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누구의 상처가 더 큰가 ②
그 후 아버지는 나를 산고깃집에 데려가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계속 그곳에 드나들고 있다는 걸 외출에서 돌아온 그의 양복에 밴 고기 냄새로 알 수 있었다. 나는 궁금했다. 왜 아버지는 날 데려가지 않는 걸까? 아버지의 친구들은 여전히 동행하고 있을까? 그런 장소에서 혼자 해야만 할 일이란 대체 무엇일까? 사흘쯤은 그 이유가 미치도록 궁금했지만 그 순간을 넘기자 모든 것이 지나간 일들이 돼버렸다. 어른들의 일로 고민하는 것은 내 혈관 속으로 다른 혈액형의 피가 흘러들어온 것만큼이나 난처한 일이었다.
새삼 산고깃집 고기 맛을 떠올리게 된 건 두 달 후 일어난 어떤 사건 때문이었다. 어느 날 평소처럼 예쁘게 차려입고 시장을 보러 간 엄마가 삼십 분이 채 못돼 돌아왔다. 빈 시장바구니를 마당 한가운데로 던져버린 엄마의 눈은 새빨갰다. 이미 눈물을 쏟을 대로 쏟은 눈이었다. 엄마는 하늘에 박힌 박하사탕 같은 해와 건조해진 마당의 흙을 번갈아보며 계속 서성거렸다. 자꾸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숨을 몰아쉬던 엄마가 나를 봤다.
“할머니. 광주 고모 댁에서 아직 안 오셨지?”
“응. 그런 것 같아.”
엄마는 쏜살같이 부엌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닫힌 문 안쪽에서 그릇들을 깨부수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집 전체가 박살이 나기라도 할 듯 섬뜩한 소리여서 무서우면서도 마음이 몹시 상했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비록 엄마가 성질이 괄괄해 툭하면 심한 말들을 내뱉긴 해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 적은 거의 없었다. 누구라도 불러와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하고 있을 때 부엌 안이 조용해졌다.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오는 엄마의 얼굴은 도자기처럼 태연했다. 엄마는 창고에서 대빗자루를 꺼내와 그릇 파편들을 쓸어 담아 쓰레기 포대에 담았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포대를 집 뒤편에 두고 온 엄마는 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두 손을 허리에 척, 걸쳤다.
“수형이 너 당장 사무실 가서 아버지 모셔와!”
나는 충격으로 멍해진 몸을 겨우 일으켜 세웠다. 사무실로 가서 볼펜을 왼쪽 귀에 끼운 채 서류를 보고 있는 아버지에게 엄마의 말을 전했더니 그는 처음엔 귀찮아했다. 그러나 내 얼굴을 보자 무시할 수만은 없는 사태다 싶었는지 슬리퍼를 끌고 사택으로 왔다. 엄마는 마당에서부터 아버지를 다그쳤다.
“당신, 왜 산고기집에 자주 가요? 대체 그 집 여편네랑 어떤 관계예요?”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허, 이젠 시치미까지? 읍내에 소문이 파다한데? 오늘 나가보니 나만 모르고 있었대.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날 불쌍해하고 한심해하며…. 내가, 기가 막혀서.”
엄마는 아버지에게 등을 보이고 서서 한 손으로 가슴을 쳤다. 정말 엄마의 심장이 부서져버릴 것 같았다. 아버지도 반대쪽으로 돌아서서 하늘을 보며 혀를 찼다.
“나 참. 그따위 소문을 갖고. 내가 자주 드나드니까 말도 안 되는 소문이 난 거지.”
“자주 가긴 갔네. 그러니까, 내 말은 왜 자주 갔냐구요? 고기도 안 좋아하는 사람이?”
“이봐, 나중에, 아니 들어가서 얘기해. 애 앞에서 이게 무슨 짓이야?”
아버지가 엄마 팔을 붙들었지만 엄마는 계속 뿌리치며 버둥거렸다. 하는 수 없이 아버지는 엄마를 들쳐 매다시피 하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의 대화는 어김없이 밖으로 새어나왔다. 엄마는 아버지를 거의 문초하다시피 했고, 성깔만 있을 뿐 별로 뻔뻔스럽지 못한 아버지는 결정적인 무언가에 대해선 승복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거만한 말투로나마 나름대로 성의 있게 대답해주던 아버지가 화를 버럭 냈다.
“에이, 아니라면 아닌 거지, 왜 이렇게 사람을 몰아세워? 그리고, 설령 무슨 일이 있었다 해도. 에이, 그만둬!”
아버지는 자신의 다리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엄마를 팽개치고 나가버렸다. 혼자 남은 엄마는 두 손으로 방바닥을 치며 울었다. 격렬하고 비통한 울음이었다. 엄마의 온몸에 돋은 눈물방울들이 무책임하게 나가버린 아버지에게 따져 묻는 소리를, 나는 알아들었다.
‘기껏 좌천당해 후진 시골로 내려오게 만들더니 결국 이런 너절한 꼴까지 보게 만드는 거예요?’
