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2일, 문화연대는 <정부의 '인문정신문화' 정책,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이 날은 강내희 문화연대 공동대표의 기조강연 <인문학 정신의 특성과 그 존립 조건>을 시작으로, 오창은 교수의 발제와 지정토론자 간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아래에 오창은 교수의 발제문 <인문정신문화 정책의 평가와 대안─ '인문 복지'를 넘어 '인문 주체' 되기로>를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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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명동예술극장 예술·인문학 강좌 모습 ⓒ세계일보 |
1. “경쟁에 반대하십니까?”
천안역에 내려 긴 지하 아케이드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아침 시간이라 문을 열지 않은 가게들이 많았다. 출근 시간이 지난 도시의 아침 아케이드는 고요가 깔려 있는 듯했다.
평일 화요일 오전 시간에 누가 인문학 강의를 들으러 오는 것일까?
나는 천안시영상미디어센터에서 개최하는 인문학 강의에 ‘이 시대의 아웃사이더들’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시민들과 함께 하는 인문학 강의는 일방적 강연이 아니라, 삶에 대한 소통이어야 한다. 멋쩍은 침묵의 시간을 감당해야 하고, 대화의 물꼬를 터줄 사람을 인내심을 갖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때로는 격렬한 거부 표시에 직면하기도 한다. 스스로 문학작품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두려움의 통로’를 통과하는 것과 같다.
천안시영상미디어센터 4층에는 이미 20여명의 사람들이 자리 잡고 강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행사 진행을 맡은 담당자는 여섯 번째를 맞는 인문학 강의임에도 참여인원이 크게 줄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민사회의 잔잔한 인문학 열풍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강의를 하는 도중에도 사람들은 계속 들어왔다. 청중들은 다수의 노년층과 청소년들, 그리고 4-5명의 장년층이 중심을 이뤘다.
나는 은희경의 소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와 김숨의 소설 「박의 책상」, 그리고 김사이의 시집 『반성하다 그만둔 날』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상처받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고, 체제로부터 배제된 자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품을 읽지 않은 참여자들에게 작품에 대해 두려움 없이 이야기하도록 인도하기는 힘들다. 사람들은 낯선 소설에 대해, 낯선 시에 대해 침묵하고 들으려고만 한다. 말문을 열게 하기 위해서는 작품이 아니라 자신에 관해 이야기하도록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문학 작품들에 빗대 스스로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고, 성찰한 내용을 표현하도록 세심하게 안내해야 한다. 인문학 강의는 정보나 지식의 전달이 아니기에, ‘자기표현’에 도달할 수 있는 ‘조그만 용기의 고양’이 중요하다. 강의를 진행하는 내내 꽤 오랜 침묵이 4층 전체를 내리 누르기도 했고, 그 적요를 견디지 못한 몇몇 청중이 연거푸 발언을 주도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외면에 대해 말했고, 누군가는 가난한 자들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에 대해 성찰했다.
여섯 번째 강의를 듣고 있지만, 처음 발언을 한다는 한 30대 여성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도대체 인문학 강의가 낯설어 혼란스럽다고 하면서, 시인의 시선을 자신의 생각과 대비해 보는 것이 신기하다고도 했다. 30대 여성은 의구심이 일어도 그 동안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된 것이 자신의 큰 변화인 것 같다고 했다.
