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고, 늘 정돈되어 보이는 손님만 오는 건 아니었다. 다른 날보다 영업시간이 긴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 하루 종일이 주중의 피크였다. 다리가 통통 붓고 손이 다 부어오를 지경이었다. 사장조차도 쉴 여유가 없이 셋이서 하루 종일 여자들 손톱만 만졌다. 금요일 저녁이면 유난히 손톱에 부상을 당하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던 건 왜 그랬을까. 금요일 저녁이 무슨 갈등과 분쟁의 요일이었던 걸까. 그걸 나만 몰랐던 걸까.
E의 찢어진 손톱을 케어해준 건 두번째였다. 안 그래도 미어터질 것 같은 E의 얼굴은 막 오븐레인지에서 꺼낸 잘 익은 고구마처럼 빵빵해 보였다. 눈두덩이며 광대뼈 부근이 불긋불긋한 걸로 봐서 금세 부부싸움을 하고 뛰쳐나왔거나 남자친구와 육박전을 벌이고 온 게 틀림없었다. E는 왼손잡이여서 그런지 지난번에도 그랬고 왼쪽 중지 손톱이 잘 부러졌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왼쪽 팔만 뻗었다.
“또 찢어지셨네요. 날씨에 따라 유난히 손톱이 약해질 때가 있어요. 금방 감쪽같이 해드릴게요.” 나는 E를 안정시켜주고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해드릴게요,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손님의 얼굴에서 뭔가를 읽었다고 해서 아는 체를 해서는 안 되었다. 절대로 야구모자를 벗지 않는 E. 나도 절대 고개를 들지 않았지만 그녀가 오른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다는 걸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왼쪽 중지 손톱 아래쪽에 손톱과 피부가 떨어지는 스트레스 포인트 부분이 가로로 쭉 찢어져 있었다. 지금 상태에서 손톱을 자르면 다른 손톱과 길이가 맞지 않아 금세 눈에 거슬리기 십상이었다. 원래 누구나 잘 찢어지는 부분이긴 하지만 가로로 찢긴 부분에 검은 이물질이 잔뜩 끼어 있었다. 돋보기를 꺼내들고 찢어진 부위에 낀 이물질을 들여다봤다. “깨끗하게 닦아내야 하거든요. 잠깐만요.” 순간 나는 흰 장갑을 끼고 사건의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X파일의 여형사가 되었다. 네이비 칼라의 면섬유. 조직의 탄성이 약한 섬유 조직이 분명했다. 나는 그냥 쉽게 남자들이 자주 입는 폴로 면셔츠를 떠올렸다.
뉴저지 동쪽의 한적한 주택가. E가 한국 남자와, 아니 미국 남자일 수도 있지만 여하튼 저녁을 먹고 있다. 초도 켜도 꽃병도 있는 따뜻해 보이는 식탁이다. 와인 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한다. 생일 축하해. E가 남자에게 윙크를 건네며 말한다. 온통 붉은색 봉투를 건네는 E. 그러나 남자는 봉투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심각한 얼굴로 E를 쳐다본다. 자기야 미안해. 나 오늘 또 잃었어. 처음엔 잘 나갔어.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울기 시작한다.
E가 침묵한다. 얼굴이 헐크처럼 변하기까기 걸린 시간은 불관 십 초 정도. 뭐라구, 또 잃었다구. 내가 그 돈 다 갚은 게 바로 어제야. 그런데 오늘 또. 오늘 하루 쉬고 내일부터 다시 일해서 니가 진 노름빚 갚으라고 이 나쁜 새끼야. E가 벽을 향해 와인 잔을 집어던진다. 남자가 벌떡 일어나 E에게 다가가 저지하려고 한다. E가 순간 남자의 뺨을 때린다. 남자도 참지 않고 E를 때린다.
서로 몸이 엉키고 누구의 몸에서 나는지 피가 난다. 바닥에 똑똑 떨어진 핏방울. 남자가 집에서 뛰쳐나가고 E는 혼자 남았다. E는 헐크처럼 숨을 거칠게 몰아쉰다. 손톱이 또 찢어져 있었다. 그녀는 찢어진 손톱을 보고 나서야 엉엉 울기 시작한다.
찢어진 손톱 표면을 파일로 다듬었다. 찢어진 손톱에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감쪽같이 인조 손톱을 만들어 붙여주는 게 내 일이었다. 깨끗해진 손톱에 다시 풀을 바르고 손톱 사이즈에 맞는 팁을 붙였다. 손톱용 가위로 팁을 잡고 파일로 갈아 그녀의 다른 손톱들과 길이를 맞췄다. 접합 부분이 표가 나지 않게 잘 마무리하고 표면을 매끄럽게 정리한 뒤 영양제를 바르고 매니큐어를 발랐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애초에 붙였던 팁을 떼어냈다. 마지막으로 큐티클 오일을 바를 때까지 E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찢어진 자기 손톱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런 경우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인조손톱을 빨리 완성시켜 집에 보내는 게 상책이었다. E가 돌아가고 오랜만에 정말 뭔가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E와 남자의 깨진 저녁, 그 식탁의 풍경 따위들. 그러나 또 써봐야 쓰레기들밖에는 되지 않을 거란 생각에 욕망을 접었다. 미국까지 와서 쓰레기를 남길 일이 뭐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