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작가는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김 작가를 책상 아래서 끌어내 방 안으로 데려갔다. 그녀는 정말 슬프게 울었다.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눈물이 크지 않은 얼굴을 다 가렸다. 순간순간, 김영철의 체취 같은 것이 좁은 글짓기 교실을 떠돌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나는 몹시 화가 났지만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여봐, 보리차나 좀 마시고 진정해. 애를 봐서라도 참아야지.” 그때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고 김 작가는 자기 친엄마 목소리라도 들은 듯 좁은 방 안을 뱅뱅 돌며 더 큰 소리로 울어댔다.
너무나 지독한 침묵이 글짓기 교실을 맴돌았다.
뭔가 김 작가를 위해 해주고 싶었던 나는 그녀의 타자기를 들고 을지로 3가에 있다는 마라톤 타자기 서비스센터에 찾아갔다. 활처럼 휘어진 자판 몇 줄을 떼어내고 새로 해 넣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서비스센터 수리공이 흰 종이를 한 장 끼운 뒤 잘 되는지 시험을 해보라고 했다. 김 작가. 나는 그녀의 이름을 찍었다. 탁탁, 타다닥, 타자기 소리를 듣자 모든 게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옛날에 내가 보릿고개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글짓기 교실에 찾아온 보릿고개는 정말 참혹했다. “우린 돈이 없단다.” 김 작가가 돈이 없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쌀조차 살 돈이 없다는 건 정말이지 믿을 수 없었다.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했지만 김 작가를 긁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아니어도 동네 아줌마들이 차례차례 글짓기 교실로 찾아와 김영철에 대한 얘기를 하고 가곤 했다.
아줌마들의 말에 의하면 그는 교사도 아니었고 문학도도 아니었고 그냥 동네 건달이었다. 좀 다른 게 있다면 얼굴이 건달처럼 생기지 않았다는 것뿐, 그냥 오래 전부터 계동 일대를 떠도는 건달이라고 했다. 김 작가는 여러 아줌마들의 얘기를 듣긴 했지만 절대로 자기가 먼저 입을 열어 그에 관해 말을 하지는 않았다. 김 작가는 또 그런 냉정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다.
김 작가는 한바탕 푸닥거리 뒤에 평온을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 다시 허접한 동인들과도 만나고 술도 마시고 책도 읽었다. 문제는 나였다. 나 스스로 어떤 정리가 필요했다. 정리를 하지 않으면 다가오는 새봄을 맞이할 수 없을 것 같은 참담한 심정이었다고 할까. 그래서 나는 생애 통산 두번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의 배경은 어느 공장이었다. 시몬느 베이유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았던 게 틀림이 없다. 어느 여름날, 공장에서 일하는 여자들이 자기가 공장에서 일하는 이유를 열심히 얘기하는 장면에서부터 소설은 시작됐다. 시몬느 베이유의 문장을 베껴 쓰고 또 베껴 썼다.
사실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늘 공장에 집착했다. 일본 문학도, 일본어도 잘 모르면서 한때 사다 이네코라는 일본 사회주의 계열 작가의 작품을 필사한 적도 있었다.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고 그 소설 제목이 〈캬라멜 공장부터〉였기 때문이었다. 이건 어쩌면 이상한 기질이다. 스스로를 그런 곳에 위치해 놓고 싶어 하는 기질, 그렇다고 내 삶이 그런 것도 아니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