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 │ 아동문학평론가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심리철학과 철학교육을 공부했다. 아동문학과 그림책을 연구하는 평론가로 활발히 활동하며 좋은 어린이책을 소개하고 있다. 평론집 『거짓말하는 어른』을 냈다. 함께 쓴 책으로 『달려라, 그림책버스』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그림책 『우리들의 비밀 놀이터』 『안녕, 낙하산!』이 있다.
2016년에도 많은 그림책이 등장했지만 큰 화제가 되었던 책이라면 김동수의 『잘 가, 안녕』이 있다. 처음에는 어린이책 전문가 집단에서 “그 책을 보았냐?”는 이야기가 나왔고 얼마 지난 뒤에는 독자들로부터 “그 책 어떻게 봐야 하느냐?”라는 문의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그림책에 대한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개성이 강한 작품이지만 충격적인 장면이 있고 너무 어둡다.”와 “슬프지만 주제가 따뜻하고 선명하다.”는 것이다. 이 책을 올해의 어린이책으로 고르게 된 것은 이 상반되는 반응에서 짐작할 수 있는 우리 그림책의 발전 과정을 『잘 가, 안녕』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동수 작가의 작품은 나올 때마다 독자의 커다란 환영을 받았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감기 걸린 날』은 글과 그림과 책의 양식이 뛰어나게 어우러진 작품으로 꼽힌다. 곧게 자란 검은 단발머리에 표정이 희미한 주인공은 동네를 걷다 보면 골목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우리 주위의 유년기 어린이의 모습과 쏙 빼닮았다. 그동안 그림책에 주로 등장하는 여자 어린이 캐릭터는 과장되었다 싶을 정도로 환하고 화려하고 싹싹하며 자신을 표현하려는 욕구가 강했다. 그런데 이 작품의 주인공은 달랐다. 몇 학년이냐고 물어도 모기만 한 소리로 대답을 할 것 같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없는 눈빛까지 요즘 말로 ‘존재감이 없는’ 어린이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주인공은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놀라운 실천력으로 독자를 자신의 편으로 만든다. 주인공은 새로 산 초록색 오리털 점퍼에서 빠져나온 깃털을 발견하고 그 깃털은 오리들에게서 빼앗아온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기 때문에 추운 겨울을 나야 하는 오리들에게 깃털을 돌려주러 나선다. 독자는 소극적으로 보였던 주인공이 오리들을 돕고 함께 놀고 친구가 되는 장면에서 자신의 성장을 확인하는 것처럼 뿌듯함을 느낀다. 삐뚤삐뚤한 글씨와 고백체의 문장을 뒷받침하는 일기장 같은 그림책 양식, 연필 선이 선명하고 배경색을 자제한 그림은 어린이가 직접 그린 책 같다는 느낌을 주면서 이 책의 진실성을 부각시킨다. 특히 제한된 색의 사용으로 책을 덮은 독자들의 마음속에 ‘초록색 오리털 점퍼’와 작은 오리들의 이미지가 오래오래 남도록 만드는데, 초록색은 생명을 상징하는 색이기도 해서 생명들 사이의 공생과 연대를 강조하는 이 책의 주제와도 와 닿는 효과적인 감상을 안겨준다.
『잘 가, 안녕』은 김동수의 『감기 걸린 날』과 연장선에서 보아야 하는 그림책이라고 생각한다. 두 권의 책 사이에 우리 사회에는 많은 슬프고 충격적인 죽음이 있었으며 그 죽음들이 제대로 기려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비통하다. 가스 배관을 타고 내려와 생존을 신고했던 어린이의 용기 덕분에 우리는 숨겨진 채 내버려져 있던 수많은 어린이의 죽음을 확인해야 했다. 눈앞에서 구조를 호소하는 수백 명의 어린 승객들을 살리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이유에 대한 논의조차 봉쇄된 채로 1,000일을 보낸 우리들이다. 죽음이 뉴스가 되지 못하는 세상이라는 말은 냇물과 습지의 작고 작은 생명을 거대 토건 사업으로 뒤덮어버린 4대강 사업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늘도 길고양이들은 생존을 위한 분투 속에 생명을 잃어가고 있으며 전국의 수많은 도로에서는 끊임없이 로드킬이 일어나지만 아무도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김동수 작가는 생명에 대한 예의를 새 그림책의 주제로 택했다. 이미 오리들을 살리는 어린이를 통해서 말을 꺼낸 바 있지만 이번에는 한결 충격적인 방식을 가져온다. ‘살려야 하는 이유’를 말하기 위해 ‘죽음에 대한 예우’를 보여준 것이다. 우리 그림책에서는 아마도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염을 하고 장례를 치르는 장면이 이 그림책의 주된 줄거리다. 주인공 할머니가 정성껏 생명의 마지막을 돌보는 모습은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독창적인 이미지로 표현된다. 그리고 그 생명들이 개구리, 뱀, 고라니, 부엉이와 같은 우리가 살도록 가만히 두지 않았던 존재들이라는 사실이 책을 읽는 내내 무거운 죄책감으로 다가온다. 아마도 이 죽음에 얽힌 모든 맥락을 감지하는 어른들이라면 이 그림책을 넘기는 손이 부끄럽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그림책의 일차적 내포 독자는 어린이이다. 상대적으로 이 슬픈 죽음에 대한 책임에서 가벼운 자들이며 앞으로 이런 외로운 죽음을 방치하지 않을 책임을 지게 될 사람들이 책을 읽는다. 그들에게 이 이야기는 과거에 대한 반성 이전에 미래에 대한 다짐과 해야 할 일로 읽힐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림책이 너무 어두운 소재를 다루었다고 말하지만 이 책이 어린이 독자를 염두에 둔 그림책이기 때문에 더 훌륭하게 감상의 아름다움을 획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전통적으로 어린이는 심신이 아직 약하기 때문에 묵직한 장의 절차에서는 배제된 존재였다.