한 60대 남성분이 ‘아웃사이더’에 대해 반감을 표현하며 공격적인 발언을 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하기도 했다. 그는 내게 다그치듯이 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경쟁이 필요 없다는 겁니까? 지금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사람들도 다 경쟁을 통해 영광의 자리에 오른 것 아닙니까? 경쟁은 사회 발전의 동력이잖아요. 어서 대답해보세요?” 양자택일의 명료함 너머에 있는 세계의 복잡성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것을 바로 세계관의 차이로 추궁했다. 나는 당혹스러움을 느꼈고, 갑작스럽게 심문당하는 사람의 처지에 내몰렸다. 이 질문에 대해 다른 참여자가 ‘정년퇴임 이후 느끼는 경쟁적 직장생활로 인한 회한’에 대해 우회적으로 말했고, 다른 참여자는 ‘경쟁해야만 살아남는다는 것’의 피로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경쟁을 통한 생존’이 당연시 되는 세상에서, ‘경쟁의 체제 바깥에 있는 아웃사이더들의 가치’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이렇듯 힘들다. 낯선 세계에 대해 공격적 태도를 드러내는 완고함에 대응하는, 세계에 대한 관용적 태도는 ‘무력한 윤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문학은 ‘지배적 질서’에 대응하는 대안적 세계 인식의 여지를 넓히는 학문일 수 있다. ‘기성의 지배담론’에 갇히지 않고, ‘권력이 요구하는 질서’의 바깥에 서 있는 것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 핵심에는 ‘자유’가 있다. 자유로워야 다르게 볼 수 있다. 현실의 질서도 인류의 장구한 역사 속에서는 한시적인 것일 뿐이기에, 역사적 시간과 공간적 차이 속에서 객관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다양한 탐색의 가능성이 자유의 틈 속에서 가능하고, 현실을 확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열린 사고’ 속에서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2. 인문정신 문화 정책에 이의있습니다!
과연, 우리 시대 인문학은 ‘견고한 사회체제’의 압박을 견뎌낼 수 있을까? 이를 검토하기 위해 박근혜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인문정신문화 정책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으려 한다.
인문정신문화 정책은 박근혜 정부의 4대 국정기조인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 평화통일 기반 구축 중 국민행복과 문화융성의 중요 테제로 자리잡았다.
처음 인문정신문화 정책은 140대 국정과제 중 113번째 과제로 제시되었다. 박근혜 정부가 5월 28일 발표한 「희망의 새 시대 “국민행복과 국가발전이 선순환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대”」에서 ‘인문정신 문화의 진흥’은 세 가지 항목으로 이뤄져 있었다. 첫째로 도서관·박물관 등 문화시설 연계, 인문학 진흥, 두 번째로 한국문화 데이터베이스(DB) 구축 및 보급 등 체계화, 세 번째로 문화정체성 정립을 위한 정신문화 진흥 기반 구축이었다. 한국 전통 문화유산과 연계하여 한국문화의 세계 보급에 기여하고, 고유정신문화를 발굴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당시 발표된 내용은 ‘인문학 관련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세계적 차원에서는 ‘한류 확산’을 문화정체성과 연결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화융성이 ‘국민행복’을 달성할 수 있는 핵심 아젠다로 부상하면서 인문정신문화가 중요 과제가 되었다. 문화융성을 실현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인 문화융성위원회가 2013년 7월 25일 출범하였고, 산하에 인문정신문화특별위원회가 구성되었다.1) 문화융성위원회에서 ‘사회공동체의 위기 해법의 바탕으로 성숙한 인문정신 사회’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인문정신문화’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였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월 13일 ‘2014년 업무계획’을 발표하면서 4대 전략을 밝혔다. 그 중 두 번째 항목에 ‘인문 전통의 재발견’을 제시했고, 2월 17일에는 문화기반국에 인문학 부흥 전담 부서인 ‘인문정신문화과’를 설치했다. 정부 부처에 인문학 부흥 전담 부서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인문정신문화에 현 정부가 기울이는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게 한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인문정신문화 정책은 1) 인문학이 복지의 수단화되고 있으며, 2) 인문학 대중화 사업에 과도하게 치우쳐져 있고, 3) 인문학 근본 토대 형성이 간과되고 있으며, 4) 도서관·박물관 중심으로 정책 사업이 협애화하고 있고, 5) 인문학 사업에 관한 상상력이 빈곤하기에 문제가 있다.
