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바보이며 누가 바보가 아닌가? 우리 사회에서 ‘똑똑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뜻하는가? 남의 등을 밟고 올라서는 사람, 남의 피땀의 성과를 가로채는 사람, 남을 속이며 남한테는 절대로 속지 않는 사람, 자신의 이득을 위하여 남에게 손해를 끼치며 남으로부터는 절대로 손해를 보지 않는 사람, 그리하여 돈을 벌든지 권력을 잡든지 하여간에 ‘출세’를 해서 세상 사람들의 찬탄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명예롭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이른바 잘난 사람, 똑똑한 사람들이다.
이런 ‘똑똑한 사람’ 말고 또 한 부류의 ‘약은 사람’, ‘현명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현실과 타협’할 줄 알고 ‘현실에 적응’할 줄 아는, 이른바 처세에 능한 사람들이다. 강자에게 절대로 저항하지 아니하고, 어떤 부당한 취급을 당하더라도 고분고분 고개 숙이고 받아들이며, 반대로 약자 앞에서는 허리를 뻣뻣이 펴고 헛기침을 한다는 것이 그들의 처세철학 제1조다. 그들의 사전에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나 강한 자에 대한 저항이라는 말이 없다. 일제 35년의 억압과 지배의 현실, 해방 이후의 정치적 격동, 그리고 6·25의 혼란을 몸으로 겪으면서 살아남았던 기성세대는 이러한 비굴한 처세철학을 뼛속까지 익힌 ‘현명한 사람들’로 가득 메워져 있다. 세상이 부모들은 자기 자식에게 ‘잘난 사람’이 될 것까지는 기대할 수 없어도 최소한 이러한 ‘약은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고 그렇게 가르친다. 그뿐인가? 강자들이 판을 치는 모든 사회기구가 한결같이 새로 자라나는 세대에게 가르치는 것은 ‘적응’, ‘타협’, ‘겸손’, ‘순종’, ‘온건’ 등등의 ‘미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