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직업과 소명을 명확하게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노인, 특히 남자들이 퇴직 이후 절망에 빠지는데, 이는 주요 수입원만이 아니라(그중 많은 이가 아르바이트나 최저임금을 받는 다른 직업을 찾는다), 정체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밥벌이를 위한 직업이 있었지만,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소명, 즉 사람이 죽을 때까지 추구할 수 있는 소명이 없었다.
나의 할아버지 제시 파머는 존디어 트랙터 회사에서 일하던 전동 공구 기사였다. 예순다섯 살에 퇴직을 강요받았을 때, 기계들이 쌓여 있던 일터와 정든 동료들을 떠나기가 괴로웠다고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소명은 트랙터 부품 만들기가 아니었다. 그분의 소명은 원재료를 유용하거나 아름다운 것으로 바꾸는 일이었고, 할아버지는 퇴사 이후에도 이 열정을 이어갔다.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나는 복숭아씨로 조각한 작은 꽃바구니와 작은 원숭이를 물려받았다. 복숭아씨는 특히나 작업하기 어려운 재료였다. 이것들은 작업 책상 옆 선반에 항상 놓여 있다. 글을 쓸 때면 늘 할아버지에게 받은 유품을 보며, 언젠가 글쓰기로 밥벌이를 할 수 없게 된다고 해도 언어를 도구 삼아 광기로부터 의미를 조각해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