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들어와.”
얼음처럼 조용한 목소리였다.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목사의 입은 살짝 벌어져 금방이라도 웃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자기 입술을 혓바닥으로 핥았다. 얼굴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가 나에게 셔츠를 벗으라고 해서 나는 시키는 대로 했다.
셔츠를 벗으려면 멜빵바지의 끈을 어깨에서 끌어내려야 했다. 이 때문에 나는 멜빵바지를 양손으로 잡고 있어야 했다. 목사가 책상 뒤에서 굵직한 막대기 하나를 집어들었다.
“너는 악의 씨를 받아서 태어났어. 그러니 애초에 너한테 회개 같은 게 통할 리 없다는 건 알고 있어. 그렇지만 주님의 은총으로 너의 사악함이 다른 기독교도들을 물들이지 못하도록 가르쳐줄 수는 있지. 회개하지는 못하겠지만…… 울게 만들 수는 있지!”
그는 그 굵다란 막대기로 내 등을 내리쳤다. 처음에는 몹시 아팠지만, 그래도 울지는 않았다. 할머니가 예전에 가르쳐주신 적이 있다. 내가 발톱을 뽑아야 했을 때…… 인디언이 고통을 참는 방법을…… 인디언들은 몸의 마음을 잠재우고, 대신 몸 바깥으로 빠져나간 영혼의 마음으로 고통을 느끼지 않고 고통을 바라본다.
몸의 고통을 느끼는 것은 육체의 마음뿐이고, 영혼의 마음은 영혼의 고통만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매를 맞으면서 몸의 마음을 잠재웠다.
짝짝 소리 내며 내 등을 후려치던 막대기는 결국 부러지고 말았다. 목사는 다른 막대기를 또 가져왔다. 그는 심하게 헐떡이고 있었다.
“악이란 본래 끈질긴 거지. 하지만 주님의 은총으로 정의가 이길 것이다!” 그는 말하는 동안에도 숨을 헐떡였다.
그가 다시 막대기를 휘둘렀다. 얼마 안 가 나는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좀 비틀거리긴 했지만 다시 일어설 순 있었다. 이전에 할아버지는 자기 두 발로 설 수 있는 한, 별일 없을 거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바닥이 약간 기울어져 보였지만 그것도 금방 괜찮아졌다. 목사는 거의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 나에게 셔츠를 다시 입으라고 했다. 나는 시키는 대로 했다.
셔츠가 등에서 흐르는 피를 좀 빨아들이긴 했지만 대부분의 피는 다리를 타고 흘러내려 그대로 신발 속으로 들어갔다. 속옷을 입지 않아서 피를 흡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신발 안이 피로 질척해졌다.
목사는 내 침대로 돌아가라고 하면서 앞으로 일주일 간 저녁식사는 없다고 했다. 어차피 나는 저녁을 먹고 있지 않는 터였으니 상관없었다. 또 그는 앞으로 일주일 동안 수업을 받을 수 없으며, 방 밖으로 나와서도 안 된다고 덧붙였다.
멜빵끈을 어깨에 걸치지 않는 게 한결 덜 아팠다. 그래서 나는 그날 저녁 창가에 서서 멜빵바지를 손으로 잡은 채 늑대별을 바라보았다.
─ 포리스트 카터,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조경숙 옮김, 아름드리미디어, 1996, 336~33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