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눈
노래가 들려온 건 제작실 서문 쪽에 있는 반 층짜리 계단 아래였다.
그날은 마르코가 제작실에서 경호를 서는 첫 근무 날이었다. 빳빳하게 다린 셔츠 깃처럼 바짝 긴장한 상태로 제작실 입구에 덩그러니 서 있던 마르코는 사람이라기보다 그곳에 설치된 조형처럼 보였다. 온통 잿빛 페인트로 칠해진 공간에 마르코가 입고 있는 정장과 셔츠도 어두컴컴한 색이라, 얼핏 보면 머리만 두둥실 떠다니는 것 같기도 했다. 긴장 완화에 좋다며 치유키가 선물한 약도 챙겨 먹었지만, 아마 플라세보 효과를 노린 포도당 알약이었을 것이다. 품이 큰 정장 재킷을 걸치고 서 있던 마르코는 어느 면으로 보나 제작실을 지킬 만한 모양새가 덜 만들어진, 소년이었다. 소년의 티를 벗어내지 못했다기보다 소년 그 자체였다.
열다섯 살의 마르코는 변성기가 오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변성기가 시작된 톨가나 유오보다 목울대가 작고 밋밋했다. 뼈대가 가늘고 키가 작아 그때까지만 해도 마르코는 여섯 명 중 두번째로 작았고, 이변이 없는 한 영영 그렇게 어린 소년의 모습으로 남을 것만 같았다. 이런 정황으로 마르코가 경비 일을 하겠다고 결정했을 때 친구들은 신체적인 요건이 불리할 거라 우려하며 마르코를 말렸지만, 마르코가 경비 일에 지원한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마르코가 원한 것은 강도 높은 훈련이었다. 연구소를 지키기 위해 지녀야 할 강인함은 훈련소에서 만들어진다고, 누구든 일 년만 버티면 육체적으로 강인한 경비원이 되어 나온다고 들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일 년 뒤 마르코의 덩치와 키가 여섯 명 중 가장 커진 것이 그 증거였다.
하지만 경비 일을 시작한 지 십육 일 차인 마르코는 아직 왜소했다. 제작실의 한기는 자꾸 몸을 움츠러들게 했고 주기적으로 울리는 거대한 기계의 소음은 어느 짐승의 박동처럼 느껴졌다. 마르코에게 보이는 것은 입구 안의 입구, 바깥문보다 훨씬 더 두껍고 단단한 검은 철문이었다. 마르코는 지하 도시의 모든 출입문 중 제작실 안쪽 문이 가장 단단할 것이라 짐작했다.
제작하는 일은 저 철문 너머에서 벌어졌다. 본 적 없는 장면은 상상을 부풀리기에 좋은 효모였다. 마르코는 인간의 유전 정보를 떼어다 똑같은 인간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지 못했다. 뱃속의 태아처럼 배아세포로 시작한 아이가 세포를 늘리며 세포의 주인과 똑같은 인간으로 자라는 것인지, 만들어둔 외형에 심장과 뇌를 넣어 단번에 눈을 뜨게 만드는 것인지. 아니면 조각조각 나눠 만든 몸을 바느질하듯 엮는다거나 만들다 실패한 것은 분쇄기에 한번에 갈아버린다거나. 어떤 상상이든 결국 인간의 몸을 조립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그 사실이 철문을 가장 잔혹한 세계의 진입 문처럼 보이게 했다. 마르코는 긴장했고, 그 탓에 아까부터 손바닥이 땀으로 흥건해 자꾸만 바지에 손을 문질러야 했다.
또 웅웅웅, 기계 소리가 들렸다. 바닥과 천장이 진동했고, 환풍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었다. 다른 곳에서는 들어본 적 없는 소음이었다. 눈을 치켜떠 천장을 바라보았다. 평소에는 신경쓰지 않았던, 천장의 이음매가 눈에 들어왔다. 물샐틈없어 보였지만 마르코는 저 틈으로 모래가 쏟아져 내리는 상상을 했다. 사억오천만 헥타르 규모의 지하 도시가 한순간에 내려앉는 것이다.