첫째, 인문학을 ‘복지의 수단’, 새로운 경제적 ‘성장 동력’으로 간주하는 사업 방식에 문제가 있다. 인문정신 문화와 관련된 보고서 및 워크샵 발제 등에 따르면 ‘행복지수, 높은 자살률, 경제적 위상에 못 미치는 삶의 질’ 등이 거론된다. 더불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경제발전의 새로운 차원의 동력으로서 콘텐츠 및 인문정신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는 언급도 있다.2) 경제적 풍요에는 일정정도 도달했으나 정신적 빈곤 상황이 가중되고 있다는 분석 아래, 인문학이 정신적 위안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논지이다. 이는 시민사회에 영역에서 인문학 공동체가 활성화되고, 자발적 책읽기 모임이 이뤄지는 것이 국가 영역의 관리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역 자치단체가 인문학을 주민 복지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처럼, 정부도 정신문화 향유 방식을 다원화해 ‘인문학을 복지의 수단’으로 접근하려 하는 것으로 비춰진다. 인문학을 ‘자기주도형 학습체계’와 연결시키겠다는 ‘길위의 인문학’이나 독서를 통해 정신적 고양을 주도하겠다는 ‘국민 독서문화 진흥’, 그리고 전통이야기를 콘텐츠화 하는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등이 그 사례이다. 이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의 작동과 유사한 측면에 있기에 더욱 우려스럽다. 그간 시민사회의 자율적 영역에서, 시민들의 자유로운 공동체 형성이 이뤄져 왔던 ‘시민인문학’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관리하겠다는 의도로 비춰진다. 푸코가 이야기하는 국가 통치의 합리화, 혹은 확장이라는 측면에서도 주목을 요한다.3) 정신문화까지 포괄하는 생명정치의 관리를 통해 국가 정체성 확립에 접근하려는 것으로 연결된다. 이는 국가 통치의 방식으로 인문학을 동원함으로써, 시민사회의 자율성의 영역 침해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둘째, 문화체육관광부의 인문정신의 가치 정립과 확산을 위한 사업은 ‘인문학 대중화 사업’에 과도하게 치우쳐 있다. 문화융성위원회는 주요 사업 내용으로 “△인문학 교육 우수 선도학교 지원, BK21플러스 사업 등을 통한 인문학 연구 및 전문 인력 양성 확대, 알기 쉬운 인문학 교재 개발·보급 등 인문정신 교육을 중심과제로 삼아 사회에 확산 △ 고전의 현대적 번역을 통한 인문학의 대중화 △ 인문정신문화진흥법 제정, 전담기구·협의체 운영 등 인문학 진흥의 제도적 기반 구축 등”을 제시했다.4) 인문학의 대중화에 대부분의 사업 내용이 집중되어 있다. 이는 예산 배정에서도 드러난다. 인문정신문화 진흥 사업에 51,588백만원이 배정되어 있는데, 그중 인문정신문화 대중화 및 세계화에만 46,097백만원이 배정되어 있다. 전체 사업 예산 중 89.3%가 대중화에 집중되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뿐만이 아니다. 교육부의 예산에서도 인문학 대중화 사업의 규모가 2013년 29억이었는데, 2014년에는 60억으로 대폭 증가했다. 인문학의 진흥은 대중화 사업으로 국한될 수 없다. 연구가 활성화되고, 연구성과가 산출되면서, 그 영향력을 실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선순환구조 형성이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인문학을 마치 고갈되지 않는 원천처럼 간주하고, 대중화에 힘써 향유하는 것이 중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공급은 없는데, 수요를 늘리는 형국이다. 인문학적 성과를 마련하기 위한 구조적이면서도 제도적인 지원이 없이, 인문학을 대중화하려는 것은 ‘성과위주’의 접근방식이다. 국가기구가 동원되어 시행하는 정책의 핵심적 난점이 인문학과 관련된 사업에도 나타나고 있다. 