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진 │ 경희사이버대학교 부총장, 미국 정치 전문가존 듀이가 설립하고 한나 아렌트 등 세계적 지성의 망명지였던 뉴스쿨대학원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레이건과 클린턴 대통령제를 비교한 박사 논문으로 ‘한나아렌트상’을 수상하였고 2003년 귀국하여 현재 경희사이버대학교 미국학과 교수 겸 부총장으로 있다. KBS, SBS 등 미국 대선 특집 방송의 패널로 참여했고, 한겨레, 경향 등에서 칼럼니스트를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노무현과 클린턴의 탄핵 정치학』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와 보수주의 위기의 뿌리』『미국의 주인이 바뀐다』 등 다수의 단행본과 논문이 있다.
“내가 진짜로 계획을 가지고 움직이는 사람같이 보이니?” (영화 『다크나이트The Dark Nkght』 중에서 조커의 대사)
트럼프Donald Trump 당선에 대한 전문가 인터뷰를 요청받을 때마다 나는 항상 위에서 인용한 배트맨 영화의 조커 대사가 먼저 떠오르곤 한다. 미국 정치 전문가답게 과학적으로 예측가능한 멋진 말을 해야 되는데……. 미국의 세계전략에 대한 책 추천을 요청받고 나니 역시 이 대사가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트럼프 자신도 아직 세계전략의 계획이 없는데 어찌 그 럭비공 같은 사람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 마치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Being John Malkovich』처럼 그의 머릿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이런 곤혹스러운 상황에서 당신 같으면 어떤 책으로 단서를 찾아 가는가? 나는 다음의 순서대로 미국의 세계전략에 대해 생각해보는 경로를 제안하고 싶다.
흥미로운 점은 진보적 커밍스나 보수적 키신저, 브레진스키의 문제의식이 수렴된다는 점이다. 이들의 공통된 키워드는 태평양 시대, 평화공존, 타자에의 공감 등이다. 이들 우파 전략가들도 이제 황혼기에 접어들면서 더욱 자신감을 더 잃고 더 겸손해진 것처럼 보인다. 키신저는 이 책에서 혼돈의 시대를 맞는 겸손함과 동시에 일관된 방향감각을 강조한다. 아마 이 두 가지 모두 가장 반反 트럼프적이다. 브레진스키는 원래 훨씬 더 비관의 제왕이지만 더 우울해졌다. 그는 매력을 잃어가는 아메리칸 드림의 황혼기를 지적하고 카오스의 미래를 예견한다. 서방에서는 촉진자 겸 보증자로서 아시아에서는 균형자 겸 중재자로서 미국의 역할을 주문하는 그의 결론도 일관되게 반反 트럼프적이다. 이런 역할은 힐러리가 더 어울리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은 지금까지 추천한 모든 책을 잊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다 잊으라고? 그렇다. 이는 주로 트럼프 현상 이전의 역사적 내용들의 책들이고 지금은 뉴노멀의 시대이다. 역사학은 훌륭히 참조할 지도책이긴 하지만 새로운 현실은 새로운 내비게이터가 필요하다. 차라리 나는 다른 모든 책은 잊어도 좋지만 미래 예측을 포기하라고 선동하는 다음의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블랙스완’ 현상이란 개념으로 유명해진 나심 탈레브의 『안티프래질Antifragile』 말이다.
이 책은 물론 국제관계에 대한 책은 아니다. 보다 넓게는 이 책은 근대를 넘어선 문명의 사유 체계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탈레브는 이 책에서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21세기는 예측, 효율성, 통제 등의 패러다임을 가지는 근대적 사유와 근대적 조직 몰락의 시대라 탁월하게 지적한다. 그는 “질서를 추구하면 가짜 질서를 얻게 된다. 그러나 무작위성을 수용하면 질서를 얻고 동시에 이를 지배할 수 있다“고 일갈한다. 차라리 국제관계의 예측을 포기하고 앞으로 부단히 생겨날 사건들을 수용하고 이 징후 속에서 미래를 어렴풋하게 더듬어 나가는 것이 현명할지 모른다. 2017년 이후 미국이나 한국 모두 혼돈과 카오스의 시대이다. 이 혼돈을 고통스럽게 거치고 나면 새로운 전환이 이루어진다. 다시 한번 조커(아니 트럼프)가 뉴노멀의 시대에 진입한 우리들을 다음과 같이 환영한다.
“나는 카오스의 에이전트이다 ” (영화 『다크나이트』 영화 중 조커의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