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의 서쪽에 있다고 해서 ‘원서동’이라고 불리는 곳. 내가 김 작가와 함께 살았던 때까지만 해도 이 길에는 새로 지은 반듯한 연립주택이 많았다. 왠지 오른쪽 돌담 안에 있는 창덕궁 때문에 특혜를 받은 동네라는 느낌이 강했던 곳.
지금이나 그때나 단단해 보이는 오른쪽 돌담 안에 자리한 창덕궁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언제나 완강하게 버티고 있다는 느낌. 나무들의 기가 너무 강해 궁 안을 걷기가 무서웠다는 느낌, 정작 계동에 살 때는 못 가보고 몇 년 전에 들어가 몇 시간 둘러보고 난 창덕궁의 인상은 그랬다.
지도를 펼쳐 들고 서 있는 내 옆으로 동네 할머니 한 분이 지나간다. “어느 나라 사람이유?” 그냥 지나가는 척하다가 편안한 우리말로 물어보는 할머니. 할머니의 한쪽 다리는 깁스를 한 상태다. “할머니 다리는 왜 그러셨어요?”
할머니는 허리춤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며 다가가는 내 얼굴을 재빨리 훑는다. 환한 햇빛이 유독 할머니가 있는 곳만 내리쬔다. “눈이 많이 와서 그렇지, 냅다 미끄러졌어, 저기 빨래터 올라가는 길도 여직 눈 천지잖아. 여긴 볼 거 없으니까 가회동이나 가. 거기가 하이라이트야.”
손사래를 치며 담배 연기를 밀어내는 할머니는 그때도 여기 살았을까. 문득 궁금해지며 아마도 그때도 살았을 거라고 짐작해본다. 하이라이트라는 말 때문에 뒤늦게 쿡쿡 웃는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그렇게 많이 오는 걸까. 그렇다고 이토록 자연스럽게 우리말로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다니. 정말 재미있는 할머니다. 누빈 바지를 입은 할머니에게 다가가 또 말을 시킨다. “하루에 얼마나 피우세요 할머니?”
할머니가 차갑게 얼굴을 돌리며 대답한다. “밥은 안 먹어도 이건 태워야 살아 난.” 할머니의 손에 들린 담배 끝이 점점 짧아지는 걸 멍하니 쳐다보고 서 있다. “가회동으로 가라니까.” 나는 엉거주춤 인사를 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지도상으로 보면 지금 나는 시인 박인환의 생가라고 표시된 곳 주변에 서 있는 것 같다. 창덕궁 정문을 지나 왼쪽으로 이어지는 북촌길, 그리고 오른쪽의 창덕궁길이라고 표시된 원서동 한 모퉁이에 박인환의 어린 시절 집터가 표시되어 있다. 여기서부터 직선 도로로 중심으로 왼쪽에 펼쳐진 집들이 모두 원서동에 속한다.
핏기 없는 갸름한 얼굴에 눈을 약간 치뜨고 허공을 쳐다보고 있던 박인환이라는 시인의 흑백 사진이 기억난다. 그리고 김 작가와 허접한 인간들이 술만 마시면 늘 읊어대던 구절도.
“이제 우리는 작별해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그리고 특히 다음 대목에서 허접한 인간들의 얼굴에 비장함이 깃들고 목소리가 커졌다. “인생이 죽고 문학이 죽고…”
관점이 달랐다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시대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바람에 술병이 쓰러지든, 숙녀가 목마를 타고 떠나든 말든 나는 김 작가와 그 허접한 인간들이 좋아했던 그 구절보다 그 시에서 정확히 두 번 이름이 나오는 버지니아 울프를 기억했다.
그러나 또 생각해보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고 외치던 김 작가의 속내가 그 시 속에 담겨 있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