 '조작간첩'들의 누명을 벗겨주는 인권활동을 했고 이들은 후일 재심에서 대부분 무죄 판결을 받았다. 1998년 보길도로 낙향한 후에는 보길도 자연하천을 시멘트구조물로 바꾸려는 시도를 저지시켰고 33일간의 단식 끝에 고산 윤선도 유적지를 훼손시킬 대규모 댐 건설을 막아냈다. 2005년 다시 고향을 떠나 집 없는 유랑자가 됐다. 10년 동안 한국의 사람 사는 섬 500개 모두를 걸어서 순례할 서원을 세우고 지금까지 150여 개의 섬을 걸었다. 시인은 여전히 섬을 걷고 있다. 지금은 가장 큰 섬 제주에서 1년 남짓 장기 체류하며 제주 땅과 올레길을 걷는 중이다. 제주에서의 시간은 단지 여행이 아니라 현실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연재물은 그동안 제주에서 만난 생각과 사람과 사랑과 생활에 관한 이야기들이 될 것이다. 저서로 『섬을 걷다』, 『파시』, 『부처가 있어도 부처가 오지 않는 나라』, 『숨어사는 즐거움』, 『보길도에서 온 편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