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섹스를 잘한다는 게 솔직히 어떤 건지 잘 몰랐다. 세탁소 남자는 섹스조차도 조용히 했다. “너는 남자 얼굴 밝히는 게 단점이야. 남자는 얼굴만 보면 안 된다.” N은 늘 현명한 소리만 했다. “언니야, 그럼 얼굴 안 보고 뭘 봐. 얼굴이 제일 먼저 보이잖아. 얼굴 먼저 보고 돈 있나 보고 착하면 좋고 아니면 좀 참고 그런 거 아냐.”
L이 대들었다. “남자는 마음이 깊어야 해.” N은 좀처럼 자기 얘기는 하지 않는 대신 확고한 고집을 갖고 있었다. 세탁소 남자를 생각할 때면 그 조용한 섹스가 떠올랐다. 신음 소리조차 내지 않는, 너무 고요해서 졸리기까지 했던, 좋았다거나 나빴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느낌의 섹스였다.
“사실은 내가 진짜 좋아하는 남자가 있어. 지금 보스턴에서 공부하고 있어. 처음 만났을 때는 정말 좋았다. 이상형이었어. 핸썸하고 따뜻하고. 그런데 얘가 점점 시들시들해져가는 거야. 공부에 찌들어가지고. 언니 내가 뉴욕에서 그 애 만나려고 일주일에 한 번씩 직행버스 타고 왕복 여덟 시간을 길에 깔았어. 그렇게 일 년 가까이 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애가 완전히 늙어 있더라구. 정말 공부에 찌들어서는 겨우 밥숟갈이나 들 정도의 에너지만 있는 거야. 입만 열면 공부 때려치우겠다고 하고. 산책을 가도 벤치에 앉아서 졸기만 해. 섹스는 완전 엉망이었지. 그래서 끝냈어.
그런데 가끔 보스턴행 버스에서 보던 풍경이 꿈에 나타나. 뉴욕을 벗어나는 동안 내내 눈앞에 보이던 거대한 공동묘지들, 정말이지 장관이었어. 또 딱 한 번 서는 그 정류장, 화장실을 이용하곤 하던 맥도날드 앞 광장에서 보는 아침 풍경 말이야. 그리고 또 있어. 내가 탄 버스가 차비가 제일 쌌거든. 시내 중심부에서 가는 차도 있는데 나는 늘 그 버스를 탔어. 차이나타운에 정류장이 있는데 정말이지 그 정류장 끝내줘. 길거리에 울긋불긋하게 지은 촌스런 건물이 있고 거기서 중국여자가 표를 팔아. 화장실도 없고 손님을 위한 의자도 몇 개 없어. 그냥 길거리에 서 있으면 차 시간이 되어 중국 여자가 울긋불긋한 깃발을 들고 나와서 소리쳐. 보스턴, 보스턴 하고 말이야.
나는 중국 여자가 소리치는 그 보스턴이란 말이 주는 느낌이 너무 좋았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느낌, 움직이는 느낌, 살아 있다는 느낌 그런 거 말이야. 어쩌면 난 그 소리를 듣기 위해 갔는지도 몰라. 지금도 가끔 보스턴을 생각해. 어쩌면 내가 제일 좋아했던 사람은 그 사람이야. 비록 섹스는 엉망이었지만. 아, 생각났다 그 이름. 풍화버스, 버스에 빨강색으로 대문짝만 하게 써 있었어. 보스턴행 풍화버스.”
세탁소 남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길거리 위로 뜨거운 바람이 불고 검은 하늘 위에 파란 구름이 섞여 있었다. 나는 다시 네일샵으로 들어갔다가 잠시 후에 다시 나왔다. 그리고 또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전화를 받았다. “별일 없어요?” 남자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남자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 “잘 지내요. 모든 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오늘 전화를 한 이유는, 그 생일 선물 말인데요. 그 야외용 튜브 말인데요. 기억나요?”남자 쪽에서 약간의 부스럭거리는 소리,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대답을 안 하다가 잠깐 뒤에 말했다. “아, 네 그거요. 기억나요.” “도대체 여자 생일에 그런 이상한 선물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서 꼭 물어보고 싶었어요.” 남자는 또 대답을 안 하다가 잠깐 뒤에 말했다. “왜요? 난 괜찮은 선물이라 생각했는데, 즐겁잖아요. 여름에 정원에다 물 받아놓고 선탠하면 좋을 거 같았어요. 그뿐이었어요.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요.”
막상 얘기를 꺼내놓고 보니 할 말이 없었다. 문득, 박스에 차곡차곡 넣어가지고 왔더라면 꺼내보기라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오히려 남자에게 미안했다. 전화를 끊고 허공에다 대고 혼자 떠들었다. 내가 비키니를 입고 정원에서 물 받아놓고 거기 들어가 놀 수 있을 정도의 몸매가 된다고 생각하셨군요. 정말 충격적이네요. 저를 완전히 과대평가하셨어요. 그래도 뭐 기분이 나쁘진 않네요. 버지니아는 어떤가요.
연애 얘기는 처음엔 재미가 있지만 나중엔 그저 한 얘기의 반복일 뿐이었다. 그리고 하면 할수록 그만큼 고독했다. 나는 L과 N의 얼굴을 차례로 쳐다봤다. “자 내가 진짜 재밌는 얘기 해줄게. 다들 들어봐.” 나는 소지품을 두는 곳으로 가 가방 안에서『돈 키호테』를 들고 나왔다. 의자 세 개를 동그랗게 놓고 앉았다. “북 그룹이야. 이제부터 내가 세상에서 제일 웃기는 남자 얘기를 해줄게. 들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