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듣기가 별로 재미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지각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뜻하지 않게 한 줄기 빛을 던질 수 있다. 특히 언어의 지각이 그렇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잘못 들리는 소리 자체는 ‘엉망진창 뒤섞인 소리 덩어리’가 아니라, ‘또박또박 연결된 단어나 구절’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 듣는 것’이다.
잘못 듣기는 환청이 아니지만, 환청과 마찬가지로 통상적인 지각경로를 사용하므로 실제 소리처럼 들린다(단, 잘못 들은 내용을 의심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의 지각은 모두 뇌에 의해 구성되며, 우리의 뇌는 종종 빈약하고 애매한 감각 데이터를 사용하므로, 오류나 속임수의 가능성이 상존한다. 사실 지각이 순식간에 구성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의 지각이 상당히 정확하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우리의 환경, 소망, 기대, 의식, 무의식이 잘못 듣기의 공범인 것은 분명하지만, 잘못 듣기의 실질적인 주범은 좀 더 낮은 수준, 즉 음운분석과 판독을 담당하는 뇌 영역에 존재한다. 만약 귀에서 왜곡되거나 불충분한 신호가 접수되면, 이 영역에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실질적인 단어나 구절을 구성하려고 노력한다. 설사 내용 면에서는 터무니없는 말이 되더라도 말이다.
나는 종종 상대방의 말을 잘못 듣지만, 음악을 잘못 듣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음악의 음정, 멜로디, 하모니, 악구는 일생 동안 또렷하고 풍성하게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비록 가사를 잘못 듣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말이다. 인간의 청각이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뇌가 전혀 동요하지 않고 음악을 잘 처리하는 데는 뭔가 비밀이 있는 게 틀림없다(음악이 영원한 인기를 누리는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그와 반대로, 언어가 결핍이나 왜곡에 그토록 취약한 데도 필시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적어도 악보화된 전통음악의 경우, 음악을 연주하거나 감상하는 데는 음조tone와 리듬의 분석을 담당하는 뇌 영역뿐만 아니라 절차기억procedural memory과 감정을 담당하는 중추가 관여한다. 그러므로 음악은 우리의 기억 속에 저장되며 예측을 허용한다.
그러나 언어는 그 밖의 다른 뇌 영역에 의해 해독되어야 하는데, 의미기억semantic memory과 구문을 담당하는 영역이 바로 그것이다. 언어는 창의적이고 개방적이고 즉흥적이며, 애매성이 높고 의미가 풍부하다. 따라서 언어는 예측을 불허할 정도로 자유롭고 거의 무한히 유연하며 적응적이지만, 잘못 듣기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그렇다면 실수와 잘못 듣기에 대한 프로이트의 설명은 완전히 틀린 것일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그는 의식 속에 존재하지 않는(또는 의식에서 밀려난) 소망, 공포, 동기, 갈등을 기본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러한 것들이 말실수, 잘못 듣기, 잘못 읽기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오지각misperception이 무의식적 동기부여의 결과라는 점을 지나치게 고집한 것 같다.
지난 몇 년 동안 뚜렷한 선정 기준이나 편견 없이 잘못 듣기의 사례들을 수집하다 보니,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프로이트는 신경 메커니즘의 위력을 과소평가했구나. 신경 메커니즘은 ‘개방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언어의 본질’과 결합하여 의미를 뒤죽박죽으로 만듦으로써, 맥락에도 맞지 않고 잠재적 동기부여와도 무관한 잘못 듣기를 초래하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잘못 듣기라는 즉흥적 발명품에는 이따금씩 일종의 스타일이나 재치가 가미되는데, 여기에는 듣는 사람의 관심사와 경험이 어느 정도 반영된다. 그래서 나는 잘못 듣기를 부끄러워하거나 불편해하기보다 오히려 즐기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