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과 금서,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표정훈│ 한양대학교 교수, 출판평론가
1986년 3월 12일 저녁, 경찰은 서울 대학가 14개 사회과학서점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여 서적 51종 1천2백여 권을 압수하고, 연행한 서점주인 9명 중 5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입건했다. 그전에도 대학가 서점 압수수색은 잦았지만, 이념서적 판매를 이유로 국가보안법을 적용한 첫 사례였다. 적용한 조항은 제7조 5항. (⑤ 제1항·제3항 또는 제4항의 행위를 할 목적으로 문서·도화 기타의 표현물을 제작·수입·복사·소지·운반·반포·판매 또는 취득한 자는 그 각항에 정한 형에 처한다.)
압수한 책들 중 일부를 보면, 『노동운동과 노동조합』김석영, 이삭, 『들어라 양키들아』C. W. 밀즈, 녹두, 『민중연극론』아우구스또 보알, 창작과비평사, 『민중운동의 인식과 전략』로빈 코헨 외, 풀빛, 『아리랑』님 웨일즈, 동녘, 『여성해방의 이론과 현실』이효재, 창작과비평사, 『중국혁명의 전개과정』중국사연구회, 거름, 『한국의 민중극』심우성, 창작과비평사, 『π파이=10.26회귀』스티븐 쉐건, 일월서각. 이 가운데 『π파이=10.26회귀』The Circle는 1979년 10.26 사건을 토대로 독재자 탄생 음모의 현장과 그 배후에 얽힌 갈등을 엮은 소설이다. 1984년 12월 말 일월서각에서 출간한 지 사흘 만에 지형紙型 책 2천5백 부를 압수당했고 출판사 대표 김승균 씨와 번역자 김자동 씨는 유언비어 유포죄로 1심에서 구류 15일과 7일을 선고받았으나 1988년 9월 16일 항소심에서 원심 파기 무죄 선고를 받았다.
“허구의 세계를 창작하는 소설의 특성에 비춰볼 때 소설의 내용이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고 해서 사실을 거짓으로 꾸민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흥미 위주로 쓴 이 소설이 사회를 불안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선고 이유. 당시 소송을 대리한 박원순 변호사현 서울시장는 “출판 탄압에 항거한 최초의 승리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회과학서점에 대한 압수수색은 1990년대 말까지도 이어졌다. 1997년 10월 29일에도 경찰은 ‘서강인’ ‘장백서원’ ‘논장’ ‘오늘의책’ 등을 압수수색하여 국가보안법 위반이적표현물 판매 등 여부를 조사하였다.
2015년 11월 5일 유엔의 시민적 정치적 권리규약위원회유엔 자유권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대한 권고에서 국가보안법 제7조가 “모호하고, 공적인 대화에 대한 냉각 효과를 가져올 수 있고, 불필요하고 균형에 맞지 않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고 설명하고 국가보안법이 검열의 목적으로 점차 사용되고 있음을 우려했다. 위원회는 “사상이 적국이 가지고 있는 것과 단지 일치한다거나 적국에 대한 공감을 초래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 사상의 표현을 제한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한국 정부에 국가보안법 제7조 폐지를 권고했다. 자유권위원회는 이미 1999년과 2006년 두 차례 국가심의에서 국가보안법 제7조 개정을 권고한 바 있다.
[사설] 국방부의 분서갱유식 책 솎아내기 (2016.8.5. 한겨레신문)
‘국방부가 군대 내 마트에서 판매하고 있던 도서 5종을 지난 5월말 갑자기 퇴출시켰다. 국방부는 해당 도서들이 군의 사기를 저해하거나 정부정책 및 국방정책을 비난하고, 군의 정훈교육 내용과 배치되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판매중지를 했다고 한다.
국방부는 퇴출 도서 가운데 하나인 『만화로 읽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한국 등 아시아 각국의 경제성장이 외국의 거액 투자 혜택을 받은 덕’이라고 서술한 것이 군의 정훈교육 방향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댔다. 역시 퇴출당한 『칼날 위의 역사』는 조선시대 국왕의 일상을 다루는 책인데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대통령의 행적을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고 쓴 것이 국방부의 눈 밖에 났다는 의혹을 살 만하다. 또 김진명 소설 『글자전쟁』은 방산비리 실태를 건드리고 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보면 이 책들이 정부와 군에 불편함을 안기거나 수구보수 편향적인 정권 입맛을 거스른 것이 퇴출의 진짜 이유로 보인다.’
(책의 압수, 관련자 입건·구속과 같은 고강도의 직접적인 탄압으로서의 금서 조치는 2000년대 이후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지만, 대신에 일종의 저강도 금서 조치는 간헐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2007년 2월, 반反유대 활동 감시단체 사이먼 위젠탈 센터Simon Wiesenthal Center가 일본 도쿠마서점도쿠마쇼텐, 徳間書店의 신간 『유대·기독교 세계 지배의 장치』ニーチェは見抜いていた ユダヤ・キリスト教「世界支配」のカラクリ에 대해 출간 중지를 요구하고 책 광고가 실린 아사히신문에도 항의했다. 사이먼 위젠탈 센터는 이원복의 『먼 나라 이웃나라』가 반유대주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항의한 적 있으며, 일본 문예춘추사 시사교양지 『마르코 폴로』가 폐간에 이르도록 한 적도 있다. 1995년 한 신경의학자가 이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나치 정권의 유대인 대량 학살은 사실이지만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강제 수용소의 악명 높은 가스실은 부풀려진 허구일 수도 있다”고 언급했던 것. 사이먼 위젠탈 센터를 중심으로 실력 행사에 나선 유대인 단체들은 굵직한 광고주들을 움직여 까르띠에, 폴크스바겐, 미쓰비시, 필립모리스 등이 광고를 취소했다.
