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비효율성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왜 만장일치제를 고수할까? 만장일치의 역사적 기원은 1367년 영국에서 시작됐다고 전해진다. 11대 1로 평의가 갈린 사건이 있었는데 1명의 소수 배심원이 “유죄평결에 동의하느니 차라리 감옥에서 죽겠다”고 버티자 법원이 11대 1로는 유죄평결을 내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20세기 후반 들어 영국이나 미국 오리건주, 루이지애나주가 다수결을 택하면서 이 원칙에 균열이 생겼지만, 2020년 미연방대법원은 “다수결은 소수인종 배심원의 권한을 악화하려는 인종차별정책에서 비롯된 것으로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재판은 의견차로 인한 분열과 공멸을 방지하고 효율적인 사회자원 배분을 목표로 하는 정치적 판단이나 정책결정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재판의 목표는 진실 추구다. 이 점이 배심재판에서 만장일치제를 취하는 가장 중요한 논거다. 진실에 도달하려면 편견을 해소하고, 차이를 이해한 바탕 위에서 결론을 도출해내는 진지한 토론이 필요하며, 그 과정에서 소수의 의견이라도 절대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다수결은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의사결정 방식이지만 특정 집단의 의사를 관철시킬 수 있는 폭력적 방법이기도 하다. 만장일치제는 다수의 횡포에 대항하는 소수에게 일종의 거부권을 주는 셈이다. 재판 한 번으로 사람의 생명과 재산이 결판나므로 합리적 의심을 넘는 강한 입증을 요구하는 형사재판에서, 단지 다수라는 이유만으로 소수의 의심을 비합리적인 것이라고 배척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단순한 수적 우위가 합리성까지 담보하진 않기 때문이다.
그럼 1명이 끝까지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릴 때는 어떻게 되는가? 미국 배심재판에서 의견이 나뉘어 도저히 합의가 안 되면 평결을 보류하고hung jury, 미결정심리mistrial를 선언한다. 이 경우 검찰이 재기소에 대한 재량을 갖는데, 재기소를 하면 새로운 배심원단을 구성한다.
그러나 한두 명의 배심원이 고집을 꺾지 않아 평결 불능에 이르는 경우는 실제로는 많지 않다고 한다.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처럼 최초의 소수의견이 나중에 다수의견으로 바뀌는 경우 역시 드물다고 한다. 즉, 실제로는 다수가 소수를 설득하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소수의견이 단지 논의의 질을 높이고 신중한 결정을 하게 하는 데만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결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즉, 민사배심재판이라면 배상금액에 반영되고, 형사배심재판이라면 1급 살인을 2급 살인으로 하거나 여러 범죄 중 일부를 조율하는 방식으로 관여한다. (285~287쪽)
― 박주영, 『법정의 얼굴들』, 모로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