엄마의 우울에 감염된 나는 훌쩍훌쩍 울었다. 엄마와 심장 한 쪽이 연결된 외아들로선 당연한 반응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미웠다. 엄마에겐 나 외에도 자랑거리가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사업으로 큰돈 만지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다 부러워하는 아버지의 직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 집안 남자들이 성깔 있고 실속은 없어도 바람기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무너진 것이다. 비록 아버지에겐 스치는 바람이었다 해도 그것이 엄마의 자존심에 입힌 상처는 깊은 듯했다. 그때 엄마가 울음을 그치더니 큼직한 두 손으로 눈물을 쓱 닦아냈다.
“내가, 왜 내가 울어야 해? … 맞아, 울어야 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잖아!”
엄마의 표정은 문제를 풀기 위해 궁리하는 사람의 그것으로 변했다. 잠시 후 엄마는 펌프가로 달려가 물을 받아 푸아 푸아 세수를 했다. 엄마는 안방 장롱 문 안쪽에 달린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옷 중 가장 비싼 옷인, 칼라가 둥글고 허리선을 멋지게 살려주는 인디언핑크 투피스로 갈아입었다. 번쩍거리는 구슬 백까지 옆구리에 낀 엄마는 태풍처럼 달려 대문 밖으로 나갔다. 나는 따라나섰다.
예상대로 엄마는 산고깃집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굽이 꽤 높은 구두를 신었는데도 얼마나 빠른지 쫓아가는 게 너무 힘들었다. 엄마의 등에 대고 소리를 질러볼 수도 없었다. 엄마가 산고깃집 유리문에 손을 척 얹었을 때야 비로소 소리가 나왔다.
“엄마아!”
그러나 이미 엄마는 산고깃집 주인 남자 못지않은 거친 동작으로 문을 열어젖히고 있었다.
“이 집 주인 어딨어? 나와! 당장!”
다음에 일어난 일들이야 굳이 말로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엄마가 취조라도 하듯 몇 마디 더 캐물었고, 여자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엄마의 교양 없음을 지적하다 머리끄덩이를 잡혔고, 탁자 위의 사기그릇들이 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났다. 나중엔 탁자들마저 기다렸다는 듯이 줄줄이 엎어졌다.
그날의 싸움은 엄마의 승리로 끝났다. 나는 이미 엄마의 야만적이도록 강한 생명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놀라지 않았지만 읍내 사람들은 놀란 듯했다. 두 여자의 육탄전에 관한 소문은 삽시간에 읍 전체에 퍼졌다. 한동안 읍내 사람들은 둘 이상만 모이면 고상한 한전 출장소장 사모님의 우스꽝스럽고 일방적인 승리에 대해 긴 수다를 떨어댔다.
심지어 사건의 후편에 관해 말해주는 바쁜 입들도 많았다. 산고깃집 여자가 내막을 알아버린 남편에게 두들겨 맞아 갈비뼈가 부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얘기도 있고, 평소보다 진하게 멍든 얼굴로 나와 묵묵히 가게를 꾸렸다는 얘기도 있고, 소문의 특성상 당사자들 중 하나인 남편만 모른 채 일이 지나간 것 같다는 얘기도 있었다. 평화를 사랑하는 데다 산고깃집 아줌마의 분위기를 싫어하지 않았던 나는 부디 세 번째 이야기가 사실이길 빌고 또 빌었다.
사실 피해자는 산고깃집 여자뿐만이 아니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함평군 한전 출장소장 사모님의 체면도 많이 깎였다. 함평읍의 그 누구도 엄마가 그토록 원색적으로, 단 한 방에 일을 해결해버릴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엄마가 뭘 잃은 건 아니었다. 아버지가 엄마보다 젊긴 하지만 더 예쁘진 않은 산고깃집 여자에게 드나든다는 사실이 알려진 순간부터 엄마의 체면은 구겨졌으니까. 이왕 그렇게 된 이상 아버지가 다시는 산고기집에 드나들지 못하게 하는 결말만은 확실히 만들어냈어야 했을 것이다.
어쨌든 아버지의 연애는 그렇게 허망하게 끝이 났다. 방금 나는 연애라고 말했다. 그렇다. 할머니와 누나들은 소문은 풍문일 뿐 아버지는 여전히 반듯한 아들이자 의젓한 가장이라고 확신했지만, 나는 그와 산고기집 아줌마가 서로 사랑했을 거라고 확신했다. 산고깃집 아줌마를 떠올려보면 확신은 더 강해졌다.
우선 그 여자는 엄마와 달랐다. 그 여자는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답게 말수가 적었고, 꿀벌처럼 바지런하면서도 나무같이 한곳에 서 있을 줄 알았다. 또 결정적으로 남자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뿐인가? 연약하게 울며 온몸으로 호소할 줄도 안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좋아하는 데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아버지는, 내가 바나나와 화과자를, 혹은 닭싸움과 말뚝박기를 동시에, 많이 좋아하듯 엄마와 산고깃집 아줌마를 사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