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어느 가장 더운 날 엉성하기 짝이 없는 “창과 가죽 방패를 거머쥔 채 숨겨진 마당 뒷문으로 빠져나와 들판으로 향”하는 돈 키호테. 세상을 구하러 나가는데 멋진 장비를 갖추고 나가는 것도 아니고 얼굴가리개도 없는 부서질 듯한 낡은 투구를 썼다. 그가 사랑하는 말 로시난테의 꼴은 또 어떻고. “길고 축 늘어진 몸집에다, 진짜 가늘고 삐쩍 마르게 척추까지 앙상하”고 “열병으로 문드러진 흔적도 있는 비루한 말”이다.
또 당당하게 만방에 알리고 나가는 것도 아니고 아무도 모르게 마당 뒷문으로 빠져나가는 이 영감탱이의 모습은 읽어도 읽어도 웃음이 났다. 온종일 걸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자랑스러운 팔뚝의 힘을 보여줄 기회가 없는 불쌍한 돈 키호테, 말은 지치고 배는 고파 죽겠고, 이 우스꽝스러운 영감탱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책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킥킥거리게 되었고 어느새 일할 시간이 다가왔다.
손님은 저녁 시간에 많았다. 예약을 하고 오는 손님이 대부분이었는데 맨해튼에서 직장에 다니는 한국인 직장 여성들, 뉴저지에 주재원으로 와 있는 한국의 대기업 상사 부인들이 주로 고객이었다. 대부분의 여자들의 얼굴에서 뭐라 표현하기 힘든 윤기가 흘렀다. 이마에서부터 턱선 끝까지 흰색도 핑크빛도 아닌 어떤 광택이 얼굴 전체를 압도했다. 윤기라고는 없이 폐경기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가고 있는 계동의 아줌마들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그리고 여자들이 비즈 장식을 손으로 밀고 샵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강하고, 오래 지속되는 어떤 향기가 좁은 네일샵 안을 압도했다. 그걸 나는 먹고살 걱정 없는 살 만한 여자들의 향기라고 규정했다.
손님 Y는 일주일에 한 번씩 왔다. 손톱을 먼저 물에 불리는 동안에도 전화가 걸려올 거라며 한손씩 해달라고 할 정도로 바빴다. 케어를 받는 내내 파마가 풀린 부스스한 머리 옆에 핸드폰을 끼고 집에 있는 아이들한테 전화를 걸었다. 또 그것으로도 뭔가 안심이 안 되는지 학부모들한테 전화를 걸어 아이들 캠프 일정을 확인하고 준비물을 체크하고 정보를 교환하기 바빴다. 그녀는 아이들의 교육에 목숨 건 여자였다. 전화를 끊고도 어쩌다 입만 열면 자동적으로 아이들 얘기가 쏟아져 나왔다. “여기 오는 게 내 유일한 취미잖아” 정도가 자기 자신에 관해 말한 내용의 다였다.
군데군데 예쁜 구석이 없지 않은 얼굴인데 전체적으로 보면 늘어지고 처진 느낌이 강했다. 의외로 완벽주의자여서 빈 그릇이 나는 대로 설거지를 해치우는, 그것도 더운물로 고무장갑도 끼지 않고 설거지를 해 하루 종일 여러 차례 손을 혹사시키는 타입이었다. 손바닥은 말 그대로 사막의 갈라진 땅, 손등은 나이가 몇인지 벌써부터 반점투성이였다. “사모님 가능하면 집에 계실 때 얼굴에도 바르시겠지만 손에도 자외선 차단제를 꼭 바르세요. 실내에 계실 때도 꼭 바르셔야 해요. 심지어 지하의 쇼핑센터 같은 곳에서 일하는 분들도 전기 때문에 곡 바르셔야 하거든요.” “그래? 사람들이 그걸 다 바르고 다닌다는 거야? 난 그런 걸 바를 시간이 없어.” Y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얼굴을 쳐다보며 웃었다.
물에 불린 손톱 뿌리에 지저분하게 달라붙은 큐티클을 제거하고 난 뒤 핸드크림과 오일을 잔뜩 발라 양손을 부드럽게 만져 따뜻하게 만들었다. 이쯤 되면 Y도 좀 조용해지고 몸의 긴장을 푸는 상태로 들어갔다. “손에는 우리 몸의 여러 기관을 가리키는 포인트가 있어요. 그래서 손 마사지를 하면 손님의 몸도 그만큼 좋아지죠.” 엄지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듯이 손등부터 마사지를 하기 시작했다.
손가락 하나하나를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잡고 하나씩 꼭꼭 눌렀다. 어떤 순간에는 Y의 입에서 조용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 시원하다.” 손가락 끝을 잡고 오른쪽, 왼쪽으로 번갈아가며 돌리자 손가락 관절이 시원하다고 했다. 손바닥 전체를 엄지손가락으로 꼼꼼히 주무르고 손가락 끝을 뒤로 꺾어 스트레칭도 해주었다. “아 정말 시원하다.” Y는 목 부근을 이리저리 돌리며 목운동을 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꼬고 앉은 한쪽 다리에 걸린 슬리퍼가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