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끈매끈한 인간의 유골 위에 세상이 세워진다. 아직은 레이크석세스의 항공기 공장에 임시로 자리 잡고 있는 UN 사무국이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정립할 참이다. 새로운 생각, 인간에 대한 새로운 전제, 새로운 윤리가 만들어질 것이다. 기독교도든 불교도든, 부유한 집안 출신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또 명성이나 성별, 지위, 국적, 피부색에 상관없이, 모두가 개인의 권리를 갖는다.
60세의 여성이 세계사에 발을 들여 심의를 주재한다. 그는 얼마 전 운전 중 부주의로 면허가 취소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정치 사건들과 남편인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 아래 어딘가에, 노화와 엄마로서의 삶, 사람들이 여성 지도자를 낯설어한다는 사실과 관련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 아래 어딘가에,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이 특별위원회와 함께하게 될 맹세가 놓여 있다. 누구에게나 동일한 맹세. 그 누군가가 유교 사상가 맹자의 이론이나 바울의 서신 중 「로마서」 12장의 “악에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라는 구절을 읽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1월 27일, 엘리너 루스벨트는 인권위원회의 첫 번째 회의를 소집한다. 회의장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 일종의 도취감이 감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어. 세상 사람들은 서로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다짐한다. 절대로, 다시는. 자신들이 짊어진 과업, 인권 창조라는 임무의 무게를 아직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는 인권위원회의 위원들 역시 같은 다짐을 한다.
절대로, 다시는. 이 맹세가 기도용 숄에 달린 술 장식처럼 반복된다. 마치 신이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