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이 될 필요 없어요.
사막을 가로지르는 백 마일의 길을
무릎으로 기어가며 참회할 필요도 없어요.
그저 당신 몸의 부드러운 동물이 사랑하는 것을 계속 사랑하게 두어요.
― 메리 올리버, 「기러기」 중 일부
(…)
미국의 많은 학생이 기숙사 방 벽에 이 시를 붙여놓았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이유를 이 시에 담겨 있는 일종의 치유적 효력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부터 이미 느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그 힘을 명료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가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어떤 시와 만난다.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문장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어느 날 어떤 문장을 읽고 내가 기다려온 문장이 바로 이것임을 깨닫는다.’ 나는 이 시를 읽은 미국과 한국의 독자들이 그와 유사한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그런 힘은 첫 두 문장에서부터 이미 발휘된다. “착한 사람이 될 필요 없어요. 사막을 가로지르는 백 마일의 길을 무릎으로 기어가며 참회할 필요도 없어요.” 이 구절에는 확실히 반反종교적 뉘앙스가 있다. 자신이 따르는 도덕적 이상에 오히려 억압당해서 자신을 언제나 죄인 취급 하고 고행에 가까운 참회를 각오하는 어떤 ‘종교적’ 독자에게 이 시는 그것이 어리석은 자기학대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구절의 호소력은 그보다 더 보편적이다. 자신이 충분히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고 자책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고질적 습관이 아닌가. 이 시의 도입부는 바로 그런 대다수 독자의 자학적 자의식을 바로 옆에서 들리는 음성처럼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 신형철, 『인생의 역사』, 난다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