그러나 어른의 배려가 무색해질 정도로 날마다 죽음을 목격하는 것이 오늘날 어린이들의 하루하루다. 뉴스 창을 열면 생명에 무감해져야만 이 비극을 견딜 수 있을 거라는 듯 무차별적인 방식으로 끔찍한 뉴스가 쏟아져 나온다. 이 책의 표지에는 『감기 걸린 날』에서 오리털 점퍼의 털을 돌려주면서 추위에서 구해냈던 오리가 등장한다. 이 오리는 리어카를 끌면서 혼자 사는 할머니의 유일한 친구다. 리어카 할머니는 전작의 같은 초록색 셔츠를 입었으나 동일 인물은 아니다. 잇몸이 드러날 정도로 이가 하나도 없고 머리는 부스스한 산발이지만 걸음걸이는 단정한 건강한 초고령이다.
이야기는 어느 어두운 밤, 강아지 한 마리가 트럭에 치여 죽으면서 시작한다. 리어카를 끄던 할머니는 죽은 강아지를 발견하여 집으로 데려온다. 놀라운 것은 할머니의 집에 이미 뱀과 부엉이와 개구리와 고라니와 족제비의 시신이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로테스크한 순간이지만 독자는 할머니가 왜 이들을 방 안에 눕혀 놓았는지 알고 싶어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책장을 넘기면 할머니의 진심이 조금씩 드러난다.
이 동물들은 모두 사람들의 차에 치인 뒤 목숨을 잃었다. 할머니는 기괴한 인상과 달리 그들에게 정성스러운 장례를 치러 주려고 했던 선한 이웃이다. 반짇고리를 꺼내어 뱀의 몸통을 꿰매어 잇고 부엉이의 눈을 감겨주며 납작해진 개구리는 풍선처럼 바람을 분 뒤 생기 있는 모습으로 되돌려놓는다. 족제비는 상상초월의 방식으로 따뜻한 새 꼬리를 얻는다. 독자는 무뚝뚝해 보이는 할머니가 이끄는 성스러운 입관 절차를 지켜보면서 고요히 애도에 동참하게 된다. 장례식의 조문객은 독자들 말고 더 있다. 강아지의 교통사고를 목격했던 길고양이는 밤새 할머니의 집 지붕을 지키다 가고 꽃다발 들고 리어카 밀며 나루터로 발인하러 가는 길에는 오리들이 마중을 나온다. 이 오리는 전작에서 오리털 점퍼에 빼앗긴 털을 되돌려받아 무사히 살아났던 바로 그 오리들인 듯하다.
할머니가 이름 모를 동물들을 위해서 올리는 이별의 의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경건하고 아름답다. 조각배에 단정히 실린 동물들, 그 동물의 영전에 올리는 하얀 꽃송이를 보면 울컥 눈물이 난다. 일곱 마리 오리가 조각배를 끌고 연꽃 가득한 저 세상으로 떠날 때 독자는 부디 행복하길, 다시는 이런 억울한 죽음을 겪지 않길 바라면서 추모의 말을 읊는다.
약한 동물들의 가는 길을 돌보는 할머니가 이가 하나도 남지 않은 외로운 독거 고령자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할머니는 ‘얼마나 아팠을까’, ‘이불이 좀 작나’하고 낮게 읊조리면서 동물들을 돌본다. 곧 떠날 사람이 다른 떠날 사람을 다독이는 이 모습에서 생명에 대한 예의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이 그림책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할머니가 동물들의 생전 모습을 손바느질로 일일이 복원하여 아름답게 되살려주는 장면이다. 우리가 어떻게 한 생명을 대하는가는 그 생명을 보내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잘 가, 안녕』은 2016년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죽음을 통해서 삶을 이야기하는 카리스마 있는 반전의 그림책이다. 이제 우리는 이런 예술적 이미지를 만날 만한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무엇보다 겉으로는 멀쩡하면서 거짓과 음모로 뒤틀린 현실 세계의 기이한 얼굴을 목도해야 했던 우리들로서는 이 책의 유순하고 고운 세계관 앞에서 오히려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존경을 표하게 되는 것이 맞다고 여겨진다. 우리가 눈 감았던 모든 가슴 아픈 죽음을 위해 묵념하면서 이 책을 올해의 어린이책으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