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사람에게 말하라, 너는 자유다. 그와 세계를 갈라놓던 문을 열어주고, 우리는 그에게 다시 한 번 말한다, 가라, 너는 자유다. 그러나 그는 가지 않는다. 그는 길 한가운데서 꼼짝도 않고 그대로 있다. 그와 다른 사람들은 겁에 질려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그들은 정신병원이라고 정의된 곳에서 살았다. 사실, 그 합리적인 미로에서 사는 것과 도시라는 미쳐버린 미로로 나아가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더군다나 그들에게는 안내하는 손길이나 개줄도 없다. 도시의 미로에서는 기억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기억이란 어떤 장소의 이미지를 생각나게 해주는 것뿐이지, 우리가 그 장소에 이르는 길을 생각나게 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눈먼 사람들은 이미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완전히 불이 붙은 건물 앞에 서 있다. 얼굴에 불의 열기가 살아 있는 물결처럼 밀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은 그 물결을 어떤 면에서는 그들을 보호해 주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벽들이 한때 그랬던 것처럼, 감옥인 동시에 피난처였던 것처럼. 그들은 흩어지지 않고 함께 있다. 양떼처럼 서로 꼭 붙어 있다. 누구도 그곳에서 길 잃은 양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길 잃은 양을 찾아와줄 목자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불길은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달빛이 다시 비춘다. 눈먼 사람들은 불안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말한 대로 그들은 그 자리에 영원히 그대로 있을 수는 없다. 누군가 낮인지 밤인지 묻는다. 그런 어울리지 않는 호기심이 발동한 이유는 곧 분명해졌다. 혹시 모르잖소, 군인들이 먹을 걸 가져올지, 어쩌면 약간의 혼선이, 약간의 지연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잖소,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말이오. 하지만 군인들은 이제 여기 없어요.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소,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서 가버린 것일 수도 있으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예를 들어, 이제 감염의 위험이 사라졌을 수도 있잖소. 아니면 우리 병의 치료 방법이 발견되었거나. 그럼 좋겠지, 정말 좋고말고. 이제 어떻게 할까요. 나는 동이 틀 때까지 여기 있겠소. 동이 트는지는 어떻게 압니까. 해가 알려주겠지, 해의 온기가. 날이 흐리면 어쩌려고. 어차피 이제 불과 몇 시간 안 남았소, 곧 낮이 될 거요. 많은 사람들이 지쳐서 땅에 주저앉았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보다 힘이 더 없어서, 그냥 쓰러져 서로의 몸 위에 포개졌다. 어떤 사람들은 기절했다. 차가운 밤공기가 그들의 의식을 회복시켜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리를 뜰 때가 오면, 그들 가운데 몇 명은 불행히도 일어나지 못할 것이 확실하다. 그들은 지금까지 간신히 버텨왔다. 그들은 결승선을 삼 미터 남겨놓고 쓰러져 죽은 마라톤 선수와 같다. 결국 분명한 것은 모든 생명은 제 명을 다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여전히 군인들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땅에 앉아 있거나 누워 있다. 또는 군인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는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적십자라든가. 그런 단체가 먹을 것과 기본적인 위문품을 가져다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환멸이 약간 늦게 찾아올 것이다. 그것이 차이일 뿐이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우리의 실명에 대한 치료 방법이 발견되었다고 믿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그 사람이 그것 때문에 더 만족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정영목 옮김, 해냄, 2002, 305~30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