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도자기』, 『페르세폴리스』, 『똑같이 다르다』는 만화책이다. 『도자기』는 인터넷에 연재되는 웹툰형식의 만화다. 도자기를 공부하는 젊은이의 상상과 표현이 참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르세폴리스』는 10년 전에 출간돼 독특한 그림과 서술방식으로 독자층이 두터운 책이다. 뒤늦게 읽은 후 스스로에게 확인한 것은 이슬람 혁명도 이란이라는 나라도 차도르를 쓴 여인들에 대해서도 뭐 하나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이후 출간된 페르세폴리스 2부를 마저 읽고 나서 이 책의 감상도 정리해 볼 생각이다.
이라크전쟁과 IS에 이어 ‘메르스’라는 중동호흡기증후군까지 좀처럼 다가서기 어려운 심리적 거리를 넘어서는 일에 과감히 도전. 『똑같이 다르다』는 앞의 두 만화처럼 자신의 색깔이 분명하면서 좀 더 특별한 감동이 있었다. 자꾸 곱씹어 보게 되는 독특한 만화 한 편을 통해 만화가 김성희와 그가 눈길을 주는 주위의 현실이 천천히 마음에 들어왔다.
『똑같이 다르다』는 내용만 보면 임시계약직, 장애아동, 통합교육이거나 청년실업, 비정규직, 장애인가족, 발달장애 등의 단어를 연관어로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좋은 작품이 늘 그렇듯 어느 한 단어나 주제로 이야기할 때 오히려 갇히는 느낌이 드는 책이다.
표지부터 공포의 외인구단인 듯 변방의 고수들인 듯 무심하고 천연덕스러운 등장인물들이 눈길을 끈다. 주인공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만들어준 사람들이다. 물론 그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다. 주어진 삶을 때론 비겁하게 때론 격렬하게 그러다가 가끔 진지하게 살아가는 ‘새날반’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주인공이 우리도 그들처럼 혹은 그들도 우리처럼 ‘똑같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밖에 없다. 장애는 결국 그냥 그 사람의 한 특성이라고.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함 그리는 만화가
주인공 ‘나’의 남자친구는 유치원교사다. 데이트 중에도 계속 손을 놀리며 수업교재를 만든다. ‘시급 짜고 더럽게 일만 시키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상냥하게 열심히 일하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자신만 세상 밖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던 중 장애통합교육을 하는 초등학교에 임시계약직 보조교사 일을 하게 된다. 모든 것이 마땅치 않던 ‘나’를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안내한 새날반 친구들을 작가는 후기에서 “아이들이 예뻐서 이대로 크지 않기를 바라보기도 했다”고 적고 있다.
그는 아이들이 있는 모습 그대로 보이기까지 첫 만남의 당황에서부터 자신이 보잘 것 없어 보이다가, 조금씩 느끼고, 젖어드는 과정을 진솔하고 담담하게 그려냈다. 작가는 일 년간의 통합보조교사 아르바이트 경험을 토대로 했다고 했다. 우리가 모두 ‘똑같이 다르다’는 사실이 한 발짝만 사회에 발을 내밀어도 치열하게 부딪혀 얻어내야 하는 가치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 귀한 경험이다.
이 만화책에 더 마음이 이끌린 데에는 딸아이의 몫이 크다. 장애아동 돌봄 자원봉사를 하다가 이후에도 가끔 만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선지, 만화를 보며 주인공과 딸아이가 자꾸 겹쳐보였다. 요즘은 대학졸업을 앞두고 녹록치 않은 사회에 어떻게 안착할 것인지 생각이 많아 보인다. 능력 없는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것 밖에 없는 터에 이렇게 세상을 겪으며 ‘똑같이 다른’ 자신을 찾아가는 청춘의 이야기가 많은 위안이 됐다.
참 편안하게 잘도 썼다. 아니 그렸다. 마지막장을 덮고 가슴 안쪽으로 퍼지는 여운을 가만히 느꼈다.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함을 잘 그려내는 작가라고 하는 수식어에 고개가 끄떡여졌다. 상당한 내공이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어 작가검색을 해보니 삼성반도체공장 노동자 백혈병 문제를 다룬 『먼지 없는 방』이 전작이다. 이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보며 줄줄 눈물을 쏟아냈던 것도 떠올랐다. 사람을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만화가 김성희를 알게 되어 반갑다.
올해부터 지역복지기관에 가서 책을 읽어주는 ‘이야기선생님’을 같이 하기로 했다. 5년도 넘게 도서관에서 해온 일인데 그동안 바깥일이 바쁘다고 함께 하지 못한 활동이다. 청각장애가 있는 어린친구들이 다니는 성심학교에 세 번 방문했다. 아이들은 보청기를 끼고 입모양과 그림책을 열심히 번갈아 바라보느라 바쁘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똑같다. 더 미루지 않고 똑같이 다른 성심학교 아이들을 만나러 간 것은 잘 한 듯 싶다. (*)
★ 본 기고글은 충북인뉴스에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서, 필자의 동의 아래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