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방금, 우연히, 내 소설의 모든 페이지를 뒤섞어버렸다. 아무 생각 없이. 단지 내 존재 자체의 순수한 혼돈에 의해서. 이제 당신에게 아마도 나의 가장 큰 약점인 것을 밝혀야겠다. 스스로를 정리하지 못하는, 다시 말해, 나의 어마어마한 혼돈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는 무능력.
(…)
끔찍하고, 끔찍하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느라 날려버린 그 모든 시간들. 그것은 이야기,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 나서는, 내 인생의 또 다른 이야기다. 하지만 타이핑의 황홀경에 빠진 상태로, 이 모든 것을, 타이핑하고 있는 지금, 막 천재적인 생각이 떠올랐는데, 그건 바로, 내가 어떤 것도 절대로 결코 단 한 번도 잃어버린 적이 없을 가능성이다. 진실은 내가 단지 모든 것을 잘못 둔다는 것, 조금 다른 곳에 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 그래, 나는 모든 것을 다시 찾을 것이다, 모든 것을 다시 찾아내거나 아니면 모든 것을 그냥 발견하거나, 우연히 마주칠 것이다, 언젠가는…… 내 모든 과거…… 아니, 아니, 아니, 잃어버린 것은 아무것도 없고, 내 생각엔 그거야말로 이 소설의 중심 아이디어라 할 텐데, 만약 그런 게 필요하다면 말이다. 내가 모든 페이지들을 뒤섞어버렸다는 사실은 본질적으로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 모든 것은, 모든 삶은 엉망진창의 커다란 콜라주일 뿐이고 우리는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으며 그것은 여전히 똑같은, 전적으로 똑같은 그림을 보여주리라, 친구들이여.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의지의 역할을 부정하는 걸까? 우리의 신성한 본성을?
― 요나스 메카스, 『수동 타자기를 위한 레퀴엠』, 금정연 옮김, 시간의흐름2023, 87~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