여태까지 마르코는 지하 도시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가능성도 믿지 않았다. 그 말은 뭐랄까, 하늘이 무너진다는 말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하늘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하늘이라는 것 자체가 지각地殼 따위의 판이 아닌 대기권을 지칭하는 것이었으므로 그 말은 모순되는 말이었다. 일종의 비유라고, 그러니 지하 도시가 무너지는 일도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유오는 동의하지 않았다. 거대한 고목의 뿌리, 땅을 파고드는 짐승과 그보다 더 깊게 내려오는 곤충, 토양을 지배하는 미생물, 폭우와 폭설로 인한 땅의 균열, 판의 움직임과 화산…… 유오는 이 모든 것들이 지하 도시를 위협한다고 말했다. 꽤 그럴듯했지만 그런데도 지하 도시가 무너지는 것은 쉽게 상상되지 않았다. 지하 도시가 무너진다니. 역시나 좀, 허무맹랑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울리는 거대한 기계음과 잦게 떨리는 환풍구의 소리를 듣고 있으니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지하 도시의 외벽 두께가 궁금해졌다. 제작실의 철문 두께 정도일까? 그 정도라면 안전할까? 어느 정도가 되어야 이 거대한 기계의 떨림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지 가늠되지 않았다. 마르코가 마른침을 삼키며 재킷 밑부분에 또 한번 손바닥에 난 땀을 닦을 때, 노랫소리가 들렸다.
제작실 외부 문과 안쪽 문을 연결하는 이 공간에는 반 층 높이에 제작실을 볼 수 있는 모니터실이 있었다. 커다란 스크린이 여러 개의 화면으로 분할되어 있었고 탁상용 마이크가 동그마니 놓여 있었다. 마르코가 첫 출근을 한 지 한 시간 십 분째, 아직 모니터실에는 누구도 들어가지 않았다. 제작실로 들어가는 사람도 여태껏 고작 두 명이 전부였다. 한산하다못해 스산하다고 느낄 무렵 출처를 알 수 없는 노랫소리, 그보다 허밍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할 소리가 들려오자 땀이 사라지고 오한이 들었다. 모니터실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었고 주변도 마찬가지였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도망치지 않고 노랫소리의 출처를 찾는 것이 마르코가 해야 할 일이었다. 마르코는 타원형의 벽을 훑으며 걸었다. 창문도 없고, 문도 없는데 도대체 어디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일까.
동쪽보다는 서쪽으로 갈 때 소리가 더 커졌다. 몸의 긴장감도 소리가 커질수록 점점 풀렸다. 감미로운 목소리가 마르코의 두려움을 조금씩 녹여주었기 때문이다. 노랫소리는 점차 마르코를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이끌었다. 가까워질수록 선명해지는 발음. 의주와 유오를 통해 들었던 익숙한 언어. 통역기의 소리가 자꾸 목소리를 가로채자, 마르코는 오로지 그 목소리에 집중하기 위해 결국 통역기를 껐다.
마르코가 걸음을 멈춘 곳은 모니터실로 올라가는 서문의 반 층짜리 계단 앞이었다. 그곳에서 들려왔다. 계단의 벽 너머에서.
벽이 노래를 부르는 것은 아닐 테고. 벽에 스피커가 내장되어 있던가? 그렇다면 왜 하필 여기에…… 마르코가 벽에 두 손을 얹고 귀를 바짝 붙였다. 노랫소리는 분명히 벽 너머에서 들려왔다. 이토록 감미롭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처음이었다. 목소리는 목덜미와 귓바퀴를 부드럽게 감쌌고, 따뜻한 물이 귓속에 천천히 흘러 들어가듯 노랫소리도 그렇게 마르코의 몸으로 조금씩 스몄다. 이제 오싹함은 마르코의 몸에서 완전히 씻겨 내려갔다. 마르코는 목소리의 주인을 보고 싶었다. 손바닥으로 계단 벽을 몇 번 쓰다듬자 틈이 느껴졌다. 눈으로 볼 때는 티가 나지 않아 몰랐지만, 계단 밑에 또 다른 공간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문을 열 수 있는 손잡이는 보이지 않았다. 노크해볼까 싶었지만, 노크를 한다는 건 용건이 있다는 뜻과 같아 보였다. 마르코는 그저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하고 싶은 것뿐이었다. 마르코가 그런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 어느 순간 노랫소리는 멈췄고 미닫이문이 열렸다. 문 너머에는 소녀가 있었다. 마르코와 비슷한 나이 또래로 보이는 소녀였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카락을 질끈 묶고 있었지만 잔머리가 요란하게 튀어나와 단정해 보이지는 않는 소녀는 남색과 분홍색이 섞인 페어 아일 카디건을 걸친 채 품에는 본인 상체만한 보따리를 들고 있었다. 소녀는 문 앞에 서 있던 마르코를 얼떨떨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곧 자신이 부른 노래를 마르코가 들었을 거라는 생각에 도달했는지 목과 귓바퀴를 붉혔다.
