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상차 강원종이 환관 방비리에게
1466년 3월 8일
방비리, 사람의 천성이 변하지는 않는 모양이여. 옛날처럼 방방 뛰던 방망이 기질이 여전하니 말이여. 자네가 곁에 있으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불안한 이유가 그 때문일거여. 내가 천 상선에게 건넨 『월인석보』를, 천 상선에게 건네면서 보시고 돌려달라고 했는데, 끼끼끼, 자네가 그것을 들고 떡하니 나타나더란 말이지. 궐 안에 자네만 나타나면 뚜렷했던 적과 친구의 관계가 엉클어지니, 머리가 복잡하이. 천 상선이 김 상선에게 건네고 김 상선이 자네에게 건네고 자네는 다시 나에게… 이것이 도대체 뭐하는 짓거리인지 모르것어. 어쩐지 흘러가는 뽄새가 요상혀. 이 나쁜 머리로는 앞뒤가 잘 꿰맞춰지지 않혀.
음, 1권 끝에 ‘총일백팔장’이라는 구절이 있다는 거, 물론 모르고 있었어. 당시 정음청에 있었지만 나야 학사도 아니고, 새로 만드는 서책을 들여다볼 입장이 아니었구먼. 정음청 담당 환관이었 뿐이니, 그곳에 누가 드나드는지, 자료가 없어지지는 않는지 살피고 감독하는 수준이었어. 하지만 방비리, 자네가 1권 끝의 ‘총일백팔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순간, 가슴이 철렁 했어. 그 의미를 알아서는 아니고, 뭐, 그냥 몸이 그렇게 느끼더라고. 소용 박 씨의 연서 심부름 한 번 했다고 환관 두 놈이 황천행을 당하는 판에, 『월인석보』 1권 끝의 ‘총일백팔장’이 소용 박 씨와 무관하리라는 법도 없고, 내가 말려들지 말라는 법도 없응게. 그렇게 치면 나뿐만 아니라 자네도 그렇고, 궐내 모두가 그렇지.
방비리, 세종 임금 당시부터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묶는 작업을 시작했지만, 세종 임금과 문종 임금이 승하하시면서 작업도 차일피일하게 되고, 급기야 유학자들의 저항으로 정음청이 폐지되면서 작업이 한동안 완전히 중단되었어. 그러다가 현왕이 즉위하고 난 후 의경세자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마음을 다치고 놀란 임금께서 다시 합본 작업을 시작해서 나온 것이 『월인석보』인 것으로 알어. 음, 자네 질문에 답하자면, 내가 정음청에서 감독일을 맡고 있는 시기에 『월인석보』를 묶는 작업이 시작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정음청이 없어지면서 그 작업은 중단되었고 나도 그 이상은 몰러. 현왕이 다시 합본 작업을 시작할 때 나는 이미 전 상선 밑에서 일하고 있었으니, 1권 끝의 ‘총일백팔장’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으이.
음,『월인석보』1권 끝에 ‘총일백팔장’이라는 구절이 들어있는 것, 생각해보니 음, 수상하긴 수상혀. 뭔고 하니『월인석보』는 당시 수양대군이 저술한 ‘석보상절’과 그것을 읽고 난 세종이 감동하여 지었다는 ‘월인천강지곡’을 합본하여 만든 책이잖여. 이러한 연유로. 『월인석보』는 운문으로 된 ‘월인천강지곡’을 순서에 따라 앞에 놓고, 뒤이어 그 내용과 일치하는 산문으로 된 ‘석보상절’을 제시하는 순서로 되어 있어. 그러하니 이 서책은 단락마다 내용상으로 연관이 있어서 아무데서나 자를 수 없게 되어 있지. 방비리, 자네는 1권만 보았겠지만, 2권과 관련해서 보면 아주 요상혀. 중간에서 잘라 1권 2권을 따로 만들 수 없도록 되어 있는 부분이 뚝 끊겨 있거든. 실제로 제1권을 제외하고는, 다른 모든 권들은 ‘월인천강지곡’으로 시작하여 ‘석보상절’의 내용이 다 전개된 후에야 권을 끝내고 있거든.
제1권만은, 무슨 까닭에서인지 유독 ‘석보상절’의 내용이 진행되고 있는 도중에 잘라 버리고 제1권을 막아버렸어. 108면이 되는 곳에서 말이지. 음, 요상혀, 내 머리로는 앞뒤가 잘 꿰맞춰지지 않혀. 싸던 똥덩어리 항문으로 끊어버리고 짚으로 뒤를 닦은 후, 남은 똥덩어리를 다른 곳에 가서 누는 형상이니, 뭐 당연히 께름직하지. 제2권의 첫머리를 보면 ‘월인천강지곡’의 내용은 보이지 않고, 내용상 1권에서 끝나지 못한 ‘석보상절’로 시작되고 있어. 서책을 다시 보내니 잘 살펴보아.
<『월인석보』2권 첫 부분, 1권에서 끝나지 못한 ‘석보상절’의 내용이 시작되고 있다.>
음, 급하면 똥덩어리도 끊고 달아날 수 있지. 방비리, 지난 번 서찰에 썼는데, 귀성군이 연서를 들고 입궐한 직후에 주상전하께서 월인석보를 찾으셨다는 것 기억나는가. 그리고 소용 박씨의 (가짜) 연서 속에 소용 박 씨가 자신의 신세를 『월인석보』안에 묶인 훈민정음 언해와 같다고 적은 내용이 궐내 돌아다녔잖어. 자네가 1권 끝에 ‘총일백팔장’이 어쩌구저쩌구 하길래, 아니 이 인간도 할 일없이 이런 데 정신을 쏟고 있나 했는데, 생각할수록 『월인석보』가 소용 박 씨와 무관하지 않은 것은 확실하이. 그래서 말인데…
음, 작년 봄 양잠 때 내가 자네를 보러 잠실에 들렀잖어. 그때, 그곳에서 한 잠녀가 뽕잎에 바늘구멍을 내고 있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더란 말이지. 무슨 수작인가 하여, 그 뽕잎을 따다 살펴보니, 이상한 글자를 새겨놓은 것이 분명했어. 지금 생각하면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그 뽕잎을 전 상선에게 갖다 바쳤단 말이지. 화내지 말어. 잠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 상선께 고자질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자네가 방방 뛰니 또 무슨 일이 일어나면 방어할 무언가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쯥.
경복궁에 오기 전에 잠실에서 있었던 일을 샅샅이 조사하고 다니고, 이전의 누에량과 비단 수확량에 대해 은근히 나를 떠보던 일 말이지. 그렇게 함부로 나대거나 잘난 척하지 말어. 자신이 맡은 소임이나 착실히 잘 하는 것이 좋을 것이여. 진정 친구로서 하는 말인데, 조신하게 있는 것이 목숨을 연장하는 길임을 깨달을 때도 되지 않았어? 그 뽕잎에 글자를 새긴 잠녀가 누구인지, 새겨진 글자가 무엇이었는지 알고 나면, 뭐, 그렇게 방방 뛰지 못할거여. 소용 박 씨의 백팔 글자와 관련이 있는 것 같으니, 목숨이 열개 아니면 가만히 있어. 쯥.
강원종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