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은 남성 예능이 아니라, 그냥 재미있는 예능이다.’ 이 문장은 주어만 바꿔서 대부분의 한국 남성 예능 프로그램들이 눈 가리고 아웅하는 데 사용하는 변명이다. 남성 중심 사회의 가장 고리타분한 책임 회피 방식이기도 하다. 그나마 〈무한도전〉은 이런 주장을 전면에 내세워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텔레비전 쇼가 연출할 수 있는 재미와 감동을 성실히 추구한 편에 속했다. 그만큼 옹호를 받더라도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었다.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남성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자 신화가 된 방송. 그런 방송을 여성을 소외시킨다는 이유로 비판하는 건 순진한 비난으로 취급되어도 별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재미있고 감동적인 도전의 순간에는 언제나 멤버들과 멤버의 ‘형제들’만이 존재했다. 유재석의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란 말이 너무 이질적으로 들렸고, 그만큼 슬펐다.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예능을 나도 함께 사랑하기 위해선 ‘〈무한도전〉은 남성 예능이 아니라, 그냥 재미있는 예능이다’라는 자기최면을 끝없이 걸어야 했다.
〈무한도전〉은 리얼리티 예능의 표준 모델이나 다름없었고, 연출자의 개입이 가능한 자막 예능을 선구한 쇼였다. 그렇게 제작진과 출연진 모두가 시청자들의 반응을 끌어내고 연출자, 출연자의 주관을 적극적으로 드러낸 쇼였다. 그런 쇼에서 정치적 다양성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묵살하고 출연자의 예능 감각과 재미만을 기준으로 삼아 달라는 태도로 일관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따른다 한들 어떤 효능이 있는 것인가.
─ 복길, 『아무튼, 예능』, 코난북스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