그것이 열다섯, 동갑내기인 소녀와 마르코의 첫 만남이었다. 소녀가 마르코에게 먼저 말을 건넸는데, 통역기를 끄고 있던 탓에 마르코는 소녀의 첫마디를 알아듣지 못했다. 허겁지겁 다시 통역기를 켰을 땐 이미 “밖에 누가 있는지 몰랐어”라는 말로 넘어간 후였다. 그전에 뱉은 말은 무슨 말이었을까? 맥락으로 추측하자면 어쩐지 사과의 의미를 담고 있을 것 같았다. ‘미안하다’라거나, ‘시끄러웠지?’ 같은. 그렇다면 오해하기 전에 아니라고, 사과할 필요 없다고, 사실 노랫소리가 무척 좋아 홀린 듯이 이곳에 왔다고 말해주어야 하는데 마르코에게는 지나간 말을 붙잡아 다시 해명할 정도의 붙임성과 친화력이 없었다.
계단 밑에 마련된, 다섯 사람 정도가 들어갈 수 있을 만한 공간은 세탁된 옷들을 보관하는 창고로 쓰였다. 제작된 클론이 입는 옷이라고 했다.
소녀는 마르코와 같은 용역업체에서 배정된 경비원이었다.
“이런 일을 한다고는 못 들었는데.”
마르코가 말하자,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마찬가지야. 퇴근하려고 옷까지 다 갈아입었는데 갑자기 가져가서 잘 개어달라고 옷을 뭉텅이로 주지 뭐야?”
그러니까 마르코가 출근했을 때 소녀는 이미 이 좁은 공간에 들어가 있었고,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옷을 개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것도 업무 시간이 아닌 때에.
소녀는 마르코가 자신과 같은 업체 소속이고 심지어 입사일이 같다는 것에 든든한 지원군을 만난 것처럼 고초를 토로했다. 소녀의 이름은 ‘으니’였다.
으니는 마르코와 함께 출입문으로 걸어가는 동안 끊임없이 말했다. 원래도 활달한 성격이었고 마르코와 달리 친화력이 높은 사람인 까닭도 있었지만, 그날 으니는 자신이 부른 노래를 누군가 듣고 있었다는 사실이 민망해 평소보다 모든 걸 과장했던 것도 맞았다.
“어제는 어디서 근무했어?”
“연구소 쪽.”
“몇 시간?”
“여덟 시간. 한 시간 쉬고.”
“발바닥에 불나는 것 같지 않았어? 나는 첫날 두 시간 서 있는데 죽는 줄 알았어. 발바닥이 뜨거워서 좀 걸었더니 연구원이 눈치 주더라.”
“하다보면 노련해진대.”
마르코의 말에 으니가 풋, 웃음을 터뜨렸다. 말실수를 한 걸까. 그 말은 마르코에게 일을 가르쳐주던 선배 커커스가 한 말이었다. 어리숙하게 고개만 끄덕이고 있는 마르코에게 ‘어렵지? 하다보면 노련해질 거야’라고 말이다. 마르코는 그 말이 참 힘이 되었는데, 으니에게는 아닌 모양이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노련해진다는 말이 적용되는 일 같니?”
마르코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닐 이유도 없지 않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 뒤에 덧붙일 만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노련하다는 건 남들이 정해주는 거야. 그 일에 노련해졌다고. 근데 우리가 하는 일은 막일이잖아. 사람들은 이런 일에 노련하다는 단어 안 써줘.”
매몰차게 말한 게 미안했는지 으니가 웃으며 말했다.
“발바닥에 불나는 거, 아무나 할 수 있잖아.”
으니의 웃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이번에는 목덜미와 귓바퀴가 뜨끈뜨끈해졌다. 으니가 하는 말이 더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르코는 괜히 귓바퀴를 문질렀다.
제작실 문 앞에서 으니가 마르코에게 다음날 일정을 물었다. 삼교대로 움직이는 경비일은 달마다 책임 매니저가 출근 일정을 짜주었다. 언제든 조정이 가능하다고 말했지만, 선배들의 말로는 특별한 일이 아닌 이상 일정을 조정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마르코는 오늘 오후 여덟시까지 일했고, 다음날은 오전에 출근해 오후 네시에 퇴근하는 일정이었다. 으니는 마르코의 일정을 곱씹더니 점심시간 때 마주칠 수 있겠다고 말했다. 으니는 내일 보자고 두 팔을 크게 흔들고 떠났다. 으니의 아킬레스건이 신발에 발갛게 쓸려 있었다.
그날 마르코는 으니의 목소리가 좋았다고, 노랫소리를 더 듣고 싶었다고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이름이 ‘으니’가 아니라 ‘은희’라는 건 한참 뒤에야 의주를 통해 알았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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