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백삼장(白三張)이 백사장(百四張)에게
1466년 3월 20일
승려 백팔장(百八張)의 공개 서찰로 인해 의문을 품은 장(張)들이 많다. 소용 박 씨 사건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이 백팔장 모임으로 튀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지시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밀약서의 비밀을 엄중히 지키라는 당부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백칠장(百七張)도 같은 의견을 전해왔는데, 이번 서찰이 도리어 비밀을 폭로하도록 유도하고 말 것이다. 평소 백팔장의 조심성을 감안해볼 때 이런 공개서찰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모임의 법도나 규율이 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거나, 최소한 백장부터 백팔장까지 의사결정권을 가진 장(張)들이 한번 모여야 하지 않겠나.
우리 108명이 빠짐없이 모두 모인 적이 언제였던가. 군왕께서 가뭄을 핑계로 백팔장을 모두 궐 안으로 불러들이셨던 기축(己丑)년의 기우제1가 마지막이다. 물론 비가 오래도록 오지 않으니 기우(祈雨)제를 마련하셨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핑계였고 사람들에 대한 눈속임이었다. 수양대군은 우리 백팔장 모임의 도움으로 거뜬히 왕좌에 오르신 후, 눈치를 보면서 기다리시다가 가뭄이 연일 계속되자 이를 핑계 삼아 공식적인 명목으로 우리를 불러들이신 것이다. 그전까지는, 우리도 왕을, 왕도 우리를 보지 못했다. 덕중이 양쪽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일을 전달하고 진행했다. 기우제는 왕과 백팔장 모임이 처음으로 정식 대면하는 뜻 깊은 자리였지.
궁궐의 그것도 가장 위상이 높은 근정전에서 108명의 승려가 모여 비가 오기를 기원하다니! 그때의 감격을 어찌 잊을까. 그 화려한 자리에 당당하게 서서 엄숙하게 불경을 외우고 있었으니! 다시는 산속으로 내쫒기거나 개처럼 끌려 다니던 처참했던 과거는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과 조만간에 불교가 국교의 자리를 되찾을 희망에 부풀어 질금질금 눈물이 나왔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비가 오기를 간구했지. 비! 참, 하늘이 도왔지. 다음날 조선 팔도에 거짓말처럼 비가 내렸다. 산으로 돌아온 우리는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군왕의 백팔장 모임에 대한 믿음은 극에 달할 수밖에 없었지.
불행하게도 그해 9월 의경세자가 병이 나서, 대사 네 명이 내전까지 들어가 기도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때 네 명 속에 나와 자네도 들어 있었다. 세자가 죽는 참변을 겪으신 이후에도, 왕께서는 백팔장 전부는 아니지만 백에서 백팔장까지 의견 결정권을 가진 아홉 명을 자주 불러들이셨다. 그러나 소용 박 씨 사건이 터진 지난 해 6월부터 해가 바뀐 지금까지 왕께서 모임 백팔장에 띄운 전갈은 하나도 없으며, 궐 안으로 불러들인 자도 없다. 어떻게 된 것일까. 백사장(百四張)도 들었겠지만, 최근 왕은 공신 양정을, ‘죄를 지어도 영원히 용서한다’던 언약을 저버리시고, 무참하게 처형하고 말았다. 간담이 서늘하다. 주변이 혼동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 와중에 덕중이 찾아왔다. 나를 찾아온 이유는 뻔하다. 뭔가 눈치를 챈 것이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덕중을 새로운 왕을 만들기 위한 중간자로 사용해왔다. 수양대군의 입장에서 보면 어려운 상황에 빠진 중놈 하나 구해줬더니, ‘왕이 되십시오’ 라는 신탁을 들고 온 셈이다. 덕중은 은혜를 입었으니 수양대군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수도 있는 충성심을 지니게 되었다. 백팔장은 그들의 이런 관계를 잘 활용했다. 덕중이 수양대군과 차분히 친분을 쌓아가면서 우리의 뜻을 차질 없이 전하도록 한 것이다. 덕중은 수양대군과 백팔장 사이의 고리로 양쪽의 뜻을 전달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덕중! 수양대군의 덕을 받고 불교를 융성시키는데 큰일을 했다 하여 백팔장이 내린 법명인데, 묘하게 수양대군 사저의 여종, 즉 소용 박 씨의 이름과 같다. 이런 법명을 내린 것이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 두 덕중은 수양대군의 잠저에서 인연으로 만나도록 계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아느냐 하면, 야생초 구하는 일을 내가 맡았다. 승려 덕중이 야생초들을 수양대군의 잠저로 가져다주게 될 것인데, 그 야생초를 좀 구해달라고 백팔장이 내게 지시했었다. 어디에 쓸 것이냐고 했더니, 당시 수양대군 사저에 큰 과수원이 있는데 그곳을 관리하는 여종 덕중의 환심을 사기 위해 건네주게 될 것이라고 했다. 야생초는 평범한 것들이었다.
두 덕중이 새로운 왕을 세우는데 큰일을 한 것임에 틀림없다. 보잘 것 없는 야생초를 구하는 내 역할이 어떤 중요한 일이었는지 모르는 것처럼, 두 덕중도 권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얼마나 자신들이 큰일을 했는지 잘 모르고 있을 것이다. 백팔장 모임의 비밀이 여태 유지되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각자 맡은 역할이 미미하거나 너무나 보잘 것 없어서 도무지 새 왕을 세우는데 자신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교묘하게 일을 진행한 승려 백팔장이 이렇게 터무니없이 비밀이 새어나가도록 공개 서찰을 썼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구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짝패까지 두지 않았던가. 두 사람이 하나의 비밀을 공유하고, 그 비밀이 새어나가면 상대방의 목숨도 위험해지니 함부로 발설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와 자네가 짝패인 것처럼, 두 덕중도 각자 가지고 있는 조각이 서로 이어져야 하나의 비밀이 풀어지게 되어 있는 짝패였을 것이다. 이미 한 사람이 죽어버렸으니 일이 어떻게 풀어질지 알 수 없다. 소용 박 씨가 죽어가면서 백팔 글자라고 밝힌 것은 충격적이지만, 그가 알고 있는 백팔 글자의 비밀은 거울의 앞면일 뿐, 뒷면이 없으니 그림을 볼 수 없다.
백사장(百四張), 만에 하나 말이지. 그럴 리 없겠지만, 승려 백팔장이 밀약서의 비밀을 폭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공개 서찰에 그런 내용을 적은 것이 아닐까. 백팔장 모임이 현왕을 세웠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소문을 내는 것이지.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미 드러났거나 조만간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을 앞서 폭로하는 것도 상수이지 않은가. 불교의 위세가 이렇게 강하니 이제 백팔장의 정체가 드러난다 한들 달라질 것도 없으니, 내놓고 그 위세를 과시할 수도 있는 일이지. 다른 이유로는 어쩌면 진짜 숨겨야할 것이 있을 때, 이보다 가벼운 비밀을 일부러 폭로해서 중요한 비밀을 가리는 일이지. 만일 후자라면, 그런 수를 써야할 만큼 상황이 위급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백장부터 백팔장 아홉 명 중 다섯 명 이상이 합의되어야 백팔장 모임을 가질 수 있으니, 백사장(百四張), 자네의 뜻을 알려주기 바란다.
백삼장 씀
1 조선왕조실록 세조 3년 5월 27일에 승려 108인을 흥천사에 모아 기우(祈雨)제를 가졌고, 5월 28일에 비가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