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내가 썩 좋아하지 않는 행동을 하면 친구의 얼굴을 후려쳐도 될까?”
내가 새로 산 카키색 반바지를 보고 친구가 비웃는 바람에 기분이 좀 나빠진 나는 친구의 얼굴을 후려칠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 덕 윤리학자라면 그처럼 사소한 이유로 남의 얼굴을 때리는 것은 아무 이유 없이 때리는 것과 똑같이 분노가 지나친 거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주디스 슈클라Judith Shklar, 1928~1992 덕분에 이 문제를 다른 관점으로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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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대표작이자 명작인 《일상의 악덕》에서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악덕 중 최악은 자존심, 시기, 분노 또는 고전적 ‘7대 죄악’ 같은 것이 아니라 잔인함이라고 강력히 주장하며 이를 가장 피해야 할 악덕으로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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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클라에 따르면 잔인함은 대체로 그것을 촉발한 행동과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특징을 보인다. 누군가가 사소한 범죄를 저질러〈레 미제라블〉에서 배가 고파 빵을 한 덩이 훔친 유명한 예처럼 교도소로 보내지는 상황은 그 사람에게 엄청나게 잔인한 일이다. 형벌의 잔인함이 저지른 범죄의 정도를 과하게 넘어 균형이 맞지 않는 상황이다. 가히 논쟁에 불을 지필만한 주장이지 않은가. 현대 형사사법제도는 극도로 사소하게 법을 위반하는 일가령 이미 많은 나라에서 합법인 마리화나 소지로 수많은 사람을 교도소에 집어넣는다. 이 잔인함의 문제는 범죄 행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람 간의 기본적이고도 일반적인 상호작용 역시 부당한 잔인함으로 가득하다. 믿어지지 않는다면 유튜브에 악의 없는 한마디, 예를 들면 ‘치즈는 맛있다’거나 ‘미시간이 좋아요’ 같은 말을 하는 동영상을 올린 뒤 거기 달린 댓글을 읽어보길 바란다‘이스트 랜싱으로 꺼져. 이 썩은 음식이나 처먹는 멍청한 저능아야’가 당신이 보게 될 댓글 중 하나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목표는 매일의 삶 속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므로 피해야 할 악덕 목록 1위에 잔인함을 두는 것은 좋은 생각이다. 문제는 여기에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 주변에 잔인함이 너무 만연해 잔인함을 인간의 악덕 중 최고로 여기면 정신 건강에 무척 해롭다. 슈클라 역시 “잔인함에 치를 떠는 사람은 일상생활에서 항상 분노에 차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뉴스를 슬쩍 보기만 해도 끝없는 잔인함의 연속이다. 인종차별, 성차별, 유권자 탄압, 사람들을 비참한 빈곤에 빠트리는 법률, 악독한 유튜브 댓글 등. 슈클라는 잔인함을 악덕 순위 1위로 두면 모든 사람이 염세주의자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우리가 이 부분에 집중하지 않는 것 같다. 다행히 잔인함의 재앙에서 탈출할 방법이 있다. 지식이다특히 우리 자신 이외의 문화적 관행에 지식이 필요하다. 훌륭한 계몽주의 철학자 몽테스키외의 명언을 빌리자면 “무지가 사람을 비정하게 만들 듯 ‘지식은 사람을 온순하게 만든다.’” 내 생각에는 아리스토텔레스도 좋아할 만한 생각이다. 다른 사람의 삶을 배우고 이해하려 할수록, 다시 말해 공감의 중용을 찾으려 할수록 그들을 잔인하게 대하기는 어려워진다.
― 마이클 슈어,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 김영사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