성과 산출의 강박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인문정책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셋째, 인문정신문화 정책과 관련해 문화융성위원회 ‘인문정신문화 특별위원회’가 조직되었고, 문화체육관광부에 인문정신문화과가 신설되었지만, 인문학의 생산과 인문학자 양성, 그리고 인문학 연구의 토대 구축적 측면에서는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교육부는 학문영역 분류체계 속에서 인문학에 접근해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BK21포스트사업’과 ‘HK사업’을 핵심으로 하면서, 국사편찬위원회와 한국학중앙연구원과 연계된 한국학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디지털 아카이브 작업이 주를 이룬다. 반면, 융합이 창조경제의 중요한 화두로 부상하면서 미래창조과학부도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분야’의 융합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대학의 인문학에 대한 정책적 지원은 사각 지대에 놓이고 있다. 이는 인문학 전공자의 사회진출과 인문학의 경제적 부가가치 산출에 대한 효용적 판단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한국 교육개발원의 2012년도 ‘취업통계연보’에 따르면, 4년제 대학 인문계열 졸업자의 정규직 취업률은 48.4%이고, 사회과학계열 정규직 취업률은 57.4%, 공학계열 정규직 취업률은 69%라고 한다. 이렇다보니, 인문계열 학과의 폐과 현상이 지방대학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고, 대학의 인문학 교양과목도 축소되고 있는 경향이 뚜렷하다. 인문학 교육과 연구의 중심인 대학의 연구·교육 기능이 크게 위축되고 있고, 대학 인문학에 대한 진흥 계획은 부재한 상황에서 ‘인문학을 통한 문화융성’이 추진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대학 교양 교육과 대학 인문학의 구조적 접근, 대학 인문학에 대한 평가지표의 변화 없이는 ‘인문학 정책의 성과’ 산출도 어렵다고 본다.
넷째, 현재 인문정신문화 진흥 정책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맡아 진행하면서 ‘도서관과 박물관 사업’에 기반하는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인문학은 분과 학문이 아니기에, 교육부가 아닌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맡는다고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에 전담부서가 만들어짐으로써 인문학에 대해 접근 방식에 변화가 발생했다. 문화 향유 차원에서 인문학을 접근하고, 독서진흥운동과 전통문화와 연결된 대중화 사업에 집중되는 경향을 띠게 되었다. 인문학 진흥 전담부서인 ‘인문정신문화과’가 ‘도서관박물관정책 기획단’에서 변화한 조직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구조적 틀은 사업을 제한한다. 도서관과 박물관을 토대로 한 인문정신문화과의 사업은 기존의 자산을 활용하기에 가시적 성과를 산출하기에는 유용하다. 하지만, 정책적 측면에서는 인문정신문화과의 사업이 기존의 도서관 박물관 사업에 ‘인문정신문화’라는 내용만 채우는 방식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공무원 조직의 확대를 꺼려하는 현재의 정부조직 방향으로 인해 ‘도서관박물관정책 기획단’의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상황으로 보인다. 그 사례로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인문독서 아카데미’를 들 수 있다. 인문독서 아카데미는 전국 공공도서관, 문화원, 서원 등 지역문화시설에 문학, 역사, 철학 등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융합된 주제로 총 20회의 강좌를 개최하도록 하는 사업이다. 총 60개 기관을 지원함으로써 인문학과 지역문화, 그리고 독서문화를 확산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업은 지역 공공도서관 등이 일상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에 ‘인문학’이 ‘자연과학’과 융합한 것이다. ‘인문독서 아카데미’는 내용의 일부를 인문학으로 채운 상태에서 기존 사업을 지속하는 것과 같다. 도서관과 박물관 위주의 사업 방식에 대한 전향적인 방향 전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도서관·박물관의 사업 형식에 ‘인문정신 문화’라는 사업 내용을 입히는 형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섯째, 인문학과 관련된 사업 추진 방식에서 인문학적 상상력의 빈곤 현상이 뚜렷하다. 