2006년 11월, 미국 일리노이 주와 미주리 주에서 일부 학부모들이 그림책 『탱고가 태어나 가족은 3마리』And Tango Makes Three, 피너 파넬·저스틴 리처드슨 지음, 사이먼앤슈스터, 2005를 공격했다. 뉴욕 센트럴파크 동물원의 수컷 펭귄 두 마리 로이와 실로는 알과 비슷하게 생긴 돌을 품곤 했다. 이를 눈여겨 본 사육사들이 다른 암수 한 쌍의 펭귄이 방치한 알을 주었다. 수컷 펭귄 한 쌍이 알을 품어 아기 펭귄 탱고가 태어났다. 1999년에 일어난 실화다.
학부모들은 ‘사실상 동성애 이야기이며 교육상 좋지 않다’며 학교 측에 항의했다. 이들의 요구 사항은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책을 볼 수 있는 서가에서 퇴출시켜 성인 코너로 옮기고, 어린이가 그 책을 보려하면 부모 허락을 반드시 얻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아예 도서관 금서로 지정하라는 요구도 있었다. 학교장들은 ‘도서실은 다양한 인종과 신앙, 다양한 가족 형태에 속한 아이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며 불응했다. 센트럴파크 동물원 홍보 담당자에 따르면, “7년 전 그 두 마리 수컷 펭귄은 서로 사랑하고 있었지만, 그림책이 나온 뒤 헤어져 실로는 암컷 짝을 찾았다.”
2006년 말, 미국 조지아 주 교육위원회가 해리 포터 시리즈를 학교도서관에서 추방시켜 달라는 한 학부모의 청원을 거부했다. 조지아 주 그윈넷 카운티 초등학교의 학부모 로라 말로리는 해리 포터 추방 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그는 해리 포터 시리즈가 어린이들을 마법에 물들게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학교 측은 해리 포터 시리즈가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극하는 좋은 책이라며 말로리의 주장을 일축했고, 말로리는 주 교육위원회에 청원까지 한 것.
학교 측은 주 교육위원회의 결정이 당연한 것이라며, 말로리의 주장대로라면 『맥베스』나 『신데렐라 이야기』 같은 책도 추방해야 할 것이라 꼬집었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미국에서만 2000년 이후 2006년 당시까지 115차례나 금서로 지정해야 한다는 공식적인 주장이나 청원에 직면해야 했다. 그 대부분은 해리 포터 시리즈가 마법을 찬양하고 아이들이 어른의 권위를 무시하게 만든다는 이유를 든다.
2007년 2월, 수전 페트런의 『하이어 파워 오브 럭키』가 미국 여러 초등학교에서 사실상 금서로 지정됐다. 이 책은 2007년 뉴베리상 수상 작품. 이유는 남성 혹은 수컷 생식기의 일부를 가리키는 음낭scrotum, 스크로텀이라는 단어가 첫 페이지에 나온다는 것. 작가와 뉴베리상 주최 측은 ‘전체를 보지 못하고 한 단어만 문제 삼아 이런 조치를 내리는 건 부당하다’고 반발했다. 개의 생식기를 언급하면서 단 한 번 등장하는 단어에 불과하다는 것. 주인공 소녀 럭키가 벽에 난 구멍을 통해 술 취한 어른의 말을 엿듣는 대목에서 그 어른이 하는 말로 ‘스크로텀’이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①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②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③통신·방송의 시설기준과 신문의 기능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④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제21조 제4항에 명시된 ‘공중도덕’ ‘사회윤리’를 근거로 한 출판의 기능 제한 예시는 권력 등이 출판의 자유를 자의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폐지를 검토해야 한다. ‘공중도덕’ ‘사회윤리’라는 개념 자체가 대단히 애매모호하다. 더구나 헌법에 명시하지 않더라도 다른 법규를 통하여 다룰 수 있는 문제다. 헌법은 국민의 권리를 최대한 확대, 강화, 보장하는 방향을 취해야 할 것이다.
검열과 금서는 책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지만 ‘우리가 너나없이 자유로운 인간이고 싶어 한다면, 책을 읽을 자유는 자유의 최소한이다.’ * 존 밀턴1608~1674이 『아레오파기티카』박상익 옮김, 소나무에서 말한다. “검열이라는 교묘한 계획이 어떻게 해서 수많은 헛되고 불가능한 시도들 중의 하나로 여겨지지 않는지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검열을 시행하려는 이는 공원 문을 닫아 까마귀를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무모한 자와 다를 것이 별로 없습니다.”(*)
* 이현우, 『책을 읽을 자유』, 현암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