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ERASMUS
종교전쟁에서 중립을 지키려는 고독한 투쟁
보름스의 제국 의회, 교회의 파문, 그리고 황제의 추방 명령으로 에라스무스는 루터의 종교개혁 시도가 실패했다고 믿는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느낌에 공감한다. 이제 남은 것은 국가와 교회에 대한 공개 반란 그리고 즉시 끔찍하게 제거될 것이 분명한 새로운 알비파, 발드파, 또는 후스파이다. 그러나 에라스무스는 그러한 전쟁에 의한 해결을 피하고 싶었다. 그의 꿈은 종교개혁식으로 교회에 복음의 교리를 심는 것이었다. 그는 그러한 목표에 기꺼이 힘을 빌려 주어야 했기에 공개적으로 이렇게 약속했다.
“루터가 가톨릭 교회 안에 머문다면, 나는 기꺼이 그의 편에 설 것이다.”
그러나 그 난폭한 사람은 단번에 로마로부터 영원히 멀어져 버렸다. 이제 그것은 지나간 일이다. 실망한 평화애호자는 탄식했다.
“루터의 비극은 끝났다. 아, 그 비극이 무대에 오르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복음 교리의 불꽃은 꺼졌고, 정신이 빛나는 별은 지고 말았다.
“복음의 빛나는 별은 떨어졌다(actum est de stellula lucis evangelicae)."
이제 권력의 앞잡이들과 무기가 그리스도의 일을 결정할 것이다. 그러나 그 자신은 앞으로 일어날 모든 갈등에 비켜서 있어야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엄청난 이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자신이 너무 약하다고 느낀다. 그는 이토록 엄청나고 책임이 따르는 결정을 앞에 두고, 자신은 남들이 뽐내는 것처럼 신이 자신을 선택했다는 확신과 자기 확신을 가질 수 없다고 겸손하게 고백한다.
“츠빙글리와 부처는 그런 정신을 소유할 수 있겠지만 에라스무스는 인간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신의 말을 들을 능력이 없다.”
이미 오래 전에,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신의 문제에 깊은 통찰력을 얻었던 오십 세의 이 사람은 자신이 이 싸움을 대변할 적임자는 아니라고 느낀다. 그는 단지 영원히 밝음이 존재하는 곳에서, 학문과 예술 속에서 조용히, 겸손하게 일하고 싶어할 뿐이다. 그래서 그는 신학, 국가 정책, 교회의 분열에서 빠져나와 자기 연구실로 들어간다. 싸움에서 빠져나와 책이라는 숭고한 침묵으로 도망간다. 여기에서 그는 여전히 세상에 유용한 존재일 수 있다. 자, 그러므로 나이 든 사내여, 이제 방으로 되돌아 와 세상을 향한 창문을 잠가 버려라! 싸움은 신의 부름을 가슴으로 느끼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예술과 학문의 순수한 영역에서 진실을 지키는 조용한 과제를 따르라!
“로마 가톨릭 성직자들의 부패한 도덕이 특수한 치료제를 요구한다 해도, 치료 행위를 우리 마음대로 한다는 것은 나 같은 사람들의 권한이 아니다. 나는 서로 반대 목표를 향해 치닫는 그런 불안을 새로 야기하기보다 차라리 이 문제 상황을 참고 지내겠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결코 반란자가 되거나 반란의 참가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에라스무스는 교회의 싸움에서 빠져나와 예술로, 학문으로, 자기 본연의 일로 되돌아갔다. 그는 파벌들의 욕지거리와 싸움에 구역질을 느낀다.
“나는 평온을 원한다(Consulo quieti meae)."
그는 평온을, 예술가의 신성한 평온을 더 원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편안하게 놔두지 않기로 공모했다. 중립이 범죄로 불리는 시대가 존재하며, 정치적으로 흥분된 순간에 세상은 명확한 찬성 아니면 명확한 반대, 루터 쪽이냐 아니면 교황 쪽이냐를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