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모든 운동은 근본적으로 인간 정신의 두 가지 발명에 그 근거를 둔다. 공간적 운동은 축을 진동하며 구르는 바퀴를 발명함으로써 가능했고, 정신의 운동은 글자의 발명 덕에 그러했다. 언젠가 어디선가 처음으로 나무를 구부려 바퀴의 틀을 만든 이가 바로 전 인류에게 국가와 민족 간의 거리를 극복하는 법을 가르쳐 준 것이다. 자동차가 발명된 덕에 각종 운송품이 돌아다니고 여행으로 견문을 쌓는 것이 가능해졌고, 특정 과일이나 광석, 광물, 제품 등을 한정된 풍토의 원산지에만 할당해 두려는 자연의 의지는 무용해졌다. 동양과 서양, 남과 북, 동과 서가 새로 고안된 탈 것에 서로 가까워졌다. 그리고 기차 밑에서 굴러가고 자동차를 나아가게 하고 프로펠러를 돌리는 모든 형태의 바퀴가 기술에 의해 발전을 거듭해 공간의 중력을 극복한 것처럼, 글자 또한 단지 묘사하는 역할에서 진즉에 더 나아가 한 장의 종이에서 책이 되었고, 지상에 사는 개별 영혼들의 경험과 체험의 비극적 유한함을 극복토록 했다. 책을 통해서라면 누구도 자신의 시야에 갇히지 않고 현재와 과거의 모든 사건, 전 인류의 사상과 감정에 모두 관여할 수 있게 된다. 오늘날 우리 정신세계의 모든 혹은 거의 모든 지성적 활동은 책에 기초하고 있으며, 물질의 상부에 있는 문화라고 불리는 그 무엇은 책 없이는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적이고 개인적인 삶에서 영혼을 확장하고 세계를 건설하는 이러한 책의 힘에 대해 우리는 거의 의식하지 못하며, 매우 드문 순간에만 자각할 뿐이다. 새롭고 놀라운 것의 존재에 매번 감사함을 느끼는 것과 다르게 책은 이미 우리 일상에서 당연한 것이 된 까닭이다.(11~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