지금 추진하고 있는 인문학 관련 사업은 인문학 강연, 지역사회와 연결되어 있는 ‘거리 인문학’, 스토리텔링, 기획전시 등 경직된 사업이 일반적이다. 이들도 대부분 그간 시민사회에서 ‘시민인문학’을 펼치는 과정에서 나온 성과를 인계하는 방식이었다. 그나마 ‘인문도시’를 중심으로 공간 내에서 인문학을 활성화하는 접근법이 창의성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이는 인문학을 교양교육, 위안, 관광, 여가의 차원에서 접근하고, 더불어 성과가 가시화될 수 있는 사업 위주로 구성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국국학진흥원의 「인문정신문화 진흥방안 연구」는 좋은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이 보고서는 ‘민간의 인문공동체 운동 사례’를 통해 ‘마포는대학’ 등 ‘○○은 대학’ 사례, 수유너머, 문탁네트워크, 인디고 서원, 문화공간 빈빈彬彬, 인문학협동조합 등의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인문학자들의 도전적 접근이었던 성프란시스대학의 사례나 인권연대의 ‘평화인문학’ 사례 등도 검토하고 있다.5) 이들 사례를 국가적 차원에서 흡수하기 보다는 창조적 인문학 사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형태로 사업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다. 상상력의 빈곤은 권위주의적 접근과 정책 집행에 기인한다.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고양함으로써 인문학적 상상력이 확장될 수 있고, 창조적인 방식의 사업이 전개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인문학을 대중화해 통치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정치적 접근법에 대한 성찰이다. 이는 인문학 콘텐츠의 소비라는 새로운 형태의 ‘미학적 소비주의’를 조장하는 것과 연결된다. 또한, 정신문화적 차원의 국가 이데올로기 작동의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어 우려스럽다.
3. 인문 주체 형성과 시민 인문학
월터 카우프만은 『인문학의 미래』6) 에서 ‘현재의 지배적 관점에서 벗어나 비판적이면서도 다른 대안에 입각해 비전을 마련하려는 학문’이 인문학이라고 했다. 현재의 지배적 체제 내에서 작동하는 학문적 쓰임새 보다는, 권력 체제에 불편한 비판을 가하고, 통시적 관점 속에서 대안적 상상력까지 펼치는 것이 인문학이다.
현 정부의 ‘인문정신문화 정책’은 기업의 융복합 수단으로 ‘신성장 동력’의 역할을 기대하거나, ‘삶의 질’에 대한 관심 속에서 ‘인문복지’의 수단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경제 성장을 중심으로 한 양적 팽창이 한계에 이르자, 정신문화 고양을 통한 질적 전환을 꾀한다는 발상이 깔려 있다. 박근혜 정부의 ‘인문정신문화 정책’은 박정희 정권이 1973년 추진했던 ‘문예진흥 제1차 5개년 계획’을 연상시킨다. 박정희 정권은 ‘민족문화창달’을 목표로 1972년에는 ‘문예진흥법’을 제정하고, 1973년에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을 창립했다. 그 핵심 내용은 ‘1) 올바른 민족 사관 정립 2) 예술의 생활화, 대중화로 국민의 문화수준 향상 3) 문화예술의 국제교류를 적극화하여 문화한국의 국위 선양’이었다. 마치 경제개발5개년 계획처럼 ‘문예진흥 5개년 계획’을 수립한 것이다. 문화를 성과와 업적 위주로 접근한 비문화적 행태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그런데 지금 박근혜 정부는 ‘문화예술’의 자리에 ‘인문학’을 놓고 전통문화와 인문정신의 결합, 인문학 대중화, 한국 문화의 세계적 확산을 추진하고 있다. 1973년의 ‘민족문화창달’이 40여년의 시간적 격차를 두고 2013년에 ‘인문정신문화 진흥’로 재림했다. 