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정보센터에서 소개해준 일자리는 파트타임이 대부분이었다. 그중 제법 괜찮겠다고 생각됐던 곳이 세무서 매점 직원이었다. 틈틈이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판단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하루 종일 끊이지 않는 커피 배달을 하느라 앉아 있을 시간도 없었다. 아무리 내가 커피 애호가라고 해도 그 이유만으로 변칙 영업 행위를 참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매점을 운영하는 매니저 언니에게 따졌다. “저기요 매니저님, 처음부터 커피 배달을 하는 사람을 찾는다고 하셨어야죠. 이건 내용이 다르잖아요. 저는 차 배달하는 일인 줄 몰랐어요. 구직센터에서도 그런 말은 해주지 않았다구요.”
손톱 손질을 하던 매니저가 나를 째려보며 말했다. “너 또 시작이니? 너 진짜 웃긴다. 너 아니어도 이 일 할 사람 많거든. 사람은 또 구하면 되니까 하기 싫으면 빨리 말해. 청년들 일자리 알선하는 취업센터에다가 차 배달하는 사람 구한다고 하면 접수를 받아주니? 그리고 여기가 다방이니? 다방이면 왜 취업센터에서 사람을 구해.”
매점 주방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밖으로 나왔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그리고 너 영인이 어른한테 그렇게 또박또박 말대꾸야?” 아주머니가 입술을 물며 날 째려봤다. “아이고 언니, 쟤는 말을 잘해서 말로는 서 있는 기차도 움직일 애라니까. 여기 왔던 애들 중에 말은 제일 잘해.”
나는 매니저 언니라는 사람이 너무 얄미웠다. “다방은 아니지만 다방에서 하는 일과 결국 내용이 똑같잖아요. 일종의 변칙 영업이라구요. 그러니까 다방에서 주는 만큼 돈을 많이 주셔야죠.” 매니저 언니는 혀를 찼다. “그럼 너 다방에 가. 그리고 정말 미안한 얘긴데 다방 같은 데서는 너 같은 얼굴 받아주지도 않아.” 공식적으로 내 얼굴에 관한 언급이 또 등장한 순간이었다. 나는 정말 화가 나서 그 자리를 피해 밖으로 나가버렸다.
세무서 건물 안 곳곳에 설치된 의견함에 매점 직원, 특히 매니저가 매우 불친절하다는 글을 써 몰래몰래 며칠에 걸쳐 여러 차례 집어넣었다. 그러나 매니저는 잘리지 않았고 내가 그만둘 때까지도 계속해서 그 자리에 있었다.
세무서 직원들이 찾아오는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계속해서 매점으로 전화를 해댔다. 날씨가 차가운 날에는 따뜻한 꿀차를, 아침 시간에는 커피를, 오후 시간에는 인삼차를 시켰다. 나는 보온병에 더운물을 담고 물만 붓기 좋게 내용물을 미리 넣어둔 잔을 여러 개 올린 쟁반을 손바닥에 받쳐 들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세무서 계단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르락내리락했다. 어쩌다 배달 전화가 오지 않아 책을 들고 앉아 있어도 금세 졸음이 쏟아져 책은 읽지도 못했다. 내 생활은 점점 글을 쓰는 일과는 멀어져만 갔고 안 그래도 굵은 허벅지와 하체는 점점 더 튼튼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녁이면 B와 함께 있을 수 있어서 좋았다. 김 작가에게는 혼자 사는 친구가 있어 같이 살겠다고 거짓말을 해둔 상태였다. 김 작가 성격상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고 해도 사실대로 밝히라고 들이댈 사람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무관심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김 작가는 늘 그랬다. 내가 어떤 강 하나를 건널 때에는 늘 손을 놓고 뒤로 물러나 있었다. 어차피 강은 흐를 수밖에 없다는 듯이.
B와 만났던 날, 커피숍 창문 너머로 공단의 회색 연기가 훨훨 타올랐다. B의 정수리 끝에 회색 연기가 걸려 타오르는 모습이 잊혀지지 않았다. B와 나는 그 자리에서 친구가 되기로 하고 헤어졌지만 두 주 정도 지난 후에 곧 다시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