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기 마련이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습니다. 이는 가던 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선조를 욕되게 하지 않는 삶이며, 그다음이 자신의 도리와 체면을 욕되게 하지 않는 삶이며, 그다음이 자신의 언행을 욕되게 하지 않는 삶입니다. 그다음은 몸이 굴복되어 치욕을 당하는 것이고, 그다음은 죄수복으로 갈아입고 치욕을 당하는 것이며, 그다음은 형틀에 묶인 채 회초리를 맞는 치욕을 당하는 것이며, 그다음은 머리를 깎이고 쇠고랑을 차는 치욕을 당하는 것이며, 그다음은 몸뚱이가 훼손되고 팔다리가 잘리는 치욕을 당하는 것이며, 최하의 것이 부형으로 치욕의 극이라 하겠습니다.
전해오는 기록에 “형벌은 위로 대부에게 미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선비가 절개를 힘써 지키지 않을 수 없다는 뜻으로 말한 것입니다. 사나운 범이 깊은 산에 있을 때는 모든 짐승들이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함정에 빠진 처지가 되면 꼬리를 흔들며 먹을 것을 구걸하게 되는데 이는 조금씩 위세에 제압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비는 땅에 선을 그어놓고 감옥이라 해도 들어가려 하지 않고 나무로 깎은 옥리라고 해도 심문에 대답하지 않습니다. 이는 이미 마음을 분명하게 결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저는 손발이 교차된 채로 형틀에 묶이고 맨살을 드러낸 채 회초리에 맞으면서 담으로 둘러싸인 감옥 안 캄캄한 곳에 갇혀 있습니다. 이런 때에는 옥리만 보이면 머리를 땅에 처박고 노예만 보아도 두려워 숨이 막힙니다. 왜 그럴까요? 위세에 제압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이런 처지에 이르렀는데도 욕되지 않다고 말한다면 이른바 얼굴이 두꺼운 것일 뿐이니 어찌 귀한 사람이라 하겠습니까?
또 서백은 제후였는데도 유리에 갇혔고 이사는 재상이었는데도 다섯 가지 형벌을 다 받았습니다. 회음후는 왕이었는데도 진에서 형틀에 묶였고 팽월과 장오는 한때 남쪽을 바라보고 왕을 일컬었지만 옥사에 연루되어 처벌받았습니다. 강후는 여씨 족속을 죽여 권력이 오패에 필적하였으나 청실에 갇혔고 위기는 대장이었는데도 붉은 수인복을 입고 목과 손발에 형구가 채워졌습니다. 계포는 주가의 집에서 목에 칼을 쓰고 노예가 되었고 관부는 거실에서 치욕을 당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신분이 왕후장상에 이르러 이웃 나라에 명성이 알려졌지만 죄를 짓고 법망이 죄어올 때 스스로 결단하여 자결하지 못했습니다. 먼지 구덩이 속에 버려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데 어찌 그들이 욕을 당하지 않았다 하겠습니까?
이런 점을 기준으로 말하자면 용감하냐 비겁하냐 강직하냐 나약하냐는 모두 형세에 달려 있는 것이 틀림없으니 어찌 이상하게 여기잘 것이 있겠습니까? 하물며 사람이 포승에 묶이거나 묵형을 받는 처지가 되기 전에 일찌감치 스스로 결단하지 못하고 이미 조금씩 몸이 망가져서 채찍이나 회초리에 매질을 당함에 이르러 비로소 절개를 지키고자 한다면 이 또한 크게 잘못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옛사람들이 대부에게 형벌을 가하는 것을 어렵게 여겼던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무릇 사람의 정이란 삶을 탐내고 죽기를 싫어하며 친척을 생각하고 처자를 돌아보기 마련이지만 의리에 격발되면 그렇게 되지 않으니 바로 어쩔 수 없는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불행히도 일찍 부모를 여의고 가까운 형제도 없이 홀로 외롭게 살아왔습니다. 소경께서 보시기에 제가 처자식에게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또 용감한 자라 하더라도 반드시 절개 때문에 목숨을 바치지는 않고 겁 많은 자라도 의리를 바란다면 어찌 힘쓰지 않겠습니까. 저는 비록 겁이 많아 구차하게 살기를 바랐지만 그래도 곧잘 떠나야 하는지 나아가야 하는지를 분별할 줄은 압니다. 경우를 잘 알고 있으니 어찌 스스로 포승에 묶이는 치욕스러운 처지에 스스로 빠지게 하는 데 이르겠습니까? 또 노예들이나 비첩들도 오히려 스스로 자결할 줄 아는데 하물며 저 같은 사람이 못 하겠습니까? 치욕을 참고 구차히 살면서 더러운 삶을 마다하지 않는 까닭은 제 마음에 다 말하지 못하고 남아 있는 것이 한스럽고 세상에서 사라진 뒤에 문장의 찬란함이 후세에 드러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서입니다.
예부터 부귀하면서도 이름이 사라진 경우는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거니와 오직 빼어나고 비상한 사람들만 이름이 일컬어졌습니다. 서백은 갇혔으면서도 『주역』을 풀이했고, 공자는 곤경에 빠졌으면서도 『춘추』를 지었으며, 굴원은 쫓겨났으면서도 「이소」를 노래했고, 좌구명은 눈이 멀었지만 『국어』를 남겼습니다. 손빈은 발이 잘렸으면서도 병법을 차례대로 찬수했고, 여불위는 촉으로 쫓겨났으면서도 세상에 『여씨춘추』를 전했으며 한비자는 진나라에 갇혔지만 「세난」과 「고분」을 저술했습니다. 『시경』에 실림 300편의 시도 대체로 성현들이 발분하여 지은 것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마음에 맺힌 것이 있었지만 그것을 말할 수 있는 방법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나간 일을 기록하여 미래를 기약한 것입니다. 좌구명처럼 눈이 없고 손빈처럼 발이 없는 사람들은 끝내 쓰이지 못하겠기에 물러나 글을 지어 그들의 분함을 펴고 문자를 남겨 스스로 드러나기를 바란 것입니다. 저도 적이 불손하지만 스스로 무능한 문장에 의탁하여 천하에 흩어져 있는 이야기를 망라하고 행적과 사건을 고찰해보고 성공과 실패, 흥기와 파멸의 이치를 상고하였으니 위로는 황제 헌원씨부터 헤아리고 아래로는 지금에 이르렀으니 10편의 표, 12편의 본기, 8편의 서, 30편의 세가, 70편의 열전으로 모두 130편입니다. 이렇게 하여 또한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궁구하고 고금의 변화를 관통하여 일가의 말을 이루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초고를 아직 이루지 못했는데 마침 이런 재앙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이루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겼기 때문에 극형에 나아갔으면서도 노여워하는 기색이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정말 이 책을 이미 짓고 나서 명산에 간직하였다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작은 고을과 큰 고을에 유통된다면 제가 앞서 받았던 치욕의 대가를 보상받는 것이니 비록 만 번 죽임을 당한다 해도 어찌 후회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지혜로운 사람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이지 속인에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반고(지음), 전호근(옮김), 『한서』 「사마천전」,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