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가 이 부분을 왜 노트에 베껴 적었는지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노트를 들고 어니스트처럼 문장을 읽어보았다. 자꾸 읽고 또 읽고. 다 귀찮고 정말 세상이 뒤집어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B는 지금 어디서 살고 있을까. B의 노트에 적혀 있던 글들, ‘대가를 치를 거야’, ‘피투성이가 된 노동자들’. 정말 멋진 노조 지부장이라도 된 걸까. 선박회사의 노조 지부장이 된 B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그러나 사실은 B의 얼굴이 가물가물하다.
새로 시작한 연애가 끝날 때마다, 눈앞의 연애보다 오래전에 헤어진, 과거의 애인들이 생각나는 건 왜 그럴까. 그때로부터 하나도 벗어나지 못한 채 뒤로 걷고 있는 느낌, 발전이라고는 없는 느낌,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는 느낌, 아마 B도 그랬을 것이다. 너무나 큰 벽, 너무나 큰 차이, 그리고 오를 수 없는 벽……. B도 나도 우리는 자신의 태생과 기원에 대한 믿음이 없는 가난하고 희망 없는 족속들이었던 것이다.
아현동의 그 지하방으로 걸어 내려가는 발짝 소리가 아직도 들린다. 아현동의 그 지하방, 또 잠실의 어느 방 한 칸, 또 서교동의 오래된 오피스텔. 내가 사귀던 애인들이 살았거나, 애인이 찾아왔던 내 방, 그때의 방들을 순례하고 싶다. 방들마다 다른 책들이 놓여 있었다. 다른 햇빛, 다른 소음들, 다른 대화법, 그러나 같은 게 있다면 연애의 결과가 모두 다 좋지 않았다는 것.
혁명을 꿈꿨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얌전했던 B는 그날 밤 방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날 밤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우 이상하게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야기 꼴이 갖춰져 가는 것 같은 감격스러운 체험을 했다.
내가 나가 있는 시간에 B는 집에 있었고 내가 집에 있는 시간에 B는 밖으로 나갔다. 어쩌다 함께 있게 되면 라면도 각자 끓여 먹었다. 어긋나고, 만나지 않고, 각자 뭔가를 읽고 쓰고, 같은 식탁에 앉아 밥을 먹지 않는 건 결국 같이 살지 않는 것과 똑같았다.
새로운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일주일 쯤 되었을 때 소설은 끝났다. 나는 얼마 되지도 않는 내 소지품을 챙겨 넣은 쇼핑백 두 개를 양쪽 손에 들었다. 그리고 불을 끄기 전에 방 안을 휘 둘러봤다. 방문을 열고 형광등 스위치에 손을 댄 순간 B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책 《강철군화》가 보였다. 그 책을 쇼핑백 안에 넣었다. B를 속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수십 번 얘기했는데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계동으로 갔다. B를 지켜줘야 한다거나 헤어지기 섭섭하다는 느낌보다는 빨리 계동으로 가 J 작가에게 내가 쓴 소설을 보여주고, 뭔가 나아졌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졌다. 정말이지 그게 다였다. 그 말만 들으면 그냥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영인아, 너, 너 어떻게 그렇게 혼자 나가 살 수가 있니? 하나밖에 없는 엄마, 김 작가님 걱정 도 안 되니?” 계동 글짓기 교실에 모인 동네 여자들이 모두 다 한마디씩 하며 나한테 다가와 머리카락을 만지고 어깨를 만지고 허리를 안고 반가워했다. 갑자기 밀려오는 친밀감, 돌아온 탕아가 된 기분이었다.
“쟤가 날 걱정하겠어요? 사실은 나도 쟤 걱정 안 해요.” 우리의 김 작가는 아직도 씩씩하고 명랑해 보였다. 깔깔거리고 박수를 치고 또 갑자기 진지해졌다가 또 갑자기 음담패설로 빠지는 계동 여자들의 대화는 다이내믹함, 발랄함, 그리고 수준 낮음, 그 자체였다. 아이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 하고 힘도 들 텐데 그 여자들은 도대체 뭘 먹고 그렇게 씩씩했던 걸까, 지금도 궁금하다.
계동으로 다시 돌아간 그날 밤, J 작가를 만나러 헌법재판소 앞의 그 커피숍으로 갔다. 커피를 마시면서 내가 쓴 글들을 읽었다. 아무래도 너무 잘 쓴 것 같아 마음이 급했다. “J 작가님 만나러 왔는데, 오늘 오실까요?” 커피숍 주인에게 물었다. “요즘 몸이 안 좋다고 하셨어. 좀 기다려봐. 안 오시면 놓고 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