그리고 2014년에는 ‘인문정신문화과’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진흥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인문학은 국가통치로부터도 자유로운 인간의 존재에 대한 학문이고, 국가이데올로기 통합에 긴장하는 시민사회의 자율적 영역이자, 학문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독립적 공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자율과 자유가 훼손되고, 당장의 쓸모를 위해 인문학이 도구적으로 동원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2014년은 1973년과 다르기에 다음 몇 가지 사항이 적극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우선, 시민사회의 자율적 영역을 국가기구를 통해 흡수하려는 과도한 정책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 속에서 그간 정부는 취업률을 중심으로 대학 평가 등을 통해 인문학 위축을 초래했다. 대학에서 설 자리를 잃은 인문학자들이 ‘시민인문학’을 통해 ‘삶의 근본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다. 그 성과들이 대중적 성과로 이어지자, 자본이 결합하여 ‘인문학적 문제제기’들이 왜곡되었다. 이른바 ‘아이폰 인문학’이나 ‘CEO 인문학’ 등이 그 사례이다. 시민사회의 자율적 인문학공동체 모임이 국가기구의 개입으로 인해 왜곡되면, 인문학적 비판의식은 급격히 소진될 수 있다. 시민사회 영역에서 이뤄지는 ‘인문학적 자율공동체’는 민주주의에 대한 토론과 훈련의 장이며, 인문주체의 탄생을 위한 중요한 자산이기도 하다. 국가의 ‘인문정신문화 정책’은 시민인문학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펼쳐져야지, 흡수하여 ‘인문복지 차원’으로 전유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시민사회에서 자율적 ‘인문주체’가 형성될 때, 민주주의는 확장될 수 있다. 인문주체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자’로서 정체성을 갖는 것이고, ‘금기를 넘어서 새로운 비판과 해석을 감당해내는 주체’이기도 하다.7)
다음으로 대학 인문학과 교양교육을 강화하는 방안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도서관이나 박물관은 교양교육의 중요한 장일 수 있다. 교양교육과 인문학에 혼선이 발생하는 이유는 인문학 연구방법이 문헌학에 입각한 역사적 방법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인문학 연구와 인문학의 사회적 확산을 뒤섞음으로써, 인문학의 사회적 확산을 ‘인문학 대중화’로 간주하고 있다. 고전 읽기가 인문학 연구일 수 없고, 인문학의 사회적 확산만이 인문학의 궁극적 목표일 수 없다. 그렇기에 인문학적 성과 산출의 핵심적 공간인 대학을 제외하고, 인문학의 사회적 확산은 이뤄질 수 없다. 전국의 각 대학을 거점으로 ‘대학인문학·교양교육과 지역사회’가 결합하는 개방적 인문학의 사회적 확산이 이뤄져야 한다.
또한, 인문학의 학문적 심화를 위해서는 ‘고전 번역’에 대한 사회적 자본의 투여가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한국문헌의 번역에만 사회적 자본 투여를 하고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은 “고전문헌을 수집 정리 연구 번역 보급함으로써 한국학 연구의 기반을 구축하고,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데 이바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 한국문학번역원도 “한국문학과 문화의 해외 소개를 촉진하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가 설립한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번역을 접근하는 방식이 자민족 중심주의, 자국가 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폐쇄적 형태를 띠고 있다. 한국 인문학을 포함한 학문영역이 발전하려면, 해외의 중요 고전문헌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개방적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안으로 향하는 문은 닫아놓고 밖으로 향하는 문만을 고집하는 것은 상호성을 외면하는 일방적 소통이다. 세계의 고전과 인문학적 성과에 대한 열린 정책이 이뤄지지 않는 한, 인문학 진흥은 ‘자민족, 자국가 이기주의’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고전번역원’과 같은 법인의 설립도 적극 고려할 수 있다.
