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영의정 신숙주가 하동 부원군 정인지에게
1466년 3월 13일
대감. 몽유도원도는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화공 안견의 요청에 따라, 치지정을 함께 살펴보았지만 헛수고였습니다. 앞으로도 몽유도원도를 찾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안평대군의 가옥과 별장이 몰수될 때, 글과 그림도 대부분 소각되지 않았습니까. 입에 풀칠하기 바쁜 백성들이 그림에 눈독을 들였을 리 없고, 양반 중에 누가 목숨을 걸고 그림을 빼돌렸겠습니까. 더 이상은 찾아볼 방도가 없어 주상전하께 보고 올리기로 안견과 합의하였습니다. 대감께서도 그렇게 아시고 한시름 놓으시기 바랍니다.
부원군 대감께서는 세종 임금 시절에는 꼿꼿한 학사였으나, 문종과 어린 왕을 거쳐 현왕에 이르면서 비바람과 번개를 맞아 휘고 구부러진 노송(老松)이 되어버렸노라고 서찰에 쓰셨습니다. 소인도 집현전의 꼿꼿한 선비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어쩌다가 변절자로 취급받아 ‘숙주나물'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대감께서는 주상전하께서 몽유도원도를 찾으시기 전에 죽을 수 있는 행운을 바라셨는데, 소인은 죽어도 변절자라는 소리를 들을지니 죽으나 사나 피가 흐르는 심정입니다. 어린 왕의 편에 서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대감 말씀대로, 우리가 현왕을 세웠다 해도 숨겨진 진실을 보고 싶은 생각이 어찌 없겠습니까.
부원군 대감, 대감께서 알고 싶으신 진실은 무엇입니까.
진실에 도움이 될지 모르나, 최근 한 소문에 따르면 불교서책인 『월인석보』를 읽도록 유도하기 위해, 훈민정음 언해본 원본을 일부러 없앴다는 것입니다. 불교계가 주상전하를 조종한 배후라는 이야기도 돌고 있습니다. 과거 세종 임금께서 소헌왕후를 잃고 한순간에 불교에 귀의하셨던 것처럼, 현왕이 의경세자를 잃고 마음의 중심을 잃었을 때, 슬그머니 『월인석보』 안에 훈민정음 언해를 삽입하도록 유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유생들이나 홍문관 학사들이, 울며 고추 먹기로, 훈민정음을 보기 위해 불교 서책을 가까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최근 더 괴상한 소문은, 궐 안팎으로 돌아다니던 소용 박 씨의 서찰이 가짜로 판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필체를 조사해본 결과, 소용 박 씨의 것과는 무관하고 누군가가 수십 장 베껴서 뿌린 것이라 합니다. 한지를 수십 장 겹쳐놓고 맨 윗장에 붓으로 글을 쓰면 아래 여러 장에 똑같이 글씨가 나타나는 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여러 개의 필사본이 나돌지만 필체가 같은 이유라 합니다. 이런 고수의 글쓰기가 가능한 사람은 몇 되지 않으니 범인이 곧 잡힐 것이라는 소문도 있고, 이미 잡혔다는 소문도 있지만 진실을 알 수는 없습니다.
부원군 대감, 소용 박 씨가 자신의 처지를 “『월인석보』안에 묶인 훈민정음 언해 같다”고 적은 부분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가짜 연서의 의도였던 모양입니다. 유생들이 수업을 거부하는 권당을 계속하면서, 『월인석보』안에 훈민정음을 넣어놓고 과거를 치르게 하는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소용 박 씨의 연서를 이용했다고들 합니다. 물론 다 소문일 뿐입니다. 단지 소인의 생각을 말씀드리면, 훈민정음을 둘러싼 불교와 유교의 싸움이 코앞에 와 있다는 사실이지요. 대감, 이 나라 조선의 정체성은 유교인가요 불교인가요?
그런데 대감, 이런 소란한 와중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일을 하는 자도 있습니다. 한때 집현전 학사였던 홍문관 양성지가 훈민정음 원본과 관련하여 주상전하께 상서를 올렸다고 합니다. 그가 주장전하께 훈민정음 언해 원본이 거의 사라지고 없으니, 앞으로 서책 관리에 필요한 원칙을 세워야한다고 조목조목 올렸다고 합니다. 그 내용을 대략 옮겨 놓은 것이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주상전하,
이 미천한 양성지, 주상전하께 긴요하게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최근 훈민정음 언해본 원본이 없어져 모두들 당혹해한다고 합니다. 한두 권도 아니고 통째로 거의 없어져버린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최근 햇살에 서책들을 내놓는 포쇠1가 있었는데, 그때 그 책들을 들고나는 과정에서 다른 장소에 놓아두었거나 다른 곳에 섞여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나오겠지만, 훈민정음 언해본뿐만 아니라 다른 책들의 분실을 방지하기 위해 대책을 세워야 될 것으로 사료됩니다.
서책이 없으면 어떻게 나라를 통치할 수 있겠습니까. 화재나 수재 등으로 서책이 없어지는 상황은 물론, 인간에 의해 없어지는 서책에도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같은 서책을 여러 부 만들어 장서 기능을 가진 여러 기관에 보관하는 것입니다. 가령, 중국에서 들어온 서적은 혹시 흩어져 없어지더라도 오히려 다시 구할 수 있지만, 조선에서 만들어진 서책은 진실로 한번 잃으면 이를 얻을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청하건대 우리나라에서 편찬한 서적의 현황을 모두 조사하여 부족한 건수는 인쇄하거나 베껴 쓰거나 구입하여 홍문관과 춘추관 및 지방의 삼사고에 각기 2권을 보관토록 해주시기를 주청드리옵니다. 긴요하지 않은 서책들은 모두 찾아내어 예문관, 성균관, 전교서에 나누어 보관토록 하며, 서로 혼잡하여 헤아려보기 어려운 폐단을 고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소인의 주청은 하늘 아래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세종 임금 때부터 여러 부의 서책을 마련하여 여러 기관에 보관하도록 장례화 되어 있었습니다. 단지 그것이 잘 실행되지 않았습니다. 학사의 본분을 하다기 위해 이렇게 감히 상서를 올리오니, 앞으로는 이 나라 조선에서 서책이 없어 글을 읽지 못한다는 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도록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대감, 여태 말씀 올리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소인은 작년 여름에 주상전하와의 독대에서 영의정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소인의 나이에 비해 영의정 자리는 과분합니다. 주상전하께서는 역정을 내시며 윤허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마침 몽유도원도를 찾으시던 때라, 계속 고집을 피웠다가는 이상한 의심을 살 수도 있겠다 싶어 더 이상 입에 담지 못했습니다. 화공 안견이 보고를 드리고 나면, 홀가분하게 영의정 자리에서 물러나겠습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영의정 자리를 내놓으면서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대감, 죽어나간 사람의 숫자를 세는 백성들의 놀이를 알고 계시겠지요. 그 첫 번째가 진정 김종서가 맞는지요? 소인이 알고 싶은 진실은 바로 이것입니다.
강녕하시기 바랍니다.
신숙주 배상
1 곰팡이와 벌레를 방지하기위해 창고에서 서책들을 꺼내어 햇빛에 말리는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