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내 얼굴, 나의 외모는 현실적인 문제로, 커다란 핸디캡으로 다가왔다. 얼굴도 문제지만 술살로 인해 늘어진 허리 부근의 뱃살 때문에 전체적으로 두루뭉술해 보이는 몸매가 결정적이었다. 당장 뱃살을 어떻게 할 자신은 없고 생각을, 아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밖에. 단기간에 몸매를 바꿀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무조건 머리를 기르기로 작정했다. 아무런 특징이 없는 외모를 커버할 방법은 그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고 검은 머리카락으로 가능하면 얼굴 전체를 많이 가리고 몸매를 감추는 옷을 입었다. 조금 유쾌해 보이는 마술사 기분을 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눈가에 반짝이는 펄이 들어간 검은색 아이세도우를 진하게 발랐다. “언니 꼭 키메라 같애.” 같이 일하는 N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그러고 나니 전체적으로 좀 나아 보이긴 했지만 벗고 보면 술살과 뱃살은 그대로였다.
내 모습은 계동에 살던 때와는 뭔가가 달랐다. 그때,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들여다보던 순간의 감정이란 참으로 미묘했다. 입을 크게 벌리고 아에이오우를 그리며 찢어져라 웃고 있는데 눈은 나도 모르게 금세 눈물이 맺혔다. 힘들지만, 내가 여기에 지금 살아 있다는 생각, 뭔가 해보자는 기운이 마구 솟아나면서도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어느 순간부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던 때의 얼굴이 지금도 기억난다.
사장은 아침마다 단둘뿐인 직원들을 세워놓고 일장연설을 시작했다. “여자들이 정기적으로 미장원에 가듯이 네일케어를 받지 않으면 온몸이 근질근질해서 못 견디게 만들어야 해요. 그게 우리의 할 일이야. 여러분들은 네일케어를 손톱에 매니큐어나 칠하는 단순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절대로 그렇지 않지. 사람마다 손톱을 보면 그 인생이 다 드러나요. 우린 그걸 볼 줄 알아야 해. 손님의 친구가 되어주어야 한다니까. 그녀의 고통, 그녀의 꿈, 그녀의 사랑, 그녀의 기쁨, 그런 것들을 손을 보고 다 읽어야 한다구.” 그 순간 사장의 눈가에도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는 건 정말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내가 맨해튼에서 네일샵을 할 때, 정말 이름만 대면 다 알 만한 할리우드 여배우들이 한밤중에 조용히 샵에 왔다니까. 이름이 뭐더라, 수잔, 아니 엘리자베스, 아니 뭐였지? 어쨌든 그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야구모자 눌러쓰고 슬픈 얼굴로 들어와서는 몇 시간 동안 수다 떨고 케어 받고는 결국 웃고 나갔다니까. 내가 그녀들이 나갈 때 그 멋진 엉덩이에 대고 뭐라고 말했는지 알아? 잘 살다 오세요! 그러면 그 그림같이 생긴 배우들이 나한테 고맙다고, 볼에 키스를 하고 나갔어. 아, 정말 그럴 때마다 네일아트를 시작한 게 얼마나 보람차고 기뻤는지.”
김 작가와 거의 같은 수준의 뻥쟁이 아줌마가 뉴저지에도 있다니, N은 뭔가 잘못한 사람처럼 두 손을 모으고 조용히 서 있는데 나 혼자 킥킥거리며 웃었다.
처음엔 손님의 손톱에 피도 내고 비명을 지르게 만들고 문제가 꽤 많았다. 사장이 여러 차례 경고를 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실수를 해서는 곤란했다. 잘리면 갈 곳도 없다는 생각에 몹시 긴장해 있었고 나 스스로에게 긴장을 풀어줄 만한 심리적 여유가 없었던 게 문제였다. 그러나 시간이 얼마 가지 않아 나만의 긴장 푸는 방법을 찾았다. 그때까지 내가 읽은 책 중에 가장 재미있는 책, 아니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책, 그것도 세로로 디자인이 된 누런 책『돈 키호테』를 읽는 것이었다.
나이 오십이 넘어 세상을 구원하겠다고 거리로 나선 늙은 남자. 본명이 께사다인지, 끼하나인지 하는, 왠지 앞머리칼이 뭉텅이로 빠지고 없을 것만 같은 우스꽝스러운 남자가 등장하는 이야기였다. 그가 세상에 나선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세상이 그를 원하”기 때문이었고 “하루빨리 세상에 나가 원한은 풀어주고 굽은 것은 펴주고 불합리한 것은 바로잡아주고 미신을 깨우쳐주며 빚은 갚아주어야 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