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정말 모르겠어. 어떻게 쓰라는 거야 도대체.” 가슴이 너무 커서 책상 위에 얹어놓은 것처럼 보이는 한 회원이 여고생처럼 연필을 책상 위에 집어던지며 말했다. 언뜻 본 회원들의 얼굴은 열기로 달아올라 있었고 머리에 쥐가 난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저 여자들은 매일 모여서 뭘 하니?” 안채 할머니가 나한테 물었다. “뭘 쓴데요.” “뭘?” 나는 할머니와 함께 콩나물을 다듬고 있었다. “나도 뭘 써 보고 싶은데 니가 좀 읽어줄래. 나도 뭘 써놓긴 했다. 우리 어머니 마음 상하게 하고 저 양반하고 결혼한 얘기, 내 딸이 손녀를 낳던 날 얘기 그런 거 많이 써놨어. 그런 거 말고 죽기 전에 나만 아는 비밀 얘기도 쓸 거야.” 어쩌면 안채 할머니가 회원들보다 한 수 위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 순간만큼은 할머니에게 “저 여자들 얘기는 다 쓰레기들이에요 할머니”라는 말은 결코 할 수가 없었다.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세상에 넘쳐났다. 국경을 넘어서 시간을 초월해서 글쓰기에 관한 욕망은 세상의 많은 가짓수의 음식들만큼이나 다양한 맛과 모양새로 사람들을 자극하는 것 같았다. 뉴욕에서는 도무지 살아갈 수가 없어서 겨우 어떻게 얻어간 뉴저지 해캔섹의 봉제공장 작업실. 근처에 있는 뷰티 아카데미에 다니는 한국 학생들이 부러워 지나가는 애들을 넋 놓고 바라보곤 했다.
일을 하는 시간 외에, 사장이 외국 출장을 가거나 조금이라도 시간 여유가 생기면 동그랗게 모여 앉았다. 우리들 등 뒤의 바닥에는 완성된 옷들, 만들다 만 옷들, 원단들, 색색의 실들이 갤러리 바닥을 잔뜩 메운 설치 작품들처럼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우리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반제품들은 그대로 내동댕이친 채 자기 얘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미국의 심장부에 와 살면서도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맥주라도 한 잔 들어가고 나면 얘기의 운은 늘 같은 화두로 시작됐다. “내가 어떻게 해서 미국까지 오게 됐는지 알아? 내 얘기 좀 들어봐.”
결국, ‘글쓰기를 사랑하는 계동 여성들의 모임’의 노트들은 고만고만한 한국 요리 레시피로 잔뜩 채워졌다. 어떤 회원은 자기 아들이 학교에서 듣고 와 얘기해준 허접한 퀴즈 문답을 적어놓기도 했다. 어떤 문장 뒤에는 괄호 열고 웃음, 괄호 닫고까지 붙였다.
아무리 웃으려고 해도 웃음이 나오지 않는 썰렁한 얘기였는데도 말이다. 어떤 회원은 자기 자궁 속에 달린 혹을 발견하고 떼어내기까지의 과정을 일지처럼 적어놓기도 했다. 그 회원은 그림 그리는 재주까지 있어서 간단한 삽화까지 그려놓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보기에 회원들의 글은 아직 아마추어였고 영락없는 쓰레기들이었다.
어쩌면 그즈음에 내가 빠져 있던 책이 보봐르의『인간은 모두가 죽는다』여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책 표지에 굵은 타이포로 찍힌 아홉 개의 글자는 사실 사람들이 볼까 봐 공공장소에 들고 다니기에는 적절하지 않았다. 게다가 ‘인간’은 한자로, ‘모두가’는 붉은 글자로 인쇄되어 있어서 굉장히 유치했다. 그냥 혼자서 술을 마시면서, 정독도서관의 앞마당에서 혼자 있을 때 보면 딱 좋은 책이었다.
보봐르가 쓴 소설이니까 실존주의 냄새가 풀풀 나는 건 당연하겠지만 흥미로운 건 이 소설의 비현실적인 설정에 있었다. 내가 늘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실에서 한 치도 발을 떼지 못하던 나에게 이 소설의 설정은 매우 놀라웠다.
여자 주인공인 연극배우 레진느는 공연이 끝난 비 오는 밤, 거리에서 한 남자를 만난다. 비가 내리는 길에서 자고 있는 남자, 레이몽 훠스카였다. 훠스카가 말한 자기소개에 의하면 그는 삼십 년 동안 정신병원에 있었고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당연히 레진느가 물을 수밖에. “삼십 년? 그렇담 당신 지금 대체 몇 살이시죠?”
1, 2, 3부로 이루어진 긴 프롤로그의 마지막 부분에서 훠스카는 자신이 ‘죽지 않는 불사(不死)의 인간’임을 고백한다. 레진느는 포도주를 마시며 사랑을 고백하고 드디어 훠스카는 자신의 긴 인생에 관해 입을 연다. 세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프롤로그에 본 챕터만 다섯 개의 장, 거기에 한 개의 에필로그가 덧붙여진 이 소설은 굉장히 두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