4. 인문학, 비체제적 존재되기
국가 통치의 수단으로 동원되는 인문학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세계시민적 관점’의 확보가 필요하다. 인문학은 한 국가, 혹은 한 민족의 자산으로 국한될 수 없다. 인간에 대한 탐구는 한국인에 국한될 수도 없고, 일본학자의 성과라고 오로지 일본의 것일 수만도 없다. 더욱이 지금과 같은 생태환경의 변화와 신자유주의적 질서의 위기 고조로 인해 인간의 운명은 개별적인 것의 연쇄 속에 놓여 있다. 인문학을 국가 발전, 혹은 국민 관리의 수단으로 바라보는 위험스러운 접근법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도 의도적으로 ‘인문학의 세계시민적 관점’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파커 J. 파머는 근대성의 나쁜 특징으로 ‘무심한 상대주의, 정신을 좀먹는 냉소주의, 전통과 인간 존엄성에 대한 경멸, 고통과 죽음에 대한 무관심 등’을 꼽았다.8)
이러한 근대성의 나쁜 특징으로 인해 인간에 대한 관심이 옅어지고, 타인에게 냉혹해진다.
서두에서 언급한, 천안에서 인문학 강의를 하면서 누군가 내게 추궁하듯이 질문한 “당신 경쟁에 반대합니까”라는 질문도 동일한 맥락 속에 있다고 본다.
나는 높은 자살률, 학교폭력, 비정규직 문제 등 사회의 불안정성의 중요한 원인이 ‘무자비한 경쟁주의’에 있다고 본다. 경쟁에서 이겨야만 내 생존이 보장된다면, 나는 생존을 위해 ‘공동체’를 외면할 수밖에 없다. 그 모순이 신자유주의적 세계체제 아래서 유일한 삶의 원리처럼 작동하고 있다.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생존이 유지된다면, 생존해 있는 모든 존재들은 타인들에게 죄인이다.
경쟁을 당연시하는 사회에서, 경쟁의 논리를 비판하는 것은 적대감을 유발할 수 있다. 그 적대감 또한 인문학이 감당해야 할 현실이다. 무지로 인한 공포와 적대감을 견뎌내는 것, 상대와의 대화와 토론 과정에서 ‘공포와 적대감’을 완화시키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상상의 가능성을 여는 것이 ‘다른 학문의 길’이다. 지금은 인문학에 그 역할이 주어지고 있는 듯하다.
인문학은 스스로 비체제적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체제에 동원되지 않을 권리를 옹호하고, 동원되지 않은 존재들을 존중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켜내는 것이 권위주의 체제 아래에서 인문학이 감당해야 할 무게일 것이다.
* 주
1) '인문정신 문화 특별위원회'는 문학평론가 유종호가 위원장이며, 문학부문은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 역사부문은 손승철 강원대 사학과 교수, 박지향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철학부문은 김혜숙 이화여대 철학 전공 교수,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 김기현 서울대 철학과 교수, 인문학부문은 우응순 '길 위의 인문학' 기획위원, 정민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김원중 건양대 교수, 임마누엘 페스타라이쉬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언론부문은 이선민 조선일보 선임기자이다. 그리고 당연직으로 조현재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과 나승일 교육부 차관이 위원이다.
2) 박원재, 「인문정신문 발제」, 문화진흥기본계획 제1차 워크숍,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4.3.28, 1쪽.
3) “통치되는 것은 이미 주어져 있는 바로서의 국가이고, 이 국가의 틀 내에서 통치가 이뤄지고 있으며, 또 이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동시에 국가라는 것은 구축해야 할 대상의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국가는 이미 존재하는 것임과 동시에 아직 충만하게 존재하고 있지는 않은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국가이성은 엄밀히 말해 하나의 실천 혹은 차라리 소여로 제시된 국가와 구축해야 할 것으로 제시된 국가 사이에 위치하게 될 실천의 합리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셸 푸코, 오트르망(심세광, 전혜리, 조성은) 옮김,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난장, 2012, 24쪽.)
4) 문화융성위원회, 「문화융성정책 문화융성시대를 열다 ─ 문화가 있는 삶」, 문화체육관광부, 2013년 10월 25일자 보고서, 10∼11쪽.
5) 이상열 외, 「인문정신문화 진흥방안 연구」, 한국국학진흥원, 2013, 69∼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