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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이었다. 초인종이 울리자 성준은 인터폰의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낯선 남자들 둘이 서 있었다. 여기 오서진 씨 댁이지요? 성준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계십니까? 성준은 외출 중이라고 대답했다. 분명히 용건이 있는 듯 보였으므로 성준은 문을 열어주었다.
모니터로 보았을 때는 양복을 단정히 차려입은 공무원 차림의 두 남자로 보였지만 집 안에 들어선 순간 그들의 모습은 딴판이 되었다. 두 남자 모두 목자(目?)가 불량스러웠다. 한 남자는 몸집이 그들먹했고 형광빛이 은은히 깔린 누런 터틀넥을 입은 다른 한 남자는 깡말랐다. 몸집이 그들먹한 남자는 앙증맞은 검정 손가방을 들고 있었는데, 그 손가방이 작은 지갑처럼 보일 정도로 그의 손아귀는 크고 우람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탁자에 올려놓았다.
명함에는 ‘캐쉬앤조이’, 김두만 부장,이라고 쓰여 있었다. 성준은 그 캐쉬앤조이,라는 상호를 어디에서 본 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서 보았던가. 뭘 하는 곳이던가. 깡마른 남자는 명함 같은 것을 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는 입을 열 생각이란 전혀 없으니 알아서 하라는 낯으로 멀끔히 성준을 쳐다볼 따름이었다. 김두만 부장이 물었다.
“오서진 씨와는 어떻게 되십니까?”
난처한 질문이었다. 한마디로 명쾌하게 대답할 말을 성준은 찾을 수 없었다. 친구라고 해야 할까. 여자 친구라고 해야 할까. 김두만 부장은 내처 물었다.
“오서진 씨가 여기 사는 것 맞습니까?”
성준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바로 그 순간 ‘캐쉬앤조이’라는 상호를 어디서 보았는지가 생각났다. 전철 객차 내부의 광고판이었다. 캐쉬앤조이, 그렇다, 그것은 사금융 회사, 사채회사였다. 얼마 전부터 전철 벽면을 광고로 도배를 하고, 근래에는 텔레비전에까지 넌덜머리가 날 지경으로 무수히 광고를 해대는 사금융 회사들, 그런 회사들 가운데 하나였다.
불현듯 성준은 이들이 찾아온 목적을 짐작했다. 진이가 이런 곳에서 돈을 빌린 것이 분명했다··· 진이는 도대체 얼마나 깊은 함정에 빠진 것일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진저리가 났다. 그런 성준을 깡마른 몸집의 사내는 여전히 눈길 한 번 돌리지 않고 쳐다보고 있었다.
김 부장은 정중하게 차근차근 용건을 얘기했다. 오서진이 캐쉬앤조이에서 돈을 빌렸다, 얼마 전까지 이자는 그럭저럭 꼬박꼬박 들어왔다, 그런데 석 달 전부터 이자가 들어오지 않았다, 휴대전화로 전화를 해봤으나 오서진은 받지 않았다, 문자 메시지에 응답도 보내지 않았다···
“이 여자가 어째서 이자도 안 내고 돈도 안 갚는지 혹시 아십니까?”
김 부장이 물었다. 성준은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누군가가 커다란 망치로 그의 머리를 마구 두들겨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마다 그의 머리에서는 땡땡땡, 종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왕왕거렸다. 진이는 빚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 것일까? 그녀가 나리에게 돈을 빌릴 때마다 그토록 화급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비로소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이자에, 바로 이 김두만 부장 같은 자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전혀 모르셨군요, 이런 사실을.”
김 부장은 안 됐다는 낯을 지어 성준을 넘겨다보았다. 성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놀라셨죠?”
그동안 내내 깡마른 남자는 전혀 무표정한 낯이었다. 그런 낯으로 내내 성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 얼굴에는 적의도 분노도 없었다. 백지 같은 얼굴이었으나, 단순히 백지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 무표정한데도 불구하고 그 얼굴은, 그 무표정은 사나웠다. 아무래도 그의 불량하고 도발적인 눈빛 때문인 듯했다.
“오서진 씨가 돌아오면 내가 김 부장 말씀을 전해드리고 조만간에 그